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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로현

[ 로현 ] 양의 구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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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구원자>
 
붉은 여명 속에서 그는 말했습니다.
 
“이것은 구원입니다.”
 
kpc. 로먼 캐모마일
 
pc. 차주현
 
-
 
“저와 같이 가지 않겠습니까.”
 
비가 내리는 폐허 속,
 
당신은 그를 만났습니다.
 
창백하리만큼 시린 손을 가진,
 
그럼에도 따뜻하게 느껴져 잡을 수밖에 없었던 그를.
 
그것이 당신과 그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 눈을 떠보면 아침입니다.
 
드물게 맑은 하늘이 창문 너머로 보입니다.
 
익숙한 침대에 일어나 낯익은 장소를 잠시 둘러봅니다.
 
역시 방금 본 그리운 화면은 꿈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당신은 그의 은총으로 이곳에 머물고 있으니까요.
 
오늘도 짧게 아침의 기도를 합시다.
 
당신을 위해서,
 
그리고 그를 위해서.
 
차주현:(손을 모으고 기도문의 문구를 외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부디 모두에게 은혜를 베푸시옵고, 저의 죄를 사하여주시옵소서. ... 아멘.
 
짧게 준비를 마치고 방 밖으로 나오면,
 
허름한 성당의 복도가 눈에 들어옵니다.
 
작은 마을에 자리 잡혀있는 성당인지라 외형도 작고 볼품없으나,
 
관리만은 아주 잘 되어있습니다.
 
이 마을에 있는 사람들 모두 당신처럼 그에게 은혜를 입었으니 보답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나요.
 
오늘도 역시 성당 일을 돕기 위해 발을 바삐 움직이면,
 
청소를 하는 성당 사람이 당신을 보고 반깁니다.
 
성당 사람: 좋은 아침이에요, 형제님. 오늘 해가 맑게 뜬 걸 보셨나요?
매번 이런 날씨였으면 좋았을 텐데!
 
차주현:좋은 아침입니다. ... 그러게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도라도 해야할까요, 행복을 위해서 부디 맑은 날을 달라며.. (약간의 농담이었는 듯 미미하게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아침부터 바쁘시네요. 혹시... 뭐 제가 할 일이라도 있을까요.
 
성당 사람: 아아, 전부 사제님 덕분이지요! 누구보다 기도를 열심히 드리는 분이시니... 몸이 상하시진 않을까 걱정이랍니다. 참, 그렇다면 식자재가 부족해서 그러는데 마을로 가서 대신 받아줄래요? 형제님은 사제님께서 데려오신 분이니 따로 말 안 해도 다들 살갑게 대해주실 거예요.
 
차주현:식자재?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수고하세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발걸음을 돌립니다.)
 
부탁한 식자재를 받으러 가기 위해 성당 밖으로 나가면 평범한 마을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벌써 이곳에 온 지 몇 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릴 적, 가족을 잃고 폐허가 된 마을에서 혼자가 된 당신을 구해준 사람이 바로 그였죠.
 
처음엔 경계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어떻게든 그 은혜를 갚고 싶은걸요.
 
그날, 그가 아니었다면 분명 싸늘한 시체가 되고 말았을 테니까요.
 
<지능>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직도 그때 일이 선명히 기억납니다.
 
괴한의 손에 가족들이 죽고 혼자 남은 당신에게 손을 내밀던 그의 모습을,
 
맞잡은 손이 분명 지나치게 차가워서 놀랬던 기억이 있었죠.
 
그날 비가 와서 유독 창백하게 느껴졌던 걸까요.
 
마을은 아직 한산하네요.
 
비록 작은 마을이나, 모두 무척 친절하고 이웃 간의 정이 넘치는 마을이죠.
 
바깥은 폐허가 넘친다지만,
 
이곳만큼은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이곳만이 폐허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
 
그건 아마...
 
“사제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사제님이 아니었다면 큰일 났을 거예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보입니다.
 
새하얀 옷을 입은 사제,
 
로먼입니다.
 
그는 다정한 얼굴로 그들에게 미소로 답합니다.
 
마치 이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이죠.
 
그리고 당신과 눈이 마주치는 건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당신을 보자 환하게 미소를 짓습니다.
 
곧 마을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그 자리에서 빠져나와 당신에게로 걸어옵니다.
 
그는 애정 담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엽니다.
 
로먼 캐모마일:좋은 아침이에요 아가, 심부름인가요?(척 보기에도 자비롭고 너른 웃음을 지으며, 당신에게로 다가와 묻는다. 따스한 햇살 아래 새하얀 사제복을 입고 다가와 말을 건네는 모습은 어쩌면, 신성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차주현:좋은 아침입니다. (아가라는 호칭에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묘하게 얼굴이 홧홧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 웃음도,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빛나는 금빛 머리칼도. 잠시 한 눈을 팔아버린다. 곧 눈을 느릿하게 감고는 떠서 고개를 끄덕였다.) 식자재가 부족하다고 하여 잠깐 왔습니다.
 
로먼 캐모마일:아, 그럼 함께 가도록 하지요. 마침 제 할 일도 끝이 났으니까요.(여전히 너른 웃음을 머금은 채,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뜨는 일련의 행동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네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고는 말했다.) 아가를 데리고 온 지 벌써 몇 년이 지났군요. 그때는 키가 제 허리만 했던 것 같은데,(회상하듯, 잠시 햇빛을 바라보았다가 눈이 부셨는지 눈을 찡그리고는 곧장 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다시금 웃음을 머금는 것도 잊지 않고,) 그럼, 갈까요 아가?
 
차주현:... 다행입니다. 혹시 방해를 한 건 아닐까... 했거든요. (제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흠칫할 뻔 한 것을 겨우 억눌렀다. 최대한 차분하게. 아무렇지 않아보이도록 억눌렀다. 정식 신부가 된 이후로 몇 번이고 억누르는 법을 깨우쳤으니 이쯤이면...) ... 꽤 오래 지났네요. 실은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해요. (처음 따뜻함이라는 걸 느껴봐서 그런걸까요, 라는 말은 애써 속으로 삼켰다. 당신의 말에 미미한 미소를 띄웠다.) 좋아요.
 
