1차/카즈히마

[ 카즈히마 ] 썩은 사랑니 뽑기

IVII 2021. 3. 1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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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의 목적
 
술기운과 어우러져 졸음을 부르는 이 곡은
 
어느 유명하단 인디 밴드의
 
타이틀곡이라고 합니다.
 
그걸 누가 말했더라.
 
학생 시절 꼬인 머리띠를 쓰고 다녔다던 저 남자인지
 
전교 일 등을 놓치지 않았다던 저 여자인지
 
만나면 분명 애틋할 거라 생각했던 이들은
 
십 년 간 강산이 변하는 동안
 
그와 함께 변태라도 한 모양입니다.
 
히마리, 이들 중 제대로
 
이름이 기억난 이가 있기는 했나요?
 
학창 시절 이들과 무얼 했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눴었는지
 
히마리:(곰곰...)(딱히... 큰 기억은 없는 것 같네!)
 
아주 작은 부스러기 몇 개로 남아 있는 것만 같죠.
 
어찌 되었든 저들은 즐거워 보입니다.
 
다들 무슨 대화들을 저렇게 하는지
 
기억력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쟤는 몇 반의 어떤 역할이었고
 
축제 때는 이런 공연도 했었고,
 
시끄러울 만큼 풀어낼 일화도 많은 것을 보면요.
 
...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이 테이블에서
 
당신을 포함해 총 다섯 명이 앉아 있습니다.
 
남은 한 자리는 왜인지 몰라도 비워져 있네요.
 
[듣기 판정]
 
히마리: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까 당신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반가운 체를 했던 남자와
 
체육 대회가 있을 때마다
 
계주로 나갔다던 여자입니다.
 
마주보고 앉은 그들은
 
포크를 테이블에 부딪히며
 
대화를 이어 나갑니다.
 
남자: 누가 학교 화단에 불 지르고 튄 거 기억나?
 
여자: 맞다, 그거 범인 아직도 모른댔지?
 
남자: 나는 ...히마리 쟤가 제일 의심스럽단 말이지... 조용히 있다가 사고 칠 것처럼 생겼잖아.
결혼도 빨리 하지 않았나?
 
하며 당신의 얼굴을 힐끔거립니다.
 
히마리:(?)(그저 웃는 낯으로 그들을 바라봅니다.)
 
남자: 아, 아하하... 하하.... 아니 그 딱히 너가 그랬다고 막 확정 짓는 건 아니고... 그냥.. 그냥 장난으로~! 농담이야 농담...!
 
히마리:아하하~ 재밌는 추론이야! 당연히 장난인 걸 알지~ (사람좋게 웃으며 그들에게 손사래를 친다.) 근데 어떻게 알았어~? 나 집에선 사고쟁이였는데. (앳된 청량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남자: 아..하하...! 하하!! 그치~? (멋쩍게 웃으면서 눈치를 본다) 너 학교에서 완전 인기 많았으니까~ 여기 있는 남자애들 대부분이 한번씩은 너한테 고백하려고 했을걸?
 
여자: 그거 알아? 얘도 너한테 고백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 인기쟁이가 이렇게 모두를 두고 그렇게 일찍 결혼을 해버리고~... 그래서, 결혼생활은 어때? 좋아? 네 배우자랑 나이 차 꽤 많이 나는데 괜찮아?
 
히마리:어머어머~ 그럼 방금 의심은 질투인거야~? (장난스럽게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여자의 말에 시선을 그 쪽으로 자연스레 넘겼다.) 결혼생활~? 괜찮지!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나한테 다정하고 잘해주는 걸. 난 지금 만족! 아직 얼마 안 돼서 그런 걸까나... 싸운 적도 별로 없고~! (그리 말하곤 음료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거짓. 사랑이라곤 하나도 없는, 상대는 모르겠지만. 거짓말엔 이젠 익숙하다지만 여전히 기분은 좋지 않다.)
 
여자: 헐~ 정말? 신혼여행은? 어디로 갔어? 완전 재벌이랑 결혼했으니까 섬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던가?
 
남자: 야 그래도 그렇게 일찍 눈 맞고 결혼해버리면 로망이라는 게 부족하지 않냐?(눈치 없이 끼어든다) 주변에 눈 돌아가는 남자들 한번쯤은 있었지? (킥킥 웃으며 술잔을 들어 금세 잔을 비운다)
 
히마리:그렇게까진 내가 원하지 않는다구 해서 해외로 갔다왔어~ 어디였더라... 몰디브였든가? 바다가 예쁘더라구. (작게 웃었다. 그리고 들려온 남자의 말에 질색이라는 표정을 장난스레 지었다.) 내가 너처럼 호색한으로 보여~? 나 이래뵈어두 사랑꾼이라구~ (음료를 다시 넘긴다. 넘어가는 음료가 달다. 혀가 아려서 순간 머리가 핑 돌지만 참는다. 그냥...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원래 이런 자리는 좋아했는데.)
 
술이 꽤나 들어간 상태인지
 
모두 들뜬 얼굴로 당신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져옵니다.
 
그때 문이 열리며 경쾌한 종소리가 울립니다.
 
사업이 대박 난 누가 가게를 빌렸다고 했는데….
 
일제히 뒤를 돌아 가게 안으로 들어온
 
‘누군가’의 얼굴을 확인합니다.
 
그리곤 당신에게 했듯 일어나 반기는 대신
 
누군지 영 모르겠다는 얼굴로
 
다시 술잔을 들어 건배합니다.
 
‘우리네 인생을 위하여!’
 
유리가 부딪히는 가벼운 소리 이후
 
다소 무거운 발소리가 가까워집니다.
 
기척을 한껏 뽐낸 발소리는
 
당신의 옆에서 멎습니다.
 
토죠 카즈야:정말 오랜만이다, 히마리.
 
그러니까…… 카즈야입니다.
 
[정신 판정]
 
히마리: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단번에 기억나는 이름입니다.
 
당신에게는 이토록 선명하게 남은 사람인데
 
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죠?
 
누군 몇 등이었고
 
누군 옥상에서 이런 짓을 했고 하는
 
세세한 일화까지 기억하는 이들이요.
 
...
 
히마리,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나요?
 
카즈야는 곧 비어 있던 당신의 옆자리에 앉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는 카즈야를 위해
 
비어 있던 것 같아 보일 정도예요.
 
카즈야는 엎어져 있던 술잔을
 
손에 쥐고 당신을 응시합니다.
 
관찰하듯이 집요한 눈이
 
머리부터 테이블 아래의 발끝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요.
 
[관찰 판정]
 
히마리: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6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카즈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못 보던 안경을 쓴 것 외에
 
달라진 것은 크게 없어 보입니다.
 
여전히 부드러운 금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것,
 
끝이 올라간 눈,
 
그 시절 당신이 사랑한 미소까지요.
 
그런데 술잔을 쥔 손…
 
검지 두 번째 마디 즈음에 벌건 무언가가
 
말라붙어 있습니다.
 
저건 피인가요?
 
히마리:(...?)
 
토죠 카즈야:나도 한 잔 따라 줘.(싱긋 웃는다)
 
히마리:(웃는 당신을 멍하니 빤히 바라보다가 자연스레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당신의 잔에 술을 천천히 따라준다.) 그나저나 오랜만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들 그렇겠지만. (잔에 어느정도 술이 채워지자 술병을 기울이던 것을 거둔다.) 잘 지냈어~?
 
토죠 카즈야:너만큼 잘 지냈을까? (술잔을 가져가 한 번에 입에 털어 넣고는) 주인공이라 늦게 등장했는데 이렇게 안 반겨주는 거 보니까 잘못 살았을지도. 늦었다고 괴롭히는 건가... (슬프다는 듯이 흑흑거리는 시늉을 한다) 너는 잘 지냈지? 소식 들으니까 결혼했다던데, 어때? 그 사람은 잘 해줘?
 
히마리:(흑흑거리는 시늉을 하는 당신을 바라보다가 작게 웃음소리를 흘린다.) 뭐야~ 예전보다 성격이 많이 장난스러워졌는걸? 나한테도 저랬어~ (뜸) 결혼식도 안 와놓고선~ 아 물론 청첩장을 안 보내긴 했지만. (술 한모금, 입안으로 넘긴다.) 잘 지냈어. 당연히 잘해주지~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내를 박대할 순 없지 않을까? (장난스레 말했다. 온통 거짓. 사랑하는 척 아양을 떨던 지난 날들이 떠올라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 상에 턱을 괴곤 당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안경 쓰니까 더 잘생겨졌네. 토죠 카즈야 안 죽었어~ (작게 웃었다.)
 
토죠 카즈야:너도 많이 변했으면서. 외관만 변한 건가? 예전에 곱슬거렸던 머리카락이 난 더 맘에 드는데... 이것도 잘 어울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거야? 청첩장도 안 보낼 정도로. 꽤 친했다고 생각했는데 좀 서운했을지도. (자신의 앞에서 미소 지으며 말하는 당신을 보며 꽤나 속상하단 표정을 취한다) 그래~ 그래야지, 고등학교에서 유명세로 이름 떨치신 분이 사랑을 못 받는다면 그건 또 무슨 일이겠어. 그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네. (잘생겼다는 말, 어쩌면 익숙할지도 모를 그 말을 당신에게 들어서인지 괜히 웃음이 새어나온다) 나 대학교 때를 못 봐서 그러구나. 그때부터 안경 썼는데, 살짝 아쉽네. 그랬으면 너가 나를 좋아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히마리:(잠시 멈칫한다. 예전의 짝사랑 상대라지만, 갑작스럽게 이런 말을 들으면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미 다 마음을 접었고, 결혼까지 한 몸이니 설레면은 안될텐데.) 어머~ 마음에 든다니~ 이러면 안된다구~ 나 임자 있어요~ (웃음소리를 내었다. 애써 마음을 숨기는 웃음이었다.) 남편이 생머리가 더 좋대서. (뜸) 이거 하나 말해줄까? 나 사실 여기 동창애들한테 전부 안 보냈어. (작게 당신의 귀에 속삭였다.) 괜히 이상한 말 퍼질까봐~ 그런데 이미... 다 알더라구. 누가 그랬는지 참. (당신의 말을 가만 듣다가 그저 술을 넘길 뿐이었다. 그냥 얼른 취해버릴까, 일부러 무리해서 한 잔 전부를 넘긴다. 그러다 멈칫. 마지막 말은, 무슨? 순간 정신이 멍해진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언제나 하던 것처럼 포커페이스로, 거짓과 농담을 그려낸다.) 뭐야~? 나 꼬셔보겠다는 거야? 이거 좀 위험한 발언인데~? (다시금 지어낸 웃음소리.) 카즈야 군, 너무 대담한 거 아닌가요~?
 