로먼 캐모마일:(네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뗀다. 다분히 사사롭고 일상적인 이야기, 원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답하지 않아도 괜찮을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너와 속도를 맞추어 걷는다.) 오래 지났지요. 처음 보았을 때는 정말로 어리고, 가녀린 생명이었으니 말입니다. 요즘 생활은 괜찮나요 아가?(넌지시 묻고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할 말이 있는지 잠시 고민하는 투를 보이다가,) 아가, 혹시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지는 않나요?
 
차주현:(당신의 곁이 아닌, 당신의 조금 뒤에서 천천히 걷는다. 그러나, 이내 제 발걸음에 맞추어 걷는 당신에 묘한 기분이 들어서 다시금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을까. 이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마저 반응해버리는 것이, 무심코 의미부여를 해버리는 것이 해선 안 될 죄를 지은 것만 같아서 속으로 몰래 또 기도를 하고 만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부디 제 죄를 사하소서.) 사제님의 은총 덕에 아주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성당의 이들과 가까워 지기도 했...고요. 솔직히 말하면 과분한 것 같기도 해요. (말꼬리를 조금 흐렸다. 여러모로 과분했지. 당신의 다정과, 다른 이들의 다정. 원래라면 이런 생활은 꿈도 못 꿨을테니. 이런 상념을 하다 당신의 말에 눈을 꿈뻑인다.) 다른 곳... 전, 어디든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 어렸을 때와 같은... 그런 환경만 아니라면야. (그리고 당신도 함께 있다면... 절대로 내뱉지 못할 말을 속으로 되내었다.)
 
로먼 캐모마일:(네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다. 구태여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아름답게 산란하는 햇빛을 맞으며,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를 눈으로 좇으며, 너와 걸음을 맞추어 걷고 있을 뿐이지. 자꾸만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는 너를 잠시 눈에 담았다. 의중을 파악하려 들지는 않는다. 가끔은 모르는 것이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니, 혹은 그것이 모르는 척이 되더라도 말이다.) 과분하다니요. 전부 아가가 스스로의 의지로 헤쳐나온 것이 아닌가요? 저는 그저 거두어주었을 뿐, 그이상은 한 것이 없습니다.(다시금 머리를 쓰담아주려다가 이내 손을 물렸다.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이유는 그 뿐이다. 발을 멈추고 저에게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여느 때와 같이 웃음으로 화답한다.) 그런가요. 그저 아가가 이대로 만족하는지 묻고 싶었을 뿐이에요. 아가라면 다른 곳에 가서도 잘 해내겠죠. 이곳은 평화로워 살기 좋은 곳이지만 역시 아가는 조금 더 넒은 세상을 보았으면 하니까요. 혹시...(잠시간의 간극, 줄곧 평화롭기 그지 없는 풍경을 눈에 담고 있다가 천천히 너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햇빛에 비친 옆얼굴이, 여전히 신성하게 보였을까.) ...혹시 제가 같이 떠나자고 한다면, 저를 따라와주실건가요 아가?
 
차주현:... 거두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시작도 못했을 것들을, 평생 느끼지 못했을 것들을 경험해버려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들이 가끔 떠오르기도 합니다. (잠깐의 간극.) 그래서 받은 만큼, 더 베풀기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어요. 모두를 위해, 그리고 사제님을 위해. (담담히 말하다 당신이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려 손을 뻗는 것, 또 곧 물려버리는 것에 멈칫하고 만다. 당신의 애정은 모두를 향하고 있는 것일텐데. 나도 그 모두 중 한 명일 뿐인데. 어째서 더욱 갈구하고 마는 걸까. 묘한 아쉬운 감정, 조금 서러운 감정. 또 그 외의 복합적인 자기혐오들이 다시금 들어찬다. 당신 몰래 입술을 꽉 깨물었다. 상념을 지우고 다시 정신을 차리기 위한 최선이지만, 분명 당신이 본다면 다정한 당신이 본다면 걱정을 할테니 말이다. 상념을 지운 뒤엔, 마을의 사람들에게 미미한 미소를 띈 상태로 공손히 인사했다.) ... 만족... 은 하고 있어요. 더 넓은 곳으로 떠난다면 분명히 나쁘진 않고 좋은 경험이 되겠지만... 성당의 분들을 두고 차마... 떠날 순 없을 것 같기도 해요.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약간의 빛무리가 졌다. 다시금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신과 마주했다. 햇살이 내려앉은 당신의 모습에 묘하게 심장이 두근거려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다시 한 번. 그러나 말문은 막히고 만다. 어쩐지 속을 들킨 것 같기도 해서. 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어쩐지 혼란스러운 감정이 든다.) ... ... 네? ... ... 사제님은, 제 아버지 같은 분이시니... 사제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따라가겠습니다. ... 그 이후부터 계속 그래왔으니까요.
 
당신의 대답에 그는 말없이 활짝 웃음 짓습니다.
 
그 대답이, 기뻤던 모양이죠.
 
마을 사람은 당신과 그를 보자 허리를 숙여 과하게 반겨줍니다.
 
고생하는 분들께 함부로 힘쓰게 할 수 없다며 자신이 직접 책임지고 물건들을 성당으로 들고 가겠다는 말을 합니다.
 
참으로 상냥한 마을 주민이네요.
 
친절한 마을 주민 덕에 돌아가는 길은 순탄했습니다.
 
성당으로 돌아오자 어느덧 점심,
 
돌아오자마자 그의 앞으로 누군가 찾아옵니다.
 
“사, 사제님…! 로먼 사제님 맞으시죠…?”
 
보아하니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 같습니다.
 
그의 표정은 절박함이 가득해 보는 사람마저 불안해질 정도입니다.
 
설마 주변 마을에 또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타 지역에서 온 사람은 무례하게도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리며 애원합니다.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사제님이라면 분명 어떻게 해준다고 들었어요. 뭐든 할 테니 제발…”
 
그는 잠시 낯선 이방인을 내려다보더니 이윽고 그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쥐고는 말합니다.
 
"걱정 마세요 낯선 이여, 당신에게 구원을 내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낯선 이와 함께 성당 밖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별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최근 이렇게 타 지역 사람들이 찾아오는 일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만큼 상황이 많이 안 좋다는 거겠죠.
 