토죠 카즈야:(손을 턱에 살짝 댄 채로 당신의 말에 웃는다) 알았어 알았어, 이젠 그런 말 안 해. 그래도 어울린다는 말쯤은 괜찮지? 남편분이 정말 좋은가봐. 그래서 일찍 결혼한 거겠지? (조용히 제 몫의 술을 따라 마신다. 그러다 당신의 속삭임에 대신 분노해 주는 듯) 괜히 이상한 말 뭐? 샘이 나서 그랬다 생각해서 웃고 넘길 일 아니잖아. 참는 건 네 자유이긴 해도... (말 끝을 흐리며 잔을 든 손을 꼼지락거린다) 맞아, 나 경찰 된 건 알아? 나한테 맡겨봐~ 이런 친구 둬서 어디에 쓰게? (아까까지의 모습과 대비되게 자랑스레 웃으며 당신에게 손을 건낸 것도 잠시, 다시 손을 거둔다) 아, 이것도 착각해버리면 내가 위험해질까? 이건 순전한 호의의 의미.
나는 요즘 일로 바빠 죽겠는데 재벌 히마리씨는 뭐하고 지내시나?
 
히마리:아하하. 그 쯤이야~ 물론 오케이지. 그런 것도 마다할 정도로 보수적인 사람은 아닌 거 알잖아~ (슬그머니 미소를 머금었다. 대답이 느릿했다. 뜸을 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말을 고르는 듯한 기색. 진실을 말하기엔 그러곤 싶진 않아서. 애초에 오랜만에 만난 옛 짝사랑 상대에게 홀로 숨겨온 진실을 고하기엔, 염치도 없지 않은가.) 먼저 꼬시더라구~ 나 좋다는 사람 마다할 수는 없잖아. 여러 이유가 있지만!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니까 해도 괜찮겠다 싶어서 했지~ 결혼 생활은 만족해~!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된다니까~ (제 말에 대신 하고 싶은 말을 해주는 당신에 웃다가 술을 한모금 넘겼다. 아까까진 달았는데. 왜 쓸까.) 어? 진짜? 경찰 됐어? 와... (놀란 듯 눈을 꿈뻑이며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 나이에 되기 싶지 않았을텐데... 되게 열심히 했나보구나. 아하하~ 그치만 바쁜 친구한테 이런 사소한 걸 맡기긴 싫은걸요~? 괜히 신경쓰지 마~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 어휴~ 능글거리긴~ 농담이지 농담~ (장난스럽게 당신의 손을 슬 잡았다.) 손도 많이 컸네~ 키도 컸나? (당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런데 이거 뭐야~? 어디 다쳤어? (검지 쪽에 있는 붉은 자국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다가 이내 당신을 놓아줬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요~ 그냥 집에 있다가 놀러갔다가~ 집안일 잠깐 했다가... 심심하게 사는 중. 뭐어~ 가끔 남편 따라서 해외 출장 따라가는? 것만 빼면 심심한 삶이야.
 
토죠 카즈야:하긴, 너 좋다고 따라다닌 사람이랑 사귀고 결혼하고 한 거 보면 보수적이진 않다 확실히 (이 대화가 웃긴지 대답을 하는 중간중간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나도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이랑 결혼해서 행복한 생활을 해야 되는데... 일이 너무 바빠서 여유가 없네?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그런 일상이 부럽습니다, 히마리씨. 나도 부잣집이랑 결혼해야 되나. (차갑게 비어있는 제 손가락을 보며 당신의 손에 있는 반지를 꽤나 선망의 눈빛으로 본다) 나야 뭐, 예전부터 열심히 한 건 사실이지만? 경찰이 되고 나서부터가 진짜라고... 얼마나 힘든지 몰라. 일하는 와중에도 시험 준비하는 게 쉬운 줄 알아? 아, 지금 말 듣고 나 바쁘다고 착각해버리진 않을 거지? 너 도와줄 여유쯤은 있으니까. 지금 당장이라고는 말 안 해, 나중에. 정말 힘들다 싶을 때, 알겠지? (제 손을 가져가 의문을 품은 당신에게 할 말을 찾았다. 붉은 자국, 피.) 이거? 내가 뭐 한댔어. 경찰 손이 깨끗하면 경찰이 아니지. 현장은 안 뛰어도 종이가 그렇게 아플 수가 없다? (억울함을 호소하듯 제 검지를 가리키며 한탄을 한다) 나도 너처럼 그렇게 해외나 다니면서 심심한 삶을 누리고 싶다... 그게 얼마야, 나처럼 밤낮 구분 없이 살아봐. 그 말 안 나올걸?
 
시끄러운 공간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열심히 떠들던 둘은
 
당신에게서 등을 돌린 채 카즈야를 힐끔거리고,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도 그건 다를 바 없습니다.
 
카즈야가 학창 시절에 무슨 악랄한 짓을 했던가요?
 
뚜렷하게 기억나는 바는 없습니다.
 
어차피 저들끼리의 추억,
 
저들끼리의 대화였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겉도는 둘이서라도
 
재밌게 놀아야 하지 않겠어요?
 
 
어느덧 모임은 무르익어
 
반은 술에 취해 개가 되어 있고
 
또 반은 술에 취해 떡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건 당신과 카즈야 뿐입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알코올 냄새만 짙게 맡아질 뿐,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쓰러진 저들의 간이
 
열심히 일하기를 바라는 수밖에요.
 
 
술잔 위를 규칙적으로 두드리던 카즈야는
 
돌연 당신의 어깨 위로 머리를 댑니다.
 
멀쩡해 보였지만
 
어쩌면 천천히 취기가 오르던 중이었을지도요.
 
토죠 카즈야:우리 잠깐 나갔다 올래?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고 오자.
 
어떻게 할래요, 히마리?
 
이 술판에서 잠시 벗어날 필요가 있긴 한데…
 
카즈야는 당신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밖으로 나갑니다.
 
문에 달린 종소리의 경쾌한 소리가 울립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당신의 손에
 
카즈야의 겉옷이 걸립니다.
 
밤은 쌀쌀한데
 
술에 취해 오른 체온 덕에
 
감기도 쉽게 들 겁니다.
 
역시, 따라 나갈까요?
 
히마리:(잠시 당황하다가 카즈야를 따라 나갑니다.)(겉옷을 전해줘야한는.. 명목이 있으니까. )
 
대답도 듣지 않고 나갔던 카즈야는
 
술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나오자마자
 
웃으며 편의점을 향해
 
앞장 서 걷습니다.
 
토죠 카즈야:늦었어. 바로 나올 줄 알았는데.
 
히마리:갑자기 그러니까 놀라서... 정신 좀 차리려구~ (뜸) 그나저나 옷은 좀 입자. 감기 걸리면 어떡해?
 
토죠 카즈야:옷은 너가 더 얇은데, 원피스에 자켓이라니. (지갑만 챙기고 옷을 당신에게 다시 돌려준다) 감기 걸리는 건 내가 아니라 너겠다.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면 더 그렇겠고. (살짝 웃고는 편의점을 향해 앞장선다)
 
히마리:그야~ 실내에만 있을 줄 알아서 좀 가볍게 입고 왔었지~ (호의를 거부하진 않겠다는 듯 제 어깨에 당신의 겉옷을 둘렀다.) 다정하구만~ 여전하네. (그리 말하곤 웃음소리를 내었다.) 나 이젠 건강한데~ 그렇게 걱정까지 해주고.
 
토죠 카즈야:그럼 갈 땐 어쩌려고~ 설마 얼굴 도장만 찍고 가려고 했어? 그런 거면 나 진짜로 서운했겠다. (앞장서 걷는 종종 뒤를 돌아 당신이 따라오는 걸 확인한다) 그래~ 내가 전부터 다정의 대명사였다. 말 나온 김에 이번 편의점도 내 호의, 여러 개를 사도 좋고 비싼 거를 사도 좋아.
 
 
 
밤공기는 차갑고
 
알코올에 취한 몸은 뜨겁습니다.
 
그래요, 이렇게 시간이 되었다는 건
 
곧 당신은 그 삭막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겠지만요.
 
당장은 혀에 닿는 아이스크림이 마음에 듭니다.
 
카즈야는 한참 말이 없습니다.
 
술집 간판도 가까워지는데 아쉬운 게 있다면
 
울리는 경적 소리 쌀쌀한 밤공기 대신
 
곧 다가올 주정뱅이들의 비명들을 들어야 한다는 것,
 
또 아마 카즈야와의…….
 
...
 
술집이 즐비한 거리에는 골목이 많습니다.
 
골목마다 들여다본다면 별별 사람이 많겠지만
 
흡연자, 술에 꼴아 속을 게워내는 취객,
 
눈이 맞아 키스하는 타인들,
 
더 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카즈야가 당신의 손목을 쥐고
 
골목 구석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에만
 
집중하는 게 좋겠습니다.
 
...
 
벽에 등을 댄 당신,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카즈야,
 
입술을 붙이고 축축한 점막을 훑어내는……
 
보이는 것보다 부드럽고 따뜻합니다.
 
잠시만요.
 
지금 이거 키스인가요?
 
곧 입술을 떼어낸 카즈야가 당신에게 묻습니다.
 
토죠 카즈야:나 취했어.
싫었어?
 
히마리:... (시선이 흔들린다. 달뜬 숨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멍하니 당신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 뿐이었다. 싫냐는 말에 대한 답. 싫지 않아. 곧 고개를 푹 숙였다.) ... ... (거지같은 죄악감이다. 그리 생각했다.)
 
토죠 카즈야:(푹 숙인 고개가 설레설레 흔들리는 것을 본다. 실수였을까 욕심이었을까, 먼저 입을 맞춘 자가 누구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사랑, 일까. 어쩌면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싫다고 뺨을 치지 그랬어. ....우리 많이 취한 거 같다. 아니, 많이 취했어. (목에 걸린 말들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가자. 데려다 줄게.
 
히마리:(심장이 아직도 두근거린다. 인간이라면 심장이 뛰는 것이 당연하지만, 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지만 이정도로 뛴다면... 다시금 당신을 바라보았다. 의중을 모르겠다. 그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그저 취한 취객 2명의 한 실수인 걸로, 다음날엔 모두 잊겠거니 하며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곤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응.
 
카즈야는 차를 끌고 오겠다며
 
당신을 두고 골목을 떠납니다.
 
여전히 당신의 심장은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아까의 것은 그냥 술에 취해 벌인 일이나
 
잠시간의 일탈과 같은
 
그런 가벼운 것으로 치부해도 되겠죠.
 
집으로 돌아가요.
 
...
 
...
 
이곳은 탐사자의 행복한 집인가요?
 
익숙한 비밀 번호를 입력하고 들어서면
 
아무도 없는 넓은 집이 당신을 반깁니다.
 
그러고 보니 출장을 간다고 했던가요,
 
휴가를 간다고 했던가요?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집에서
 
당신의 건조한 발소리만 울립니다.
 
적어도 아까는 시끄러워
 
귀를 막아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말이에요.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몸을 빠뜨리는 게
 
이런 기분이겠습니다.
 
...
 
...
 
사랑했었나요?
 
사랑하는 건 아니었나요?
 
혹시 배우자의 돈을 사랑했던 건가요?
 
속으로 무엇을 바라고 결합을 맺었든
 
아무도 당신에게 손가락질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하지 못할 거고요.
 
이 결혼은 적법한 형식으로
 
두 사람과 양가의 동의하에 이루어졌습니다.
 
비록 동화 속처럼 왕자님과 공주님은 결혼하여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결론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요.
 
……카즈야는,
 
나중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될까요?
 
빈궁하고 불행하더라도
 
사랑 하나로 견디는 삶을 살게 될까요?
 
무턱대고 입을 들이대는 것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에겐 죽고 못 살 것이 분명합니다.
 
그 어떤 불온한 짓거리라도
 
사랑이라면 뛰어들 것이 분명해요.
 
그도 그럴 게
 
이미 결혼한 당신에게 입을 맞췄잖아요?
 
어서 잠이나 잡시다.
 
오늘은 배우자가 들어오지 않을 테고
 
술 덕에 기절하듯 잠에 들 수 있을 테니까요.
 
...
 
...
 
다이 포 미
 
...
 
첫 날
 
...
 
배우자는 휴가를 간다고 했었나 봅니다.
 
싱숭생숭하게 잠든 날 새벽,
 
배우자의 개인 소유 화재 사실과
 
완전히 재가 되어버린 배우자의 소식을 들었으니까요.
 
장례 준비는 끝을 내고서
 
경찰의 조사 결과만 기다리던 때
 
마침내 이튿날인 오늘 아침
 
유골을 전해 받았습니다.
 
배우자 된 도리로 장례식 사흘은
 
제대로 보내 줘야 하지 않겠어요.
 
검은 옷을 입고 상주 자리에 앉은 당신에게
 
경찰 관계자가 다가옵니다.
 
형사: 유감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히마리:... (멍하니 있다가 그저 쓰게 웃음을 담았다.)
 
형사: 궁금...하실진 모르겠으나 알려야 할 건 알려야 될 것 같아서...
 
히마리:...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듣겠다는 듯 형사를 바라보았습니다.)
 
형사: 사건과 관련돼서 입니다. 사건이 아니라 사고라 판정이 되네요.
 
히마리:... 사고요?
 
형사: 안에서 뭘 찾아보려 해도 다 타버려서 확인할 증거가 있어야죠... 아유,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소방 측에서 말하길 가스관 과열 때문에 화재가 났다고 하고 딱히 별다른 방화의 증거가 없어서 사고사로 처리 될 거 같습니다.
 
히마리:... (난, 가슴이 아팠나,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나. 그럼에도 한 사람이었는데. 돈만 보고 결혼을 했다곤 해도, 그도 사람인데. 사람의 죽음에 이토록 오묘한 감정을 가져보기는 또 처음이다. 차라리 사건이 아니고 사고인 게 다행이려나.) ... 그런가요... ...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무어라 더는 할말이 없어 그저 다시금 애써 미소를 지었다.)
 
형사: 아직 나이도 젊으신데 이렇게 큰 사고를 겪어서는... 아이고, 제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힘내시라는 말씀밖에...
 
...
 
결혼식과 장례식,
 
온갖 식들은 보기 싫은
 
가족들의 얼굴을 보아야만 하는 날입니다.
 
평소에 행사에 자주 참석해
 
얼굴을 비췄든 그렇지 않든
 
이 장례식은 당신의 배우자를 위한 것이니까요.
 
배우자의 가족들은
 
당신을 아니꼽게 보는 것을 알면서도요.
 
피를 나눈 가족을 잃은 건 그들이니
 
비위를 맞춰 주어야 하나 심란해집니다.
 
형사가 떠나고 나면
 
배우자의 부모부터 빈소로 들어옵니다.
 
걸음마다 당신에 대한
 
악의가 묻어 나오는 것 같네요.
 
자, 지금부터 연기 시작입니다.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날이 되어야 하니까요.
 
[대인 기능 판정]
 
히마리:
설득
기준치: 60/30/12
굴림: 66
판정결과: 실패
(제발)
(한 번만... 더?)
 
[대인 기능 판정]
 
히마리:
설득
기준치: 60/30/12
굴림: 1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휴.)
 
당신을 향한 악의를
 
여실 없이 드러내는 배우자의 부모 앞에서
 
당신은 비극을 맞은 연극 주인공처럼
 
창백한 얼굴을 내비치는 데에 성공합니다.
 
당신에게 삿대질을 하려던 남자의 손이
 
등 뒤로 돌아가는 게 보입니다.
 
...
 
두 번째는 배우자의 형제입니다.
 
위로 여자 형제 하나 아래로 남자 형제 둘.
 
이들 또한 당신을 향한 악의를
 
숨길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출처는 당연히 배우자의 재산에서 온 것이겠지만요…….
 
[대인 기능 판정]
 
히마리:
설득
기준치: 60/30/12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
(한 번만... 더?)
 
[대인 기능 판정]
 
히마리:
설득
기준치: 60/30/12
굴림: 6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와...)
 
이 세상에 순수성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요,
 
당신은 순수하고 우울한 얼굴을
 
지어내는 데에 성공합니다.
 
유산은 당신의 주머니로 굴러 들어오겠지만
 
저 형제들은 적어도 이 자리에선
 
목청을 높일 수 없을 것입니다.
 
...
 
세 번째는 배우자의 사촌입니다.
 
명절이면 꼬박꼬박
 
배우자에게 전화하던 인물이었죠.
 
기억납니다.
 
그렇지만 슬퍼 보이는 얼굴은 아닙니다.
 
역시나, 당신에게 분노해 있네요.
 
도대체 당신이 한 것이라곤 결혼뿐인데
 
이 가족들은 욕심에
 
발바닥이 간지럽기라도 한 모양입니다.
 
[대인 기능 판정]
 
히마리:
설득
기준치: 60/30/12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ㅋㅋ)
(한 번만요)
 
[대인 기능 판정]
 
히마리:
설득
기준치: 60/30/12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은 타고난 연기자인 것 같습니다.
 
쓰러진 것도 눈물을 흘린 것도 아니지만
 
상대의 기세가 깎입니다.
 
결국 절을 두 번 올리고
 
빈소를 떠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못했어요.
 
조금 멀리서 시선이 느껴지는 게
 
아마 후회하는 중일 겁니다.
 
차라리 악의 대신 살갑게 대했으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졌을 텐데 하고.
 
...
 
당신은 여전히 빈소에 앉아 있는데
 
사람 말소리가 들려옵니다.
 
파열음의 강조가 심한 것을 보니
 
분명 뒷말을 하는 중이겠네요.
 
[듣기 판정]
 
히마리: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배우자 가족들의 목소리입니다.
 
이럴 줄 알았죠.
 
굳이 빈소 근처에서 떠드는 걸 보면
 
다 당신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 게 분명합니다.
 
: 돈 들어온다고 얼굴 펴진 거 못 봤니?
처음부터 사랑은 무슨 이제까지 자식 하나 없는 거 보면 답 안 나오냐. 딱 보니 둘 다 뒤로 애인 끼고 논 것 같건만.
눈깔도 건조한 게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던 거야.
혹시 경찰 매수해서 사건 날조한 거 아냐?
 
별의 별 소리를 다 지껄입니다.
 
우연한 죽음을 가져다
 
당신 탓을 하는 걸로도 모자라 매수라니요.
 
막장 드라마 작가를 했다면
 
크게 성공해 떼돈을 벌었을 텐데
 
아쉬울 지경입니다.
 
아무래도 신경은 끄는 게 좋겠죠.
 
곧 그들의 발소리가 이어집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이라더니
 
사흘 내내 장례 자리를 지키는 건
 
내키지 않나 보네요.
 
불쾌한 이들이 휩쓸고 지나가면
 
시간은 벌써 자정에 가까워졌습니다.
 
잠깐 눈 붙여야죠, 히마리.
 
아마 새벽 시간을 내어 오는 이들은
 
굳이 당신을 깨우지 않을 겁니다.
 
...
 
...
 
이튿 날
 
...
 
아침부터 장 내가 소란스럽습니다
 
자산가의 죽음은 이렇게 시끄러운 건가요?
 
이미 재로 변한 배우자가
 
시끄럽다며 살아날 수도 있겠습니다.
 
이들은 회사 임원들, 그리고 기자들입니다.
 
매너가 있지
 
기자들까지 출입할 줄은 몰랐는데
 
유독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이사진 일곱 중 둘이 빈소에 발을 들입니다.
 
회사를 대표해서 온 모양이네요.
 
: 빠른 시일 내에 주주 총회를 열 예정입니다. 공석이 너무 길어지면 안 되니까요. 히마리씨도 아마 유산을 통해 주주가 되실 테니 총회 전 식사 한 번 합시다.
 
그리고 절 두 번 후 퇴장합니다.
 
이런 게 악의도 선의도 없어
 
깔끔한 인사겠네요.
 
기자는 회사 임원들에 의해
 
하나 둘 쫓겨나고 있으니
 
악의를 잔뜩 묻히고 들어선
 
가족들의 눈초리를 받던
 
어제에 비해 참 순탄합니다.
 
하루 하고도 반나절만 더 버티면 됩니다.
 
그럼 이 모든 고생과는 작별이라고요!
 
그런데...
 
저 멀리서 누군가 소리치는 소리가
 
귀에 꽂힙니다.
 
히마리:(?)(뭐지...)
 
기자: 히마리씨 배우자의 불륜 사실은 알고 계셨습니까?
 
히마리:(???)
 
기자: 히마리씨! 배우자의 불륜 상대를 알고 계셨습니까?
 
히마리:(......)
 
히마리씨! 대답해 주세요!
 
장례식장 복도에서
 
소리치는 모양입니다.
 
울리고 불분명하지만
 
못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알고 있었나요?
 
히마리, 당신은 적어도
 
결혼 생활의 신의는 지켰습니다.
 
남들은 뭐라 할지 몰라도
 
적어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말이에요.
 
사랑이 넘치는 생활이었냐
 
묻는다면 아니지만
 
또는 순수한 목적이었냐
 
묻는대도 아니었지만
 
그래도요,
 
불륜은 하지 않았죠.
 
사실 하나를 알고 나니
 
다른 상상이 이어집니다.
 
휴가를 혼자 간 게 아니라면?
 
과 같은 질문이요.
 
결국 기자들은
 
빈소 안으로 진입합니다.
 
결혼식 때도 분명
 
이런 일이 있던 것 같습니다.
 
출입을 삼가 달라는데
 
카메라를 밀고 들어와
 
행진의 끝에선
 
질색하는 얼굴의 사진이
 
찍혀야 했습니다.
 
이렇게 일관적인 것도 능력입니다.
 