이렇게 생각해도 달리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조금 답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할까요.
 
늘 하던 일이 있잖아요.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와준 그를 위해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일 말이죠.
 
차주현:(예배당의 한 켠으로 가 손을 모으고 기도문을 외운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시여, 부디 모두에게 은혜를 내려주시옵고 아프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힘든 이들에겐 구원을, 선한 이들에겐 은총을. ... 그리고 죄를 진 자에겐 용서를 내려주시옵소서.
 
하루종일 기도를 드리고,
 
성당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늦은 밤이 찾아옵니다.
 
그러고 보니 성당에 돌아온 뒤로 한 번도 그를 마주친 적이 없네요.
 
매번 먼저 찾아와줬는데 말이죠.
 
많이 바쁜 걸까요?
 
혹은 다른 좋지 못한 일이 생겼다거나…
 
그런 생각도 잠시, 어느새 성당의 수녀가 당신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옵니다.
 
수녀: 아, 형제님. 마침 잘 만났네요. 부탁할 게 있었거든요.
실은... 사제님께서 아직도 예배당에서 나오지 않고 계시거든요.
분명 아직까지도 우리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고 계신 게 분명해요. 몸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인데...
형제님이라면 사제님도 말을 들어주실지도 몰라요. 부탁드려도 될까요?
 
차주현:... 알겠습니다. (묘한 불안감에 고개를 끄덕인다. 구태여 더 설명을 붙이지 않더라도, 예배당으로 가봐달라는 말이겠지.)(제 앞의 그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발걸음을 옮깁니다. 예배당으로 향합니다.)
 
당신은 초를 들고 그가 있을 예배당으로 향합니다.
 
예배당으로 가는 길은 지나치게 어둡고 조용해서 밤이 찾아올 때마다 매번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분명 신을 모시는 장소인데도 말이지요.
 
<정신력>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아아, 어떨 땐 이곳에 있어선 안될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이곳에 있으면 한기에 체온을 빼앗길 것 같아서,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에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아서...
 
넋을 놓고 걷다 보니 어느새 예배당 앞에 도착합니다.
 
안에 분명 그가 있겠죠?
 
조심스레 문을 열면...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고 괴로워요. 눈 뜨는 것조차 제겐 너무 악몽이에요.”
 
“이런 삶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낯선 목소리가 들립니다.
 
낯선 이는 힘없는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고해'하듯 그의 부질없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그에게 찾아온 손님일까요?
 
함부로 끼어들 수 없는 분위기에 겉을 맴돌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주 간절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사제님, 제발… 제발… 저를 이 삶에서 구원해 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간절한 목소리 뒤로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분명 그의 목소리입니다.
 
하지만 이토록 낯설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의 목소리가 어두운 예배당 속에서 무겁게 울려 퍼집니다.
 
“당신은 구원받을 겁니다.”
 
…당신,
 
그 뒤에 무엇을 보았나요?
 
그것은 무언가 말릴 틈도 없이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신실한 사제였던 자는 순식간에...
 
악마로 돌변해 눈앞의 사람을 먹어치웁니다.
 
정확히는 그 자의 목을 물어뜯어 그 안에 흘러나오는 혈액을 마시는 것뿐이지만 말이죠.
 
아아, 예배당 안에 있는 건 삿된 존재였습니다.
 
맙소사,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무언가 행동하기도 전,
 
그와 눈이 마주칩니다.
 
그 순간 당신의 손에 들려있던 촛불이 일렁거리다, 마침내 꺼지고 암흑이 찾아옵니다.
 
도망갈까?
 
다가가야 하나?
 
그가 맞긴한걸까?
 
저건 대체... 누구지?
 
그런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어느새 당신의 앞으로 다가온 구가 당신의 손목을 잡습니다.
 
기이할 정도로 빛나는 안광을 가진 그가,
 
역한 혈향을 풍기는 채로,
 
로먼 캐모마일:...보셨습니까?
 
아아, 이 사람은 로먼이 맞습니다.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그는,
 
그는 사람을 잡아먹는 악마였던 것입니다.
 
<이성>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이 1 감소됩니다.
 
“제가 무섭습니까?”
 
그리 묻는 그의 표정은 어딘가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마치 당신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들킨 것처럼,
 
그는 도망가지 말라는 듯 당신의 손목을 붙잡으며 진정시킵니다.
 
어떤가요 당신은,
 
분명 당신의 앞에 있는 사람은 악마입니다.
 
그러나 동시의 우리들의 사제,
 
당신의 아버지.
 
두려운듯한 목소리로 그는 다시금 묻습니다.
 
로먼 캐모마일:...뱀파이어라는 존재를 아나요 아가? 피를 마셔야만 목숨을 존속시킬 수 있는 괴물, 그게 접니다. 제가 이런 괴물이라 혐오스럽나요 아가? 그래서 저를 두고 도망가실건가요?
 
차주현:(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그 빛나는 눈을 바라본다. 당신의 그 눈을 바라보는 눈은 두려움, 배신감, 혼란스러움이 담겨져 있었겠지. ... 아무것도 모르겠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맞으나, 가져선 안 될 마음을 가진 것은 맞으나 어쩐지 당신이라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 도망을 갈 수가 없었다. 또, 당신은 어째서 두려운 듯한 목소리인데. 그러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잖아. ... 당신을 뿌리치려고 팔에 세게 힘을 주던 것에 힘을 뺐다. 이걸로 당신의 물음엔 답이 됐을 것이었다.) ... ...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 그냥,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 머리가 복잡해... (눈을 꾹 감고 결국 당신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피한다.)
 
로먼 캐모마일:...아가,(너를 나직이 부른다. 뿌리치는 팔을, 붙잡고 있으려거든 붙잡고 있을 수 있었겠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받아들이기 힘들테니까, 혼란스러울테니까. 제 시선을 피하는 것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스테인드 글라스 사이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달빛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나직이 말을 내뱉는다.) ...저는 악마를 배척하는 지역에서 태어나 줄곧 내몰리며 살아왔습니다. 이곳저곳을 정처없이 배회하며, 아무리 도움을 주려고 해도 저를 끝까지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지요.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아나요 아가? 그러니 나는 신의 힘을 조금 빌리기로 했습니다.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순 없어도, 그런 척을 하며 마을 사람들을 도와줄 수는 있지요. 적어도 이렇게 하면 모두가 저를 믿어주니 말입니다. 그렇게 정착한 곳이 이곳입니다. 저를, 저를 떠나실건가요 아가? 마을 사람들에게 저 사제는 악마이노라 고하고 당신마저 저를 저버리실건가요?(천천히 다시금 너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스치듯 마주한 눈은, 악마답지 않게 온통 두려움에 물들어 있어서,)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아가, 세상에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난 저입니다. 그럼에도 신의 이름 아래 어린 양이 되고싶었으니, 이마저도 죄라면 죄겠지요. 그래도, 그래도 당신마저 저를 버리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차주현:(온통 혼란스럽다. 저를 아가라고 부르는 그 목소리, 그 다정한 목소리는 제가 사랑하는 사제인 로먼 캐모마일이 맞았다. 그러나 그의 정체, 그가 행한 구원은 신의 용서를 받지 못할 터. 내가 그동한 해온 기도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이건 배신감 때문에 흐르는 눈물인 건가, 억울함 때문에 흐르는 눈물인가, 나 자신에 대한 자기연민의 눈물인가. ... 신이시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 부디, 제게 길을 내어주시옵소서. 죄를 지은 타락한 신부의 염치 없는 기도이지만, 단 한 번이라도...) ... 제게, 어째서 그것들을 말해주시는 겁니까. 그리고, ... 왜 저를 그 날에 데려왔던 것입니까. ...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당신이 방금 행한 구원은 분명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기만자여.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천천히 눈을 뜨고 당신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눈물이 고인 채였겠지.) ... 전, 당신의 모든 것을 믿진 못합니다. 알아버린 이상, 당신이 저를 속인 것이라는 걸, 모두를 속인 것이라는 걸 알아버린 이상... (그러나 마주친 눈이, 삿된 악마와 같은 탐욕이 서린 눈이 아닌 두려움이라는 인간적인 감정이 서린 눈이라 그만 멈칫하고 만다. ... 난, 당신이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나를 속였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접는 건 불가능한가 봅니다. 버림 받는다는 것의 두려움은, 내가 더욱 잘 알고 있으니까요.) ... ... 당신의 존재를 모두 떠벌리고, 당신을 저버릴 수 있는 건 오직 나 뿐일 겁니다. 지금의 상황으로선. ... 그렇지만, 나는 그러고 싶진 않습니다. ... 당신으로 인해 분명 구원받은 사람이 있을 터이니, 당신의 말이 사실이 아닐지라도요. 그리고 나 또한 당신에게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해선 안될 사랑까지 해버렸지만. 이라는 말은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신이시여, 도대체 뭐가 옳은 것일까요.)
 
로먼 캐모마일:...알겠어요 아가, 이 세상에 저를 진정으로 믿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는 거군요. 왜 말해주었냐고요? 기대를 했기 때문이에요 아가, 혹시 아가라면, 나를 믿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헛된 기대였던 모양이네요.(이어지는 물음에는 잠시 답을 하지 않았다. 저를 책망하는 말투, 용서받지 못할 행위임을 안다. 모든 것은 구원을 가장한 기만적인 행위임을 안다. 그러니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해야지. 미련이 남지 않도록 말이다.) ...글쎄요. 당신을 데려온 것은 그저 안쓰러워서가 아니었을까요. 저보다 아랫것의 존재에 대한 연민, 그뿐이에요 아가,(부러 매정하게 말을 내뱉었다. 너도 나도 미련이 남지 않도록, 눈에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지우고 너를 한참이나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손을 내어 눈물을 조심스레 쓸어 닦아준다. 누군가의 피가 묻은 손으로, 몇 번이고 덧씌워져 이제는 누구의 혈향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는 손으로. 나의 가엾고 어린양, 딱하기도 하지. 흐르는 눈물이 제 체온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뜨거워 화상이라도 입을 것만 같다. 금세 손을 물리고는 너에게서 완전히 몸을 돌리고는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올려다보며 손을 맞잡고 나직이 속삭인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부디 모두에게 은혜를 베푸시옵고, 저의 죄를 사하여주시옵소서. 아아, 매정하기도 하시지. 그렇지 않나요 아가?(너와 내가 몇 번이고 외웠을 주기도문, 그 뒤에 덧붙이는 말은 우스울 정도로 이질적이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존재하는지도 모를 신보다 제가 더욱 구원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요. 제가 악마라는 사실 외에 지금 바뀐 것이 있나요 아가? 저는 마을 사람들을 구원해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도 조금 도움을 받았을 뿐이지요. 실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지 않나요. 이해와 믿음을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그저 제가 이대로 마을 사람들을 보살필 수 있게만 해주세요 아가,(말을 마치고는 천천히 너를 돌아보며 웃었다. 평소와 같이, 이미 사그라든 영혼에는 굳이 시선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당신에게 보이는 것은 기이할 정도로 빛나는 안광을 가진 내 두 눈뿐이었을 테니, 너는 내 두 눈만 바라보면 그걸로 족하지 않은가.)
 