쓰레기 같은 능력이지만요.
 
대처합시다.
 
[대인 기능 판정]
 
히마리:
설득
기준치: 60/30/12
굴림: 66
판정결과: 실패
(이젠 뭐...)
(한 번 더...)
 
[대인 기능 판정]
 
히마리:
설득
기준치: 60/30/12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
 
저들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던 거겠죠.
 
당신이 아무 말 없이
 
자신들을 쳐다보는 것만 보고도
 
카메라를 내리고 도망쳤으니까요.
 
누구에게 당신의 이 모습을 팔아
 
배를 불리려는 걸까요.
 
곧 유산을 받아 누구보다 부자가 될
 
당신의 모습을 보고 기사에
 
좋아요, 슬퍼요 따위를
 
달 사람이 있긴 할까요?
 
...
 
겨우 기자들을 떠나보낸 식장입니다.
 
한바탕 물난리를 겪은 것처럼
 
온몸에 힘이 다 빠지는 것 같습니다.
 
접객실에서 회사 임원들은
 
당신을 보며 수군댑니다.
 
이름만 가족으로 묶인 그들과 달리
 
악질적인 것 같은 느낌은 아닌 것 같은데….
 
[듣기 판정]
 
히마리:
열쇠공
기준치: 1/0/0
굴림: 35
판정결과: 실패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실수)
 
이름도 언급하지 않는 데다
 
처음 듣는 목소리라
 
누군지는 영영 모르겠네요.
 
빈소 근처에 자리 잡은 그들은
 
대화를 시작합니다.
 
: 회장님 나이 꽤 젋지 않으셨나?
 
: 사고사라잖냐.
 
: 난 아까 빈소에 앉아 있는 사람 보고 딸인 줄 알았어.
 
: 회사에서 가끔 말 나오잖아. 돈 보고 결혼한 게 틀림없다고!
 
개인사가 회사에서도
 
회자되는 모양입니다.
 
어쩌다 보니 히마리, 유명인이 됐네요.
 
하는 수 없습니다.
 
못 들은 척 빈소를 찾는 이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것밖에요.
 
사실은 이런 것이다 하고 결혼 목적부터
 
현재까지 털어 놓을 수 있을 리 없잖아요?
 
그나저나 이 좁은 빈소에 갇혀
 
벌써 이틀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접객실도 거의 비었음을 인지합니다.
 
심지어 해가 저물어 잠깐 들렀다 가는
 
회사 직원들을 제외하면
 
방문객도 줄어들어
 
오늘은 더 신경 쓸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결혼 생활보다 이 이틀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면 비약일까요?
 
허리가 배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잠깐 눈 좀 붙여요, 히마리.
 
...
 
...
 
사흗 날
 
...
 
삼일장의 마지막 날이네요.
 
유골은 납골당에 안치하면 될 일이고,
 
첫날 이후로 가족들은 눈에 띄지도 않고,
 
이제 배우자와 관련해 남은 건
 
유언장밖에 없네요.
 
오늘 오전 중으로
 
변호사가 온다고 했던가요.
 
생각과 동시에 뭉툭한 구두 굽이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가 납니다.
 
변호사가 왔나 보네요.
 
꽤 유감스러워 보이네요.
 
어쩌면 당신보다 더요.
 
변호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바로 이런 이야기는 그렇지만, 사전에 쓰신 유언장을 꺼내 볼까요.
 
히마리:... 네. ... 수고스러우실텐데 감사합니다...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변호사는 검은 서류 가방의 잠금 장치를
 
하나씩 해제합니다.
 
당연한 내용일 게 분명한데
 
금속이 부딪히는 철컥 소리 두 번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변호사는 표정 알아채기가 힘든 사람입니다.
 
열린 가방 너머 흰 종이가 보입니다.
 
변호사는 마지막 점검을 하듯이
 
천천히 내용을 살피는 것 같네요.
 
...
 
변호사는 당신에게 유언장을 건네는 대신
 
다시 서류 가방을 접어 둡니다.
 
왜죠?
 
변호사: ...회장님께서 현재 사모님이 살고 계시는 집의 명의만 귀속하겠다 하셨습니다.
그 외의 모든 지분, 땅, 등은 전부 다른 분께 상속됩니다.
회장님께서... 비밀 유지를 요청하셔서 누구인지는 알려드리지 못합니다.
 
당신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나요?
 
결혼의 목적부터
 
법적인 결합으로 묶인 시간이 아까워지고
 
죽은 이의 영정 사진에
 
침을 뱉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나요?
 
당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든,
 
변호사에게 어떤 말을 하든
 
변호사는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합니다.
 
비밀 유지가 직업의 생명이라나요.
 
변호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맞은편에 앉은 당신에게
 
시선도 두지 않고
 
다시 그 딱딱한 구두를 신고
 
딱딱한 서류 가방을 든 채……
 
식장을 떠납니다.
 
당신에게 남은 게 뭐죠?
 
이렇게 죽어버리기 전에
 
차라리 이혼을 했다면
 
위자료를 더 크게 받아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뒤늦게 찾아옵니다.
 
...
 
빈소 내부에 검은 인영이 보입니다.
 
검은 옷과 대비되는 머리카락,
 
절을 두 번 올리는 모습까지
 
당신은 지켜보기만 했나요.
 
상주 자리 맞은편에 무릎 꿇고 앉아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토죠 카즈야:내가 너무 무턱대고 찾아왔나...?
 
히마리, 예상했나요?
 
그러니까…… 카즈야입니다.
 
히마리:(?)... 카즈야?
 
슬퍼 보이는 얼굴에
 
며칠 전보다 수척해진 것도 같고
 
게다가 들린 목소리는 떨리기까지 합니다.
 
왜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카즈야와 배우자가
 
아는 사이였을 리 없는 데다
 
카즈야는 당신에게 입을 맞췄는데요.
 
그래요, 또 떠올리고 말았습니다.
 
그 골목을요.
 
영정 사진 속 배우자가 우리를 쳐다보는 게
 
이토록 선명히 느껴지는데 말예요.
 
...
 
카즈야는 천천히 몸을 일으킵니다.
 
빈소 밖으로 나가는 줄 알았더니
 
당신에게 손을 뻗네요.
 
토죠 카즈야: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히마리:...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잠깐이라면... 괜찮지.
 
카즈야는 당신을 접객실 구석 자리로 이끕니다.
 
내부는 방문객이 없어 텅 빈 상태였는데
 
굳이 구석으로요.
 
카즈야는 뜸을 들이는 것처럼
 
테이블 한쪽에 놓인
 
캔 음료만 만지작거립니다.
 
토죠 카즈야:들어버릴... 생각은 없었는데 변호사가 하던 말, 들어버려서.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나 경찰이라고. 과는 관련이 없지만 주변에서 비슷한 경우를 많이 봤어. 불륜 상대가 받았을 거야. 너가 받았어야 될 재산들...
 
히마리:... 응? (멍하니 눈만 꿈뻑였다. 역시 예상이랑 맞다는 듯 그렇게 충격받은 얼굴은 하지 않았다. 조금 쓰게 웃으면서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진실을 말을 할지, 말지 입을 달싹이다가 말았다. 여전히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카락을 괜히 손가락으로 빙빙 꼬았다.)
 
토죠 카즈야:(충격조차 받지 않는 당신을 보고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좋은 사람이라고 했잖아. 사실은 거짓말인거지...? ... 내 개인적인 욕심일지도 몰라. 그래도, 도와주고 싶어. 저 사람을 사랑했든 안 했든 힘들잖아. 그 사람이 남긴 유언을 내가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사람, 불륜 상대라도 같이 찾아줄게.
정신이 없어서 명함은 못 들고 왔는데 여기, 내 전화번호야.
연락 줘. 기다릴게, 히마리.
 
카즈야는 그 말을 남기고는 일어납니다.
 
카즈야의 발소리는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기척을 알아채기가 어렵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었나요.
 
그것까진 모르겠으나
 
구두 굽 소리마저 작게 울립니다.
 
의뭉스러운 사람인 것 같아요.
 
명쾌하지 않은 부분만 잔뜩입니다.
 
카즈야가 떠나고 나면
 
드디어 이 삼일장도
 
마무리를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리무진이 당신과 잿더미…
 
아니 유골을 데리러 왔네요.
 
검은 마스크를 쓴 운전자가 창문을 내립니다.
 
앞자리에 타면 되는 거겠죠.
 
당신이 앞자리에 타고 나면
 
트렁크가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짧게 들립니다.
 
시동이 켜지는 것부터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것까지,
 
부드럽기만 한 차입니다.
 
돈이 좋긴 해요.
 
에어백도 잘 터지겠죠?
 
트럭이 들이받는 건 못 견디려나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리무진은 근처의 납골당에 도착합니다.
 
: “어딜 들어 와 네가?”
 
당신이 탄 리무진 앞에 버티고 선
 
배우자의 여자 형제입니다.
 
분이 아직도 안 풀렸나 보죠.
 
아쉽습니다.
 
어차피 돈은 당신도, 가족도 아닌
 
이름도 모를 이에게 상속될 텐데요.
 
어찌나 관심도 없었으면
 
당신에게 화풀이를 할까요.
 
: “네가 죽였잖아! 어딜 그 뻔뻔한 낯짝을 달고 들어 오냐고!”
 
또 그 헛소리를 소리치며
 
당신의 어깨를 밀칩니다.
 
어떻게 할까요, 히마리?
 
집으로 돌아가든
 
납골당에 유골이 안치되는 모습까지
 
보고 돌아가든 상관은 없습니다.
 
다만 이 안에 있는 다른 가족들이
 
당신을 어떻게 취급할지가 문제인 거겠죠.
 
히마리:(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억울한 것도 토해내지 않겠다는 듯 덤덤한 얼굴로 제 어깨를 밀치든지 말지 그대로 여전한 얼굴로 버티고 있는다. 마지막 예의이자 하나의 오기라고 봐야겠지.)(남아서 납골당에 유골이 안치되는 모습까지 보고갑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첫날에 잠깐 얼굴을 비추고 사라진
 
가족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럴 거라면 당신 말고 저들이
 
알아서 장례를 치르면 될 일 아니었나 싶네요.
 
어쨌든 당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는 눈들이 꽤 여럿입니다.
 
머리에 하얀 띠를 매고 있는
 
배우자의 어머니가 당신의 앞으로 다가옵니다.
 
: “지분, 네 거 아니라더라?”
 
그 말에 뒤에 서 있던 가족들이 경악합니다.
 
아침 드라마의 한 장면인가요?
 
이 콩가루 집안에서 살아 왔을 배우자가
 
불쌍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지, 괘씸하긴 하죠.
 
그렇지만 지분을 받지 못한다는 걸
 
여기서 소리치는 건
 
어쩌자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인 기능 판정이 가능]
 
히마리:
설득
기준치: 60/30/12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몇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사실을 인정한 것뿐이죠.
 