차주현:... (당신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이미 정체가 탄로나, 나의 믿음까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당신이 계속 나를 아가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인지 매정하게 말을 내뱉는 것은 또 무엇이고 그러면서도 다정하게 내 눈물은 닦아주는 건 어디에서 기반 된 다정일까. 금세 떼어진 손이, 지독하게도 싫어하는 혈향이 가득 베이고 붉은 액체가 내 얼굴에 남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왜인지 더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무심코 해버린다. 그래요, 차라리 그렇게 매정하게 대해주세요 이 사랑을 끝낼 수 있게. 그렇게 한다면 주께서도 나를 용서하실테니까요. 상처가 되어 마음이 갈기갈기 갈라지더라도 그걸로 덤덤해지면 그만이니.) ... 모독적인 언사는 그만해주십시오. (신께서 매정하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저, 그걸 받아들인다면 그동안 버텨온 의지마저 상실할까봐. 언젠가 내 죄를 용서받고 내 목소리를 들어주실 거라 믿으며 그것 하나만 보고 기도를 해온 것이 몇 년이나 지났는지, 이젠 햇수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당신에게 말하는 내 목소리는 화가난 목소리라기보단, 착잡함을 담은 목소리였겠지.) ... ... 도움을 받은 것이라고 하기엔 목숨이 달린 일 아닙니까. ... 당신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이 많다는 건 저도 압니다. ... 그리고 당신이 사라진다면, 없어진다면 절망할 이들도 많을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 ... 그러니까, 약속 하나만 해주십시오. ... 다른 이들의 목숨은 앗아가지 말아주세요. 선한 기만이라면 신께서도 용서하실테니. 더이상의 살육은 그만두세요. (아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버림 받은 이의 영혼을 돌보소서. ... 눈을 감고는 구원을 바랐던 이에게 보내는 기도를 짧게 외웠다. 그리고 다시금 떠오르는 상념. 주께선 모두를 사랑하라, 라고 이르셨는데 저 삿된 존재도 그에 해당할까요. 이미 나는, 사랑해선 안 될, 나를 구해준 아버지와 같은 이를 사랑해버렸는데 그가 악마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사랑하는 걸 접을 수가 없습니다. ...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해서든 나는 죄인입니다. 용서를 받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고해를 이젠, 누구에게 해야할까요. 언젠간 하려고 마음을 꾹꾹 눌러온 이 고해를 그 사제가 아닌 누구에게.)
 
로먼 캐모마일:...아가, 더 이상의 살육을 하지 말라는 뜻은 기어코 저의 목숨을 앗아가겠다는 말입니까. 아아, 그래요. 아가에게는 악마의 목숨 따위 중요한 것이 아니겠지요. 같은 인간의 목숨은 중요할지라도, 그러니 저라도 저의 목숨을 챙겨야겠습니다. 아가, 정녕 제가 그 약속을 지키고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죽어가길 바라나요?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았던, 삿된 존재로 태어나 지옥보다 더한 이 세상 속에서 끝내 아무에게도 이해와 믿음을 받지 못한 채로 죽어가길 바라나요?(내뱉는 언사가, 온통 잔인하기 그지 없다. 악마의 입에서 지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까지도, 어쩜 이리도 모순적일 수 있을까. 악마가 이 세상을 지옥이노라 칭하는 꼴이, 모든 것이 허탈하여, 조소를 지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차주현:...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지 않습니까! 저에 대해서 말입니다! 난 당신을,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잔뜩 찡그린 얼굴 사이로 다시금 차오르는 눈물에 다시금 정신을 차린다. 숨을 겨우 몰아쉰다. 잔인한 말들에 그동안 억눌러온 것들이 억울함이 되어 목안에서 울린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 난, 어떻게 해야할지 이젠 정말로 모르겠어요. 당신이 죽긴 바라지 않으나, 살육은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순이라면 모순이겠지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떴다. 눈을 감자 고여있던 눈물이 떨어진다. 그건 아무렇지도 않다는 양 당신을 바라본다.) ... 차라리 내 피를 마시던지 해주세요. 다른 이들 말고요. 당신이 나에 대한 애정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내 피를 모두 빨아 죽이진 않겠죠. ... 그 전에 물을 게 있습니다. 나에게 떠나자고 말한 건 뭘 위해서 그런 것이었습니까. ... 나에 대한 믿음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것이었는지. ... 또, 나를 키우며 나를 사랑하긴 했습니까?
 
로먼 캐모마일:(조금, 언성이 높아졌던가. 소리치는 말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두어 걸음 너에게로 다가가 너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보이는 것은 내 두 눈뿐, 언제까지고 저의 두 눈만을 바라봐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인간은 저에게 세 번 물리면 곧 저와 같은 악마가 됩니다. 나는 그들을 나와 같은 지옥 속에 밀어 넣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차라리 그들에게 안식을 가져다주는 것이지요. 인간은 때때로 살아 숨 쉬는 것이 더욱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아가, 나의 가엾고 어린양.(그리 부르며 걸음을 멈추지 않고 너에게로 가까이 다가간다. 이윽고 얼굴이 마주할 때까지, 암흑 속이었음에도 서로의 얼굴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나직이 말한다.) 어리석은 물음이네요 아가,(그제야 보이는 것들은, 온통 끔찍한 광경뿐이었겠지. 입가에 묻어있는 누군가의 피, 지독한 혈향. 개의치 않고 천천히 손을 들어 네 양 볼을 감싸 쥔 뒤 고개를 숙여 네 이마에 입술을 묻는다. 그리고는 속삭인다.) 사랑하였지요. 그러니 기대를 해보았습니다. 혹시 아가라면 나를 믿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말이에요. 사랑이 있으니 믿음이 피어날 수 있는 법이 아닙니까.
 
차주현:(이 지독하게 아프고, 저주받을 사랑이 얼른 사그라들길 바랐다. 여지 하나 없이, 또 평생 내 죄를 고하며 신께서 용서 하셔서 그를 향한 신앙심을 가득 안은 채로 새로 시작한 삶에 대해 감사함을 가지며 다른 이들에게 베푸는 그런 일상을 바랄 뿐이었다. 이 삶조차 당신이 시작하게 도와준 것에 난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악마. 배척받는 존재. 살육을 저지르는 악마. 그 시혜적인 말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살아 숨쉬는 것이 더욱 버겁다는 말은 어쩐지 이해가 가기도 해서. 갈피를 잡지 못한 감정들이 공기 중에 맴돈다.) ... (제게로 다가오는 당신을 피하지 않고 바라본다. 끔찍한 광경에 눈살이 찌푸려질 법도 하지만, 의외로 덤덤했다. 제 이마에 닿는 입술, 속삭이는 목소리에 덤덤함은 깨어졌지만 말이다. 당신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사랑의 척도는 각각 다르니. ... 그것을 당신에게 물어보기엔 난 용기가 부족하다. 그리고 그것을 알려고 한다면 내 죄는 더욱 커지겠지.) ... 사랑이 있으니 믿음이 피어날 수 있는 법이라, 난 당신을 믿었습니다. 당신을 믿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 그 단단한 신뢰가 지금으로 깨져버렸지만, ... 모순적이고 이해가 되진 않습니다. 저도 제가 이해가 안됩니다만, 그럼에도 난 당신을 사랑하나봅니다. 정인지 뭔지. 어렸을 때의 각인인지. (말을 돌렸다. 내 척도가 어디인지 당신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이런 위태로운 사랑이라면 깨지고 말겠지요. 당신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로먼 캐모마일:위태로운 사랑이라, 그렇게 생각하나요 아가? 몰랐을 적에는 행복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숨겼습니다. 나를 그리도 믿어주었다면, 내가 아가를 사랑한다는 사실도 믿어주었어야지요.(아아, 잔인하기 그지없어라. 악마는 당신에게 사랑을 속삭인다. 삿된 존재로 태어나 사랑을 논한 자격조차 없는 주제에 말이다. 이런 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이겠지. 이윽고 당신을 지나쳐 예배당을 벗어나며 말한다.) ...아가가 나를 믿어주길 바랐습니다. 나의 진실된 모습을 보고 나서도, 나를 버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실은 버려질까 두려워 말을 하지 못했던걸 수도 있겠네요. 이런 괴물도, 두려운 것이 있었나 봅니다.(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굳건히 닫히는 예배당의 문, 이걸로 완전한 종언일지니.)
 
결국 그는 당신을 남겨두고 예배당을 나갔습니다.
 
아아,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우리들의 사제,
 
당신의 아버지.
 
그런 그가 악마라니, 악마였다니.
 
...어두운 성당의 복도를 지나 당신의 방에 도착합니다.
 
어쩐지 마음이 무거운 것 같습니다.
 
보면 안 되는 것을 본 기분이라서,
 
길고도 긴 밤이 흘러갑니다.
 
-
 
…아마 한숨도 못 잔 것 같습니다.
 
눈가의 뻑뻑함과 피곤함은 뒤늦게 찾아옵니다.
 
하지만 다시 잠드는 건 허용하지 않는다는 듯 흐린 아침의 빛이 당신을 재촉하듯 깨웁니다.
 
설령 이곳의 사제가 악마일지라도,
 
당신에게 주어진 일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침대에서 일어나 준비하고 나오면 성당의 수녀님이 아침 인사와 함께 반겨줍니다.
 
“안녕하세요, 형제님. 잘 주무셨나요?”
 
“사제님께서 형제님의 상태가 걱정된다고 제게 부탁하셨거든요.”
 
"어제 많이 놀란 일이 있었다면서요?"
 
수녀는 그렇게 말하며 당신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눈가가 거뭇한 걸 보고 걱정할지도 모르겠네요.
 
직접 찾아오지 않는 이유는 아마 당신을 볼 면목이 없어서 일까요?
 
그가 악마라도 이런 부분은 변하지 않네요.
 
당신을 걱정하고 돌봐주는 일,
 
그동안 쭉 반복해왔던 일이 아닌가요.
 
당신을 살피던 수녀는 이어 말합니다.
 
수녀: 괜찮으신거죠 형제님? 오늘은 마을 일을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시다면 들어가서 쉬셔도 괜찮아요.
 
차주현:... 괜찮습니다. 괜히 걱정을 끼친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저... 잠을 조금 못잤을 뿐 몸상태는 괜찮아요. (간극) 할 일은 어떤 건가요?
 
수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그저 마을로 가서 그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대화를 나눠주시면 돼요. 아! 혹시 다친 분이 계시다면 치료를 도와주세요.(붕대와 약을 꺼내 건네주며 덧붙인다.)
 
차주현:알겠습니다. (잔잔한 미소를 띈 채 붕대와 약을 받고는 눈인사를 한다. 잠시 붕대와 약을 바라보고 있다 발걸음을 돌린다.)
 
밖으로 나오면 흐린 하늘 아래 작은 마을 풍경이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요즈음 다시 마을에 불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했던가요.
 
싸움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광장, 민가, 폐허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차주현:(광장으로 가봅니다. 하늘이 흐려 그런지 더 우중충하네.)
 
작고 소박한 광장입니다.
 
이곳에 있는 것이라곤 보잘것없는 물건을 파는 가판대가 여러 개 늘어선 것뿐입니다.
 
비록 별 볼일 없어 보이나 상인들은 활기차게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이 또한 그의 덕분이겠죠.
 
<관찰>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눈이 침침하다... 한 번 더 둘러봅니다.)
 
한 번 더,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차주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주변을 둘러보면 처음 보는 사람을 발견합니다.
 
보아하니 타지에서 온 상인 같습니다.
 
<지능>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굳이 이런 작은 마을에 와서 장사라니,
 
대부분 타지에서 온 사람들은 전부 그를 찾았으니 혹시 이 사람도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상인에게 말을 걸어볼 수 있습니다.
 
차주현:안녕하십니까, 형제님. (상인에게 천천히 다가가 말을 건넨다.) 이 근방에선 처음보는 분 같은데. 어쩐 일로 찾아오셨나요? 외부인은 잘 오지 않아서요.
 
상인: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보다시피 물건을 팔러 왔지요. 저도 가능하면 도시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요새 이 주변이 말썽이지 않습니까? 원인도 모르고 갑자기 여러 마을이 폐허로 변하니 원…. 그 일 때문에 도시에서는 외부 사람을 절대 받아주지 않더군요. 그래도 이 마을은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차주현:... 바깥이 많이 심각합니까? ... 이 근방 성당에서만 있는지라... (잘 모른다는 이야기는 말 끝을 흐리는 걸로 대신했다.) 괜찮으시다면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상인: 아이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죠. 사람들은 전부 눈뜬 채 죽어있고, 멀쩡한 건물도 없습니다. 보아하니 성직자 같으신데 혹시라도 가지 마십쇼. 시체 냄새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울 테니까요. 분명 기도하기도 전에 쓰러지실 겁니다.
 
차주현:... (차마 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표정이 안 좋아진다.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감사합니다. 아, 그러고보면... 대부분 타지에서 오는 이들은 저희 성당의 사제... (잠시 멈칫,) 캐모마일 사제님께 도움을 요청하러 오시던데. 혹시 형제님도...?
 
상인: 저는 이곳저곳 떠도는 상인일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실은 다른 마을에서도 사제님을 한 번 뵌 적이 있었지요. 그 마을뿐만 아니라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순례하는 것 같던데... 뭐, 이제는 이 마을에 정착한 것 같지만요. 그러니 이리 살기 좋고 평화로운 마을이 된 게 아니겠습니까?
 