어쩌겠어요.
 
당신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유언장의 내용은 알지 못할 겁니다.
 
변호사를 닦달해 얻어낸 작은 정보 가져다
 
유난 떨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 “앞으로 다신 보지 말자꾸나.”
 
이건 당신이 바라는 바고요.
 
상황이 잘 풀렸네요.
 
기분은 더럽지만요.
 
...
 
기분은 더럽지만요.
 
가족들의 소란이 있던 것 치고
 
유골 안치는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됩니다.
 
스님의 지루한 목소리로 이어지는
 
염불 덕분이지만요.
 
흐느끼는 사람이 하나 없습니다.
 
인생도 죽음도 건조한 사람이었네요,
 
배우자는.
 
스님의 목소리가 끊기는 것과 동시에
 
유리관 안에 유골함이 들어간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요, 정말 끝입니다.
 
이제 좀 쉴까요.
 
스위트홈
 
이곳은 당신의 행복한 집인가요?
 
익숙한 비밀 번호를 입력하고 들어서면
 
아무도 없는 넓은 집이 당신을 반깁니다.
 
앞으로도 꽤 오래 아무도 없을 예정이지만요.
 
어느새 어두워진 집 안은
 
오늘따라 공기가 차가운 것만 같습니다.
 
정말 혼자인가 봐요.
 
히마리, 어떤가요?
 
후련할 수도 있고 쓸쓸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여전히 배우자의 물건은
 
집 안 곳곳에 남겨져 있어
 
다 치우려면 시간이 걸리겠어요.
 
방으로 들어서며 겉옷을 벗자
 
당신의 옷 주머니에서
 
무언가 툭 하고 떨어집니다.
 
적막한 집 안이라 그런지
 
소리가 유독 크게 나네요.
 
무언가를 확인해 보면 쪽지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카즈야가 연락을 달라고 했었죠,
 
당신의 돈을 꿀꺽한 인간을 찾고 싶다면요.
 
쪽지에는 이름과 전화번호
 
단 두 정보만 적혀 있습니다.
 
...
 
이 결혼을 왜 했나요, 히마리?
 
주머니에 남는 게 없다면
 
굳이 결혼으로 시간을 버릴 필요가 있었나요?
 
이젠 모 아니면 도입니다.
 
불륜 상대를 찾아
 
뭘 할지 아직 모르겠어도 괜찮아요.
 
찾고나 봅시다.
 
속는 셈 치고 카즈야에게 전화해 보자고요!
 
히마리:(아직도 망설인다. 정말로 괜찮을지, 아닐지. 그렇지만 그동안 죽여온 시간과 마음, 정신 모두 아무 쓸모가 없어지고 상황도 그대로 도로 돌아오게 되는 거라면 의미가 없지 않을까. ...그리고, 먼저 제안해준 거니까...) ... (작게 한숨을 쉬고는 카즈야에게 전화를 겁니다.)
 
당신이 전화를 건다면
 
연결음이 두 번 채 지나기도 전에
 
카즈야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토죠 카즈야:히마리, 결정했어?
 
히마리:(목소리를 듣고 멈칫한다. 그리곤 느릿하게 입을 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 나 좀 도와줄래?
 
토죠 카즈야:그... 불륜 상대를 찾겠다는 거지? (전화 너머로 약간의 떨리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잘, 결정했어. 다행이다. 영영 연락 안 줄까 걱정도 했거든.
...내일 저녁에 찾아가도 될까? 일이 있어서 낮엔 힘들 것 같아. 어때...?
 
히마리:...응. (가만히 당신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뭐라고 말할 것도 떠오르지 않았을 뿐더러, 저번의 만남처럼 기분이 좋은 편도 아니었기에. 괜히 입을 열었다가 상처되는 말을 할까봐 애써 참았다.) ... 그럼. 어차피 난 이제 시간도 많은 걸. 카즈야 편할대로 해줘.
 
토죠 카즈야:... 그래. 내가 부담, 주는 건 아니지? (당신에게 할 수 있는 말을 찾았지만 그 어느 것도 발견하지 못해 한동안의 정적이 생긴다.) ... ... 그만 끊을게. 내일 보자.
 
히마리:으응. 전혀 아니야. ... 그랬으면 내가 왜 카즈야한테 전화를 했겠어. (작게 만들어낸 웃음소리를 흘렸다.) 알겠어. 수고해.
 
전화가 끊기고 나면
 
집의 적막이 더 구체적으로 체감됩니다.
 
차라리 돈이 부족했다면
 
냉장고의 덜덜거리는 소음 덕에 시끄럽다
 
불평했을 텐데 말입니다.
 
가진 건 이 집밖에 없으니
 
추후 언젠가 그렇게 될지는 몰라도 당장은요.
 
그렇지만 어차피 사랑도,
 
정도 없던 결혼과 배우자였습니다.
 
아니라고요?
 
사랑했었다고요?
 
그럴 리가요.
 
더 이상 남들을 속일 필요도 사라졌는데
 
스스로 합리화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배우자는 끝까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애인을 숨겨 왔던 것도 그 애인에게,
 
추정이지만, 재산을 넘긴 것도요.
 
피차 뭣도 없던 건
 
배우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위신을 세우기 위해
 
당신과 결혼했을지도요.
 
카즈야 생각이 불쑥 떠오릅니다.
 
필연적으로 키스와
 
그 축축한 골목도요.
 
솔직하게 살면,
 
사랑하면,
 
행복할까요?
 
[건강 판정]
 
히마리:
건강
기준치: 50/25/10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
 
히마리, 피곤하지 않나요?
 
당장 잠에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쓰러지고 싶지 않다면요.
 
 
 
창밖이 어두워진 지 두 시간,
 
드디어 초인종이 울립니다.
 
카즈야겠죠.
 
문을 열어 주면
 
집들이도 아닌데 과일 바구니를 사 들고 온
 
카즈야가 보입니다.
 
이건…… 사심이겠죠?
 
어쨌든 집 안을 돌아다니는 카즈야는
 
여전히 발소리가 작고
 
기척을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시야 안에서 머무니 다행인 일이네요.
 
그런데 어째 카즈야가 집 구조를
 
묻지도 않고 돌아다니는 것이,
 
몇 번 와 본 사람 같아 보입니다.
 
그저 집의 구조가 단순했거나,
 
파악을 잘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요.
 
히마리:(?)(신기하네... 경찰이라 그런가...)
 
카즈야와 함께 거실주방안방테라스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히마리:(카즈야를 따라 거실로 이동합니다. 익숙하지만... 조금 어색하기도...)
 
[거실]
 
현관과 복도를 지나면 바로 나오는 공간입니다.
 
이 집 안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TV테이블소파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히마리:(뭘 해야할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TV를 봐봅니다.)
 
[TV]
 
벽걸이 TV입니다.
 
최신형으로 두께도 얇은 데다
 
색도 선명이 잘 나오는,
 
기술의 총집합입니다.
 
카즈야가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누르는 것과 동시에
 
전원이 켜집니다.
 
뉴스를 하고 있나 보네요.
 
: “배우자 H씨는 불륜 사실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것 같아 보였으며…….”
 
...
 
이런 게 하지 않을 리가 없죠.
 
장례식장을 지키는 사흘 간
 
언론에서는 얼마나
 
당신을 물어뜯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관심한 배우자나 어쩌면 당신도
 
뒤에 애인을 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나도 슬퍼 보이지 않는다 식으로요.
 
말은 항상 쉽습니다.
 
사실도 입과 입을 구르다 보면
 
결국 허위가 되어버리고 마는 세상에서도요.
 
히마리:... (별 말 없이 TV를 끄고는 테이블 쪽으로 가봅니다.) 참... 다들 말들이 많다. 그치.
 
토죠 카즈야:... 그러게. ... 괜히 틀었다. 미안...
 
[테이블]
 
원목으로 만들어진 원형 테이블입니다.
 
위, 아래 전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네요.
 
당신은 한 적이 없으니
 
아마 도와주러 오신 분의 솜씨일 겁니다.
 
그런데 못 보던 책이 올라와 있네요.
 
양귀자의 모순입니다.
 
읽어본 적 있나요?
 
히마리:(음...? 잃어본 기억은 없는데...)(책을 펼쳐볼 수 있나요?)
 
책을 펼쳐본다면,
 
눈에 들어오는 별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히마리:(천천히 책을 덮고는 소파 쪽으로 가봅니다.) 일 때문에 힘들텐데. 너무 무리는 하지 말아줘. 도와준다는 것 만으로도 많이 위로가 됐으니까.
 
[소파]
 
카즈야는 아까부터 소파 쿠션 사이마다
 
손을 넣어 무언가를 확인해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죠,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이런 곳에 꼭 귀걸이나 명함 같은 게
 
떨어져 있기는 합니다.
 
어디 쿠션 사이에 손을 넣어
 
카즈야를 도와줘 볼까요?
 
[행운 판정]
 
히마리:
행운
기준치: 80/40/16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쿠션 사이로 쑥 손을 집어넣는 순간
 
손가락 끝에 금속의 것이 걸립니다.
 
꺼내 보면 제법 비싸 보이는 반지입니다.
 
히마리:... (?) 카즈야. 나 이거 찾았어. (반지 꺼내고는 카즈야에게 가봅니다.)
 
토죠 카즈야:그래? 결혼 반지 아니야?
 
배우자의 것이었을까요?
 
자신의 손에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차라리 맞는다면 카즈야일 것 같습니다.
 
히마리:(이상하다는 듯 계속 반지를 빤히 바라보다가 주방으로 이동합니다.)
 
[주방]
 
당신과 배우자는
 
거의 출입할 일이 없던 곳입니다.
 
어쩌면 당신에게 가장 낯선 곳일지도 모르겠어요.
 
난색의 조명을 단 샹들리에로 꾸며진 주방이건만
 
휑한 느낌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불륜 상대의 흔적을
 
어째서 주방에서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일랜드 식탁조리대냉장고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히마리:(천천히 아일랜드 식탁을 둘러봅니다.)
 
[아일랜드 식탁]
 
카즈야는 긴 의자를 빼 앉습니다.
 
당신은 언제 이 식탁을 사용했었나요?
 
나가기 전 가벼운 아침을 먹을 때?
 
눈길조차 잘 주지 않았던 것만 같은데,
 
어째 카즈야가 더 이 집의 주인 같아 보이네요.
 
능청스럽게 아일랜드 식탁 한쪽에 놓인
 
컵들과 차 세트를 구경합니다.
 
그나저나, 배우자가
 
이런 것들을 모아 두는 성격이었나요?
 
언제부터 이런 게 있었지…….
 
뚜렷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참 정 없이 살았네요.
 
집에 뭐가 없어지고 생기는지 하나 모르다니요.
 
사는 게 바빠 그랬단 변명도 어렵습니다.
 
배우자 잘 만나 쫙 펴진 인생 살아온 게
 
당신 아니었나요?
 