차주현:...? 아... (순간 조금 당황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괜히 잡아두고 있었군요. 죄송합니다. 부디... 안전하시길. (다른 곳으로 가려는 듯 눈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옮깁니다.)(민가로 가봅니다.)
 
작은 집들이 모여있는 주거 공간입니다.
 
민가의 중심엔 우물이 있으며 그 주변으로 세탁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서로 저들끼리 이야기하다 당신을 발견했는지 반갑게 맞이해주네요.
 
마을 사람: 안녕하세요, 신부님! 오늘은 마을 일을 도와주러 오셨나요?
 
차주현:아, 돌아다니면서 다치신 분들이 있으면 치료를 해드리고... 기도를 해드리려 왔습니다. 요즘 마을은 괜찮나요.
 
마을 사람: 아이고, 다른 마을에 비하면 이곳은 천국이죠 천국! 전부 사제님 덕분이에요. 예전엔 정말 마을이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니까요?
 
마을 사람들은 다시금 저들끼리 수다스럽게 대화를 나눕니다.
 
그러고 보니 분명...
 
<지능>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머리야... 잠을 못자서 그런가. 다시 한 번 떠올려봅니다.)
 
다시 한 번, <지능> 판정이 가능합니다.
 
차주현: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그가 이곳에 오기 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걸까요.
 
분명 옆 마을에서 폭동이 일어나 이곳도 피해를 봤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괴멸 직전에 그가 나타나 모든 상황을 정리했다고 했죠.
 
“저희는 그분이 신이 보낸 사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쩌면 정말, 그분이라면 모든 걸 구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마을 사람들은 신뢰를 넘어 상당히 맹목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신의 사자?
 
악마가 신의 사자라니,
 
사실을 말하면 그들은 분명 돌변하겠죠.
 
아니, 애초에 믿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차주현:(묘하게 착잡해져서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뜨고 간단히 기도를 드린 다음 자리를 뜬다.)(폐허로 가봅니다.)
 
옆 마을의 폭동으로 인해 무너진 건물들이 모인 폐허입니다.
 
수리할 자재도 인력도 부족해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있는 곳이죠.
 
지금은 아이들의 놀이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이런 곳에서 놀면 위험하겠지만…
 
으아앙!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아무래도 우려하던 일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저 멀리 다친 아이를 중심으로 안절부절하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차주현:(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는 아이들의 근처로 뛰어간다.) 어디 다쳤니? 좀... 봐도 괜찮을까.
 
가까이 다가가면 아이의 다리에 큰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빨리 치료를 해야 할 것 같네요.
 
<응급처치>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응급처치
기준치: 60/30/12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아...)
(함만 더...)
 
함만 더, <응급처치> 판정이 가능합니다.
 
차주현:
응급처치
기준치: 60/30/12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급하게 가지고 있는 약을 사용합니다.
 
완벽한 처치에 다친 아이의 표정이 한결 나아집니다.
 
주변 아이들도 당신을 존경의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다행이네요.
 
치료를 마치면 아이는 씩씩하게 감사하다며 인사합니다.
 
차주현:(다정하게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놀 때는 조심히 놀아야해. 알겠지?
 
아이: 네에! 감사합니다 신부님!
 
마침 타이밍 좋게 아이들의 부모가 찾아옵니다.
 
그들은 당신과 아이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어딘가 놀란 표정을 짓다가 곧 인사합니다.
 
아이의 부모: 아, 안녕하세요 신부님, 여긴 무슨 일로...?
 
차주현:잠시, 마을을 둘러보며 기도를 드리고 아프신 분들이 있으면 치료를 해드리려 왔습니다. 우연히... 이쪽을 지나는데 아이가 다친 게 보여서... 치료는 해주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아이의 부모: 아, 그렇군요...(당신을 경계하고 있다가 아이들이 따르는 모습을 보자 경계를 풀고는 말한다.) ...죄송해요. 사제님에 관한 소문을 들어서 저도 모르게 경계했네요...
 
차주현:...네?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침착해져서는 차분히 묻는다.) 무슨... 소문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아이의 부모: 아...(주변을 잠시 둘러본 뒤 목소리를 낮추고는 말한다.) 이런 말은 하면 안 되지만… 사실 사제님이 악마가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거든요. 갑자기 찾아온 이방인이 대체 무슨 술수를 부린건지, 다들 겉으론 내색하지 않지만 수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차주현:... 그렇습니까... (차마 다른 말은 더 하진 못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다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떴다.) 소문의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지요. 언젠간... 밝혀질지도 모르겠지만요. .. 아무튼, 감사합니다.
 
아이의 부모: 아휴... 그런가요. 그런데 신부님, 여태껏 사제님을 찾은 사람들이 멀쩡하게 나가는 걸 본 적 있나요? 다들 본 적이 없다고 하던데, 어쩌면 그간 타 마을이 괴멸된 것도 사제님이 벌인 짓이 아닐까요?
 
그때였을까요.
 
당신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
 
갑자기 나타난 마을 사람이 끼어듭니다.
 
보아하니 폐허를 정리하러 온 사람들 같습니다.
 
마을 사람: 그게 무슨 망언이야! 사제님은 우리 마을의 구원자야! 그런 소리 함부로 하면 쓰나!
병든 이들도 치료해 주고 농사도 잘 되라고 매번 기도해 주니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아난 거 아니겠어?!
 
갑작스러운 질타를 받은 아이의 부모는 당황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납니다.
 
폐허를 정리하러 온 마을 사람은 요새 저런 소문때문에 고생이 많다며 당신을 위로해줍니다.
 
마을 사람: 사제님처럼 신실한 분이 어딨다고 그러는 건지. 쯧,
그런 분이 악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비록 그게 사실이더라도 나는 우리 마을을 위해 힘써준 그분을 저버릴 수 없소.
 
차주현:(애써 덤덤하게 미미한 미소를 지어보았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건가요?
 
그렇게 말하는 마을 사람의 눈에는 신뢰로 가득 차있습니다.
 
날이 저무는 것이 보입니다.
 