히마리:(...)(뭔가 조금 수상한데.)
(식탁과 컵, 찻잔 세트를 빤히 바라보다가 조리대로 이동합니다.)
 
[조리대]
 
조리대 위 앞치마가
 
대충 구겨진 채 놓여 있습니다.
 
대충 구겨진 채 놓여 있습니다.
 
어째 본 적 없는 디자인의 앞치마인데요.
 
이런 앞치마를 사용한 적이 있었나요?
 
당신에겐 도저히 어울리지도,
 
맞지도 않습니다.
 
히마리:... (앞치마를 대충 정리해두고 냉장고로 가봅니다.)
 
[냉장고]
 
당신이 냉장고의 양쪽 문을 열면
 
평소 보던 반찬들과
 
어색한 중앙의 케이크 박스를 발견합니다.
 
축하할 일이 있던가요.
 
아니요, 없었습니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의 경사를 축하해 주는 사이였나요.
 
토죠 카즈야:히마리, 무슨 케이크 좋아해? 이건 생크림 같은데.
 
자연스럽게 케이크를 꺼내
 
아일랜드 식탁으로 가지고 간 카즈야가 묻습니다.
 
히마리:(있는 줄 몰랐던 걸 보게 되자 얼떨떨하게 멍을 때리다가 들려온 목소리에 대답했다.) 딸기~? 단 건 다 좋아해서.. 나쁘진 않은데.
 
종이 박스 포장을 열어 드러난 케이크는
 
샹들리에 빛을 받아
 
더 먹음직스러워 보입니다.
 
카즈야는 안에 든 플라스틱 빵 칼로
 
케이크를 대충 퍼 입 안에 넣고는 삼킵니다.
 
그 다음으로 입가에 묻은 생크림을
 
손끝으로 닦아 핥아 먹는 것까지…
 
감상하고 나면 다시 카즈야가 입을 엽니다.
 
토죠 카즈야:그래? 나도 좋아해, 생크림.
 
어쨌든 마음에 들었단 소리네요.
 
두어 번 더 먹다 칼을 내려놓습니다.
 
히마리:(자긴 먹을 생각이 딱히 없는 건지 천천히 몸을 돌려 안방으로 이동합니다.)
 
[안방]
 
이 방은 당신의 생활 범위는 아닙니다.
 
안방은 배우자의 것,
 
현관과 가까운 방을
 
당신의 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몇 번 들어와 본 적도 없는 공간에
 
발을 들이자니 어색합니다.
 
이런 당신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즈야는 어느새
 
당신의 손목을 잡아 이끌고 있습니다.
 
마치 그 골목에 들어가던 것처럼 말이에요.
 
안방은 침대드레스 룸화장대욕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히마리:(침대를 먼저 살펴봅니다.)
 
[침대]
 
더블 사이즈의 침대입니다.
 
흰색의 두꺼운 이불 아래
 
흰색의 베개가 깔려 있습니다.
 
얼룩 하나 없는 게
 
배우자의 강박이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이긴 했어도,
 
이 공간 특히 이 침대는
 
너무나 사용감이 없습니다.
 
인간 냄새도 어떤 흔적도 안 보여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매일같이 밖에서 자던 사람은 아니었는데.
 
이런 사색을 깨뜨리는 건 카즈야입니다.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이불을 만져보고
 
상체를 힘을 빼 넓은 침대 위로 무너지는,
 
이 공간에 사람의 흔적을 남기는 중이니까요.
 
토죠 카즈야:왜 그렇게 서 있어. 이리 와 잠깐 앉자.
 
죽은 사람의 방에서,
 
살아있는 사람과.
 
묘합니다.
 
당신은 옆에 가서 앉나요?
 
그렇지 않다 해도 곧
 
카즈야가 허리께를 안아 당기는 덕에
 
어쩔 도리 없이 침대 위로 눕게 됩니다.
 
불륜 상대의 흔적을 찾는 건지,
 
일삼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와 후자라고 해도
 
손가락질 할 사람은 없겠지만요.
 
히마리:(제 허리께를 안아 당기는 행동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침대 위에 눕는다. 묘하게 또 심장이 두근거려서 애써 참아보려 눈을 꾹 감았다가 뜬다. 조금은 가까운 거리감 때문에 더 혼란해진다. 얼굴이 조금 화끈해졌나.) ... 갑자기 그러니까 놀랐잖아~ (애써서 조금 장난스럽게 말을 꺼냈을까.)
 
토죠 카즈야:왜 그렇게 긴장해 있어. 난 그냥 너 도와주러 온 건데. (곧 당신의 허리께에 두른 팔을 풀어 제 몸을 침대에서 일으킨다) 여기엔 아무것도 없다, 그치?
 
히마리:으...응 그러게. (당신을 따라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얼굴에 살짝 손부채질을 했다. 곧 하던 걸 거두고, ) 드레스룸이나 가볼까. (발을 돌려서 천천히 드레스룸으로 이동합니다.)
 
[드레스 룸]
 
배우자의 옷이 나열된 공간입니다.
 
옷이란 옷은 비닐에 싸여 있습니다.
 
그렇죠, 세탁물은 전부
 
세탁소에 맡기던 사람이었습니다.
 
우정도 정도 생길 수 없는,
 
속내를 알기 전 온몸에 표백제를 묻히고
 
다가가야 할 것만 같던 사람이요.
 
토죠 카즈야:이런 사람이랑 결혼한 거야?
숨 막혔겠네.
 
카즈야가 한 마디 합니다.
 
히마리:... (쓰게 웃고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전부 다 처음 보는 옷들이니
 
불륜 상대의 것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넘어가야겠네요.
 
히마리:... (슬슬 지친다...)
(화장대로 이동합니다.)
 
[화장대]
 
빈티지 풍의 화장대입니다.
 
먼지 하나 붙지 않은 거울은
 
깨끗하게 당신과 카즈야를 비춥니다.
 
작은 의자에 앉아 있는 당신과
 
그 뒤로 서 있는 카즈야.
 
치정극의 한 장면이 떠올랐나요.
 
화장대 역시 난색의 조명이
 
거울 옆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화려하네요.
 
당신은 이렇게 초라하게 만들고 죽어버린 주제에.
 
[관찰 판정]
 
히마리: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화장대 위는 여러 화장품과
 
사치품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 중 플라스틱 상자 안 쌓여 있는
 
장신구와 화장품 중
 
이상하게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네요.
 
검은 패키지에 바닥면에 붙은 라벨로 봐서는
 
통카빈 베이스의...
 
배우자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던 것이요.
 
어울리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껏 이런 향수는 본 적도 없는데요.
 
그런 당신의 모습을 빤히 보던 카즈야가
 
당신이 손에 든 향수를 앗아 갑니다.
 
그러고는 뚜껑을 열어 자기 것인 마냥
 
향수를 뿌려 당신에게 손목을 건냅니다..
 
토죠 카즈야:이런 향이 잘 어울리는 사람?
 
……은 카즈야아닌가요.
 
히마리:(...?) 죽은 그 사람은... 아니었지... 아마도 다른 사람일까. (잠시 뜸을 들이다,) 근데 카즈야한테 잘어울리네. 향 말이야.
 
토죠 카즈야:그래? 어떻게 생각해, 이 향? 맘에 안 들어?
 
히마리:마음에 안 들진 않아. 오히려 조금은 좋을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곤 느릿하게 머리를 빙글 꼬았다.)
 
토죠 카즈야:그럼 앞으로는 이 향수 뿌리고 다녀야 될까. 너랑 가까이 지내려면. (농담인듯 아닌듯, 실없는 말을 던지고는 당신을 이끈다) 아직 볼 곳 남았지?
 
히마리:뭐야~ 농담이야? (작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같이 있으니까 한없이 축축 처지던 게 조금은 나아지는 기분이다. 당신의 말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 (욕실로 들어가봅니다.)
 
[욕실]
 
욕실의 조명은 미색입니다.
 
초라하고 창백해 보이는
 
형광등이 아니라 다행인가요.
 
대리석 타일이 깔려 있으며
 
걸려 있는 수건은
 
한 번도 사용한 적 없어 보입니다.
 
세면대는 완전히 말라 있고
 
그건 욕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납장은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깔끔히 정리되어 있겠죠.
 
그때 뒤에서 카즈야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토죠 카즈야:네 배우자 가족들이 그러던데. 너처럼 가식적인 사람이 없었다고.
돈 때문에 결혼한 게 뻔히 보였다던데…….
나도 그럼 네 모든 걸 가식으로 이해해야 하나 싶어서.
난 돈도 얼마 못 버는 일개 경찰인데
진심 좀 보여주면 안 되나…
 
히마리:(순간적으로 걷던 발걸음이 멈춰진다. 가식, 돈. 고등학생 이후의 내 삶에 들어와 자리잡아 걷어내기 힘들어질 정도가 된 것들. 당신의 말에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젠 가식적일 필요도 없잖아. ... 돈 때문에 결혼한 것도 맞고. ... 빚 때문에 그랬어. 부모님 쪽으로. 어쩔 수 없었지. (그리곤 뒤를 돌아 당신을 바라보았다.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이정도면 답이 됐을까.
 
토죠 카즈야:이러니까 내가 또 괜한 부담을 준 게 아닌가 싶네. ...많이 힘들었겠네. 집안 사정도, 결혼도... 내가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기대했던 답이었을까, 알았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문 채 눈을 돌린다. 그러기를 몇 초, 다시 입을 연다) 이렇게 있으니까 욕심이 생기네.
 
그렇게 말하며
 
카즈야는 홀로 테라스로 향합니다.
 
히마리:(욕심...? 무슨...)(채 대답을 하기 전에 테라스로 향한 당신에 다시금 한동안 멍을 때린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상념은 지우자며, 지금은 해야할 일을 하자며 발걸음을 돌렸다.)(테라스로 갑니다.)
 
[테라스]
 
야경이 펼쳐진 테라스입니다.
 
카즈야는 그새 창을 열어
 
밖을 구경하고 있네요.
 
조용한 동시에 갖은 소리들이 울립니다.
 
차의 경적 소리, 축축한 바람 소리,
 
저 멀리서 들리는 것만 같은
 
사람 소리도요.
 
당신 평생의 꿈이었나요?
 
좋은 집에서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을 쥐고 사는 것?
 
어쩌면 이것도 나름의 방식으로 이룬
 
성공 아닐까요.
 
...
 
카즈야는 사색에 잠긴 표정입니다.
 
당신을 향해 눈길을 한 번 주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이제껏 화려하게만 보인 사람이
 
이렇게 우울해 보이는 건요.
 
[심리학 판정]
 
히마리:
심리학
기준치: 40/20/8
굴림: 70
판정결과: 실패
(그래...)
 
기우였나 봅니다.
 
야경을 감상하느라 센치해진 거겠죠.
 
건물과 차들이 만드는 경치 덕분에
 
화려함이 가려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당신은 이제 모를 수 없습니다.
 
카즈야가 당신을 사랑하고,
 
아니 적어도 사심이 가득하다는 걸요.
 
언제부터? 왜?
 
물음은 무용합니다.
 
당신은 더 이상 카즈야를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철 없던 시절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상대였다지만
 
이제 와서는 서로와 무관한 일이잖아요.
 
히마리:(무어라 말을 걸까, 아니면 이대로 이상하고 어색한 공기를 유지할까. 선택지가 조금밖에 없는 것 같아 묘하게 가라앉는 기분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나도 야경이나 볼까. 하며 시선을 경치로 옮긴다.)
 
토죠 카즈야:(미련이 가득해 보이는 동시에 하나도 남지 않아 보이는 표정으로 바깥의 경관에만 시선을 일관하고 있다. 후련함과 우울감이 섞여 있다 해야 할까, 눈빛에서는 외로움이 묻어 나온다.) ... 시간이 너무 늦었다. 이제 나도 들어가 봐야지. 늦게까지 수고했어.
 
히마리:(그 외로움은 뭐였을까. 여러 감정들이 섞인 당신은 도대체 뭘 숨기고 있길래. 일말의 다정이었을까, 동정이었을까. 조금은 보듬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그렇기엔 이 관계가 묘하고 아슬아슬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고는 마음을 거둔다.) 으응. 수고했어. 이왕 와줬는데 뭔가 증거를 못찾았네... 나중엔 뭐라도 대접해줄게. 푹 쉬어.
 
그렇게 당신에게 몇 마디만 남기고
 
카즈야는 현관을 나섭니다.
 
그때,
 
핸드폰 알람 소리가 울립니다.
 
당신의 것과는 다른 소리요.
 
소파 위 액정이 켜진 채
 
놓여 있는 핸드폰이 보입니다.
 
당신이 핸드폰을 확인하면
 
‘변호사’에게 온 문자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히마리:(응?)(문자를 봐봅니다.)
 
변호사: 상속 처리 완료되었습니다.
 
동시에 초인종이 울립니다.
 
카즈야일 테죠.
 
상속을 받은 카즈야, 변호사,
 
유언장 내용을 확인한 게 어제…….
 
토죠 카즈야:핸드폰을 두고 가서. 줄래?
 
이렇게 의뭉스러운 사람이 없습니다.
 
십 년 만에 나타난,
 
당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추궁한다고 순순히 답을 뱉기는 할까요.
 
세상에 솔직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거짓 하나를 품고 살아가요.
 
그러니 의심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무리 당신을 사랑하는 카즈야라도요.
 
아니, 정말 사랑하는 게 맞긴 한가요?
 
전부 당신을 농락하기 위한 연기라면?
 
추궁이 가능합니다만
 
카즈야의 얼굴로 봐서는
 
제대로 된 답을 줄지는 모르겠네요.
 
히마리:... (별다른 말 없이 핸드폰을 카즈야에게 건냅니다.)(아직은 추궁하긴 이른 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니, 제대로 뭔갈 알아냈을 때 다시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저 미미하게 미소를 머금어본다.)
 
당신이 건넨 핸드폰을 받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카즈야의 뒷모습은 찝찝함만을 남깁니다.
 
반쯤 풀린 의문의 잔여가
 
당신을 잠 못 이루게 할 것 같습니다.
 
당신이 의심하고 있는 그게 사실이라면,
 
당신은 어쩌고 싶은가요?
 
미제라블 메리지
 
그렇지만 당신은 할 수 있는 게
 
하나 없습니다.
 
카즈야에 대해 아는 건 이름과 전화번호.
 
그게 전부니까요.
 
전화는 받지 않으면 그만인 데다
 
찾아갈 수도 없습니다.
 
숫자와 글자 몇 자가 끄적여진 쪽지를
 
아무리 노려봐도
 
주소 같은 건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런 고착 상태로
 
벌써 이틀이나 됐으니
 
당신의 시나리오가
 
신빙성이 있다는 뜻일까요.
 
정말 카즈야가…….
 
[듣기 판정]
 
히마리: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쿵, 쿵쿵
 
누군가 현관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취객 같기도 하고 원한인 것 같기도 하고…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이 시간에
 
누가 남의 집의 문을 발로 찰 정도로
 
술을 마시긴 하나 싶지만요.
 
인터폰을 통해 현관 밖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히마리:(인터폰으로 현관 밖을 봐봅니다.)
 
화면을 통해 보인 것은
 
카즈야입니다.
 
취한 것도 후회하는 얼굴도 아닌
 
그제 본 그 얼굴,
 
동창회 날 본 그 얼굴의 카즈야요.
 
문을 열어 카즈야를 반겨야 할까요?
 
히마리:... (그래도 와줬는데... 예의상으로 반겨주긴 해야하지 않을까, 하며 문을 열어봅니다.)
 
토죠 카즈야:나랑 거래 하나 할래?
 
당신이 문을 열어 준 순간
 
거의 동시에 튀어나온 말입니다.
 
이틀이나 아무런 연락도 없던 사람이 맞나요.
 
당신이 수락해 주기 전까지는
 
움직일 기미도 없어 보입니다.
 
고집스럽고 뻔뻔한 얼굴,
 
누군가는 사랑스럽다 여기기도 하겠죠.
 
히마리:...? 거래? (얼떨떨한 얼굴을 하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무슨 거래인데?
 
토죠 카즈야:확실하게 말해줘, 한 마디만이라도 좋아. 거절해도 돼, 네 뜻 다 받아들일 테니까.
 
히마리:...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받아들일게.
 
당신이 수락하자마자
 
문을 쾅 닫은 카즈야는
 
한껏 기대하는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토죠 카즈야:우리 결혼할래?
그럼 다 돌려줄게.
참고로 이제 너한테 거부권은 없어.
 
……이건 자신의 만행을 시인하는 거죠.
 
당신이 이제껏 생각해 온 시나리오, 의 주인,
 
유언장에 빼곡히 써져 있을 이름,
 
전부 카즈야라는 거죠.
 
카즈야의 표정은 너무도 덤덤합니다.
 
아니, 후련해 보이기도 하고
 
우울해 보이기도 합니다.
 
꼭 테라스에서처럼….
 
당신이 입을 열기도 전에
 
카즈야는 손목을 잡아 이끕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잠깐도 싫은지
 
계단을 타고 내려가
 
검은 세단 조수석에 당신을 앉힙니다.
 
혹시 이 차도
 
당신의 몫을 빼앗아 얻은 것일까요?
 
뭐가 되었든 카즈야는
 
당신의 모든 말에 아무런 대답을 않습니다.
 
무언가 결심한 사람 같기도 하고
 
동시에 포기한 사람 같기도 합니다.
 
...
 
얼마 안 가 도착한 곳은 폐교회입니다.
 
하얀색 칠이 된 건물은
 
군데군데 누런 때가 보이고
 
지붕 위 꽂혀 있는 십자가는 곧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곳입니다.
 
교회 주차장은 잡초로 무성하고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 된 것 같아 보이지만
 
특유의 기품이 보이는 곳입니다.
 
겉에서 보이는 창부터 문의 문양까지,
 
고요한 아름다움이 존재합니다.
 
토죠 카즈야:먼저 들어가서 조금만 기다릴래?
어차피 여기서 도망갈 수도 없겠지만…….
 
히마리:...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눈만 계속 꿈뻑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 도망갈 일은 없을테니까, 안심해.
 
이유는 이야기해 줄 생각이 없어 보이네요.
 
납치인지 슬슬 헷갈리기 시작하지만요,
 
들어가 볼까요?
 
히마리:(천천히 들어가봅니다.)
 
무거운 문을 밀고 폐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조명은 없지만 노을빛을 받아
 
은은하게 교회 내부를 빛내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띕니다.
 
도대체 이런 곳을 왜 버렸을까요,
 
카즈야는 또 이런 곳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고요?
 
어찌 되었든 십자가 아래 보이는
 
제단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히마리:(재단을 살펴봅니다.)
 
뒤집혀 있는 종이 한 장을 발견합니다.
 
사람이 출입한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이곳에,
 
성경을 찢어 둔 것만 같은 종이를요.
 
종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히마리:(어라...)
 
카즈야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소리도 안 들리네요.
 
예배석에 잠깐 앉아 있을까요?
 
히마리:(천천히 예배석 쪽으로 가서 앉아봅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당신이 예배석에 앉으면
 
곧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뒤를 돌아보면……
 
흰 베일을 든 채 부케를 안고
 
당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카즈야입니다.
 
베일의 밑단은 엉망인 데다
 
잡초가 붙어 있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불쌍하고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그래요,
 
솔직하고 애처롭고 아름다워요.
 
배우자의 뒤에서 무엇을 속삭여
 
당신의 것을 빼앗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모습은요 정말 당신을 사랑하는 것만 같아요.
 
애정에서 기인한 애잔한 노력.
 
토죠 카즈야:행진만 하자, 히마리.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히마리:(... 여길 행진하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 ... 잡상념들이 가득하다. 그저 그의 말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든,
 
카즈야는 아무렇지 않게
 
입술 끝을 말아 올리며 손을 뻗습니다.
 
초라한 결혼식,
 
이게 전부 당신의 것을
 
돌려받기 위한 것이라지만
 
주례도 하객도 반지도 없는 결혼은 참…….
 
혹시 이 모습을 죽은 배우자가 보고 있을까요.
 
그것이야 말로 최고의 희극입니다.
 
히마리:... 이게 카즈야가 바라던 결말이야? (당신을 잔잔하게 웃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화도, 분노도, 당혹감도 이젠 아무것도 없는 그런 표정으로 말이다.)
 
토죠 카즈야:(당신의 손을 맞잡았을 때의 표정 그대로 미소를 짓고 있지만, 낯빛은 비참함으로 물들어 있다. 이건 자신이, 당신이 원했던 결말일까.) 그런 히마리는, 왜 나의 결말을 함께 꾸며주려 한 거야? 싫지도 않아? 너에게 있어서 난 어떤 사람이길래? 난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닌데. 날 위해서 모두를 이용한 거야. 차라리 싫다고 해줘. 그러면 나 혼자만의 욕심으로 끝날 수 있어.
 
히마리:... 카즈야, 가 어떤 사람이냐고? (잠시 멈칫했을까, 이상한 미련덩어리들이 뭉치고 뭉쳐서 진득하게 몸에 묻어 떨어지지 않는, 그런 사람이라고 봐도 됐을 법 했다.) 예전에 좋아했던, 사람.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지금은 사랑까진 아니지만 싫진 않은 사람. 이정도면 됐지 않을까. (다시금 느릿하게 뜸을 들였다.) 온통 거짓인 삶을 살았는데. 거의 반 가까이 되는 생을 말이야. 같이 있어서 나쁘지 않은 사람이랑 결말을 꾸며주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해서. 이것도 거짓이라고 느낀다면 그건 유감이야. ... 정말 살면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차라리 영화라면 좋겠다. 그치.
 
토죠 카즈야:나를 왜 좋아했어, 왜 사랑한다 말해주지 않았어. 사랑했으면서, 좋아하게 했으면서, 왜 나한테 오지 않은 거야? (제 앞에서 퍽이나 침착해 있는 당신에 말하기 힘든 감정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싫지 않은 사람, 나쁘지 않은 사람? 아니, 그건 기만이야. 이젠 내가 죽어버린 그 남자처럼 보이는 거 아냐? 너가 그토록 바라는 그 돈이 나에게 있으니까 어울려 주는 게 아니고? (불만을 토로하기엔 너무나 슬픈 목소리로, 이내 꼭 잡은 당신의 손을 놓는다.) 나도 살면서 이런 일을 겪을 수 있을지 몰랐어. 너와 같은 길을 걷고, 이렇게 마주할 수 있다는 게. 영화의 한 장면으로 치부해버리면 내가 너무 안타깝잖아.
 
히마리:(정말 기만이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진 게 이제서야 조금씩 풀려가고 있는데.) 그 때 너는 내 빛이었고, 인기도 많았고 너는 날 좋아하는 것 같지 않으니까. 그대로 숨겼지. ... 숨기고 숨겼던 게 이젠 무뎌져서 이렇게 된 것 뿐이잖아. ... 있잖아, ... 그 때. ... 키스해줬을 때, 솔직히 말하면... 싫지 않았어. 아직 조금 마음이 남아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곤 조금 허탈하게 웃었다.)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처럼 보였어? 오히려 나쁜 놈은 너인테, 카즈야. (조곤조곤 당신에게 말했다. 넌, 정말 나를 사랑해?) ... 그정도로, 나를 사랑하는 거야? ... 사랑해서, 그래서 그런거야? ... 답해주지 않아도 돼. 원래 다들 속에 하나 쯤은 담고 살잖아. 비밀이라고 치부해도 될 것들 말이야.
 
분명 카즈야가 내걸었고,
 
당신이 응한 거래였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봐서는
 
당신이 바라던 건 이게 아니란 것쯤,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었나요?
 
이미 질릴 대로 질려버린 이 상황에서
 
카즈야가 어렵게 운을 뗍니다.
 
토죠 카즈야:가자...
데려다 줄게. 아니면 차 키라도 줄게.
 
히마리:알겠어. ... 근데, 나... 운전, 잘 못해. 데려다줄래?
 
당신의 대답이 있자,
 
카즈야는 먼저 차로 앞서 갑니다.
 
긴 베일의 밑자락이 바닥에 쓸리고
 
잡초와 흙이 묻어 윗부분의 화려한 흰색에 대비됩니다.
 
꼭 카즈야의 멀끔한 얼굴 이면의
 
무언가를 본 것만 같아요.
 
당신의 것을 빼앗은 것에서
 
그치지 않을 것만 같은……
 
전에 그런 생각을 했었죠.
 
카즈야는 어떤 불온한 짓거리라도
 
사랑이라면 뛰어들 것이 분명하다고요.
 
...
 
세단의 운전석에 앉은 카즈야는
 
조용히 차를 출발시킵니다.
 
도로를 달리고
 
당신의 집이 가까워질 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요.
 
곧 도착한 집 건물 아래
 
카즈야는 차를 세웁니다.
 
당신이 차에서 내리고 나면
 
창문을 반쯤 연 카즈야가 말합니다.
 
토죠 카즈야:... 잘 살아.
 
잘 있으란 말도 이상한데
 
잘 살란 말은 뭐죠?
 
당신이 채 물음을 던지기도 전에
 
카즈야는 차를 출발시킵니다.
 
아니 잠깐만요, 당신의 돈은요?
 
오버스머지 버건디
 
카즈야와 헤어진 후
 
당신은 온갖 불쾌함에 휩싸였습니다.
 
이것도 혹시 날 놀리려는 계책이었나?
 
거래는 무슨
 
지금 뒤통수 한 대 맞은 건가?
 
수중에 들어온 재산이 없으니
 
이런 저런 생각에
 
잠 못 이루고 있던 새벽입니다.
 
정확히, 새벽 세 시요.
 
그때, 문자 알림이 두 번 연속으로 울립니다.
 
확인해보면 카즈야에게서 온 문자예요.
 
히마리:(문자의 내용을 확인해봅니다.)
 
: 자?
혹시 자고 있어?
 
참 분간하기 힘든 사람입니다.
 
무시할까 답장할까 고민하던 차에
 
문자 한 통이 더 도착합니다.
 
: 나 지금 강서에 있어. 네 배우자 건물 하나 있는 곳, 알지. 기다릴게.
 
그 건물이라면 강서 외곽에 위치한 곳입니다.
 
꽤 거리가 있는데….
 
그러나 가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습니다.
 
마무리를 내야 할 때니까요.
 
카즈야를 설득하든, 협박하든
 
당신의 것을 돌려받아야 합니다.
 
결혼 생활에 허무하게 버려진 시간을 위해,
 
앞으로의 인생을 위해!
 
...
 
당신은 불이 꺼진 빈 건물 앞에 도착합니다.
 
일층부터 꼭대기인 십층까지
 
밖에서 보기에 조명은 전부 꺼져 있고
 
어쩐지 날이 우중충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낮에, 변호사를 통해,
 
간단히 재산을 전달하는 일은
 
카즈야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요?
 
당신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빨간 숫자가 빛나고 있는
 
엘리베이터가 눈에 띕니다.
 
건물을 짓긴 했지만
 
아직 사용처를 찾지 못했다던
 
그 건물이잖아요, 이곳이.
 
배우자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게 기억납니다.
 
어느 층으로 가볼까요?
 
지하는 이층까지,
 
지상으로는 십층까지 갈 수 있습니다.
 
히마리:... (우선 엘레베이터를 봐봅니다.)
 
꽤나 오래 사용하지 않아 위험할 법도 한데
 
버튼 옆에 관리자 번호가 있는 걸로 보아
 
사고가 난다면 이곳에 전화를 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히마리:(... 꼭대기층으로 가볼까.)(10층을 눌러 이동합니다.)
 
엘레베이터가 10층에 도착하면
 
당신의 눈 앞에는 별다른 구조를 훑어볼 것도 없는
 
벽만 가득합니다.
 
주변을 둘러본다면...
 
문 하나가 보입니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일까요?
 
히마리:(문을 열어봅니다.)
 
문은 끼이이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립니다.
 
그 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건물의 끝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카즈야입니다.
 
카즈야는 양손에 하나씩 무언가를 든 상태입니다.
 
잘 살펴보면 한 손에는 돈 가방,
 
또 다른 손에는 여권 두 장이 들려 있습니다.
 
토죠 카즈야:나도 유언장을 썼어.
지금이면 그 변호사가 고이 모셔두고 있을 거야.
내가 죽으면 정말 그 재산 다 너한테 돌아가.
 
카즈야가 천천히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여권을 어디서 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하고 있는 카즈야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건 알겠어요.
 
카즈야의 말도 문장의 뜻은 이해가 갑니다.
 
죽여야만… 재산을 주겠다는 거죠?
 
토죠 카즈야:있잖아, 난 좀 복잡해.
난 세상 누구보다 네가 필요한데 넌 나를 봐주지를 않네.
여기서 더 이야기 할 수도, 할 것도 없어.
그냥…… 우리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히마리:... 그 말은, ... 그 재산을 가질 거면 너를 죽이라는 거야? ... (잠시간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입술을 살짝 깨물었을까.) ... 진짜 잔인하고 나쁜놈이다. 이렇게 만들어놓고선 이젠 자길 죽여서 재산을 가져가든지, 같이 떠나든지 하자는 거지. (목소리엔 묘한 물기가 어린다.) 내가, 널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아무리, 아무리 돈이 급하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사람을 죽이라고...? 아니... 난 그렇게는 못하겠어, 카즈야. ... 차라리, 그냥 너를 따라가고 말지. ... (느릿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애초에 하나만을 노리고, 한 번에 모든 걸 노리고 결혼한 것부터가 잘못이었어. 성실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였을테니까. ...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하네. (뜸) 그래... 그냥, 널 사랑했을 때 너한테 갔으면 훨씬 행복했을까? (당신을 올려다보며 쓰게 웃었다.) 응. 확실히 그랬을 것 같긴 해. ... 내가 널 사랑하지 않으면 어때. ... 전처럼 널 사랑하게 만들어보든지. 그걸 위해서 같이 떠나줄게. 언젠간 진심이 되면 너랑 나 둘 다 행복할테니까. 그걸로 된 게 아닐까?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이야. ... 카즈야한테 심한 말 못하는 것 보면 나도 어느정도는 너에게 미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해. (잔잔하게 미소짓고는,) 하나 물어봐도 돼? 내가 널 사랑하기 전까지, 날 사랑하는 걸 포기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
 
토죠 카즈야:내가 널 어떻게 포기해.
나도 사랑해.
 
당신은 사랑을 입에 담은 적도 없는데
 
카즈야는 제멋대로 사랑한다 고백합니다.
 
카즈야는 곧장 당신을 차로 데려가
 
당신을 조수석에 태우고
 
전화기를 빼앗아 던져버립니다.
 
확실히 망가졌겠네요.
 
차를 둘러 돌아온 카즈야가 운전석에 앉으면
 
곧 부드럽게 시동이 걸립니다.
 
비싼 건 비싼 값을 해요.
 
비싼 선택도 항상 그만큼의 값을 합니다.
 
그러나 이 선택의 가격을 책정할 수가 없어요.
 
차가 외부로 빠져 나오고 나면……,
 
굉음이 울립니다.
 
시트로 느껴지는 미약한 진동 덕에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알겠어요.
 
화단에 불을 지른 스케일이 아닙니다.
 
건물 하나를 무너뜨리려 작정한 거예요.
 
카즈야는 지독합니다.
 
어느 짐승의 송곳니에 박힌 건지 모르겠어요.
 
죽을 때까지 놓아 주지 않을 겁니다.
 
이거 봐요, 벌써 당신을 그의 공범으로 만들었잖아요.
 
도심에서 벗어나 새벽의 텅 빈 도로를 달리다 보면
 
통신 상태가 좋지 않은 라디오 소리가 거슬립니다.
 
속보입니다.
 
‘강서 외곽의 한 건물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H씨로’
 
'얼마 전 별장 화재 사고로…….'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즈야가 라디오 소리를 꺼 버립니다.
 
토죠 카즈야:히마리, 이제 너도 나랑만 살아야겠네.
 
이게 다
 
썩은 사랑니를 뽑지 못한 탓입니다.
 
카즈야, 히마리 생환.
 
히마리는 81일 동안 경찰의 추적을 받습니다.
 
END 1, 송곳니와 키스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