일도 마쳤겠다, 이만 성당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오늘 하루 종일 불온한 바람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는 것 같습니다.
 
차주현:(조금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성당으로 돌아갑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성당으로 돌아오면 칠흑 같은 밤이 이미 찾아온 뒤입니다.
 
이만 당신도 쉬는 게 좋겠죠.
 
성당 안으로 들어가 당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전…
 
<듣기>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누군가가 기도문을 읊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건... 그의 목소리인가요?
 
홀린 듯이 예배당 안쪽으로 이동하면,
 
안에는 그가 제대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경건해서,
 
순간 악마라는 것을 잊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기도문을 다 읊고 나서야 당신이 온 것을 눈치챘는지 천천히 뒤를 돌아봅니다.
 
당신을 발견한 그는 여느 때와 같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반깁니다.
 
로먼 캐모마일:오늘 하루종일 보이질 않아서 걱정했습니다. 아가, 어디를 다녀왔던건가요.(너른 웃음을 지으며 묻는다.)
 
차주현:(...)(가만 멍하니 있다가 제게 묻는 당신에 정신을 차린 듯 당신을 응시한다. 평소와 같지 않은 건 자신 뿐이라는 걸 인지하자 묘한 불편함이 감돈다. 어젯밤의 일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가?) ... 잠시 마을에 내려갔다 왔습니다. ... 심부름을 받아서.
 
로먼 캐모마일:바빴겠군요. 수고했어요 아가,(짧게 대답을 마친 후 제대를 돌아보았다. 그것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손으로 쓸어보며 말을 잇는다.) 마을은 어떻던가요. 별 일은 없었습니까?
 
차주현:그다지... 바쁘지는 않았습니다. 일상적인 일이니... (그 물음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말을 해야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이 말을 입밖으로 내는 게 꺼려졌을 뿐이다. 어찌 보면, 난 악마를 옹호한 셈이기도 하니. 죄가 깊어진다.) ... 별 일은 없습니다. ... 그저... 당신이 악마라는 소문이 조금씩 돌고 있다는 것만 빼면요. 믿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인 것 같지만.
 
로먼 캐모마일:...그런가요. 완전히 숨기고 지내는 것은 역시 힘든 일이네요.(제대에서 손을 떼고는 손가락 끝에 붙은 먼지를 손을 두어 번 맞부딪혀 털어내고는 너를 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싶더니 천천히 입을 연다.) ...사실 저는 곧 이 마을을 떠나려 합니다. 이곳은 더 이상 제가 필요해 보이지도 않고, 정체가 탄로 나게 생겼으니 이만 떠나보아야겠지요. 매번 반복하던 일입니다.
 
차주현:(별다른 반응 없이 당신을 응시하다 나를 돌아보며 쓴웃음을 짓는 것에 잠시 멈칫하고 만다. 그럼, 그 때 말한 같이 떠나자는 말은...) ... 사는 동안 몇 번을 그렇게 반복했던 겁니까? ... 저번에, 제게 떠나고 싶지 않냐는 물음을 하셨었죠. 같이 떠나주겠냐는 말도 했었고. ... 떠난다는 게 이걸 말하는 것이었습니까?
 
로먼 캐모마일:...이제는 몇 번을 그리 반복했는지 생각이 나지도 않습니다. 삿된 존재의 숙명이란 게 아니겠나요 아가, 그러니 강요는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미 아가에게 신뢰를 저버렸으니까요. 그때의 그 물음은 이걸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지만, 아가가 원하지 않는다면 따라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보고 싶을 거예요 아가, 며칠 뒤에 이곳에서 꽤 멀리 떨어진 대도시로 갈 생각입니다.(희미한 달빛을 등지고, 그리 말하는 모습은 누군가의 피를 뒤집어쓰고 눈을 빛내던 그때의 모습과 겹쳐 보여 상당히 이질적인 모양새였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다정하여, 지독하리만치 다정하게 이어지는 말들은 여느 때와 같아서,)
 
차주현:(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를 터였다. 당신이 그리 가고 나서 내가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도, 어차피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면 당신을 다시 한 번 믿어볼까 라고 생각했던 것 마저도.) ... 그랬습니까. ... ... 멀리라면, 어쩌면 다시 못 볼지도 모르겠네요. ...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바로 떠나시는 건 아닌 것 같으니. (익숙하고 지독한 다정함. 그 사이에 스며드는 이질감. 그 다정함은 진심인지 그려내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삿된 존재에게 인간같은 다정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당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을 적엔, 지독한 다정을 느껴봤기에. 그럼에도 내가 내 마음에 여지를 두는 것은 아직도 당신을 마음에 담고 있기 때문이겠지.) 여러모로 혼란스러워서 말입니다. ... 제 감정도 당신도. ... 이거 하나만 물어도 될까요. ... 마을들의 괴멸은 당신이 불러온 겁니까?
 
로먼 캐모마일:마음을 정하면 말해주세요 아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충분히 생각해볼 시간은 될 겁니다. ...혼란스럽겠죠. 아가를 탓하고 싶진 않아요 오히려 모든 것은 제 탓이니,(이어지는 말에는 가만 입을 다물었다. 무엇이 그리 궁금해서, 그저 믿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당신에게로 두어 걸음 다가가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마주한다. 도저히 악마라고 생각되지 않을 외관, 태양빛을 닮은 금색 머리카락과 올곧게 신을 바라보는 달빛의 눈, 그리고 온통 새하얀 차림새까지. 오히려 천사라고 불리는 것들을 닮았으면 닮았지 악마로는 보이지 않았을 터이다. 더군다나 당신에게 그토록 익숙할 다정한 웃음을 얼굴 가득 기꺼이 지어 보이고 있었으니, 한참의 간극 후에 손을 내어 당신의 손을 살그머니 쥐고는 부드럽게 들어 올린다. 천천히 상체를 숙여 네 손등에 이마를 얹고는 기도하듯 읊는다.) 그걸 원한다면, 기꺼이 그리 해야겠지요. 이 세상에는 종종 악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온통 악의 탓이라며, 마음 놓고 비난할 존재가 필요한 법이지요. 그것이 삿된 존재로 태어난 저의 숙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말을 마치고는 천천히 상체를 들어 올린다. 마주한 네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나.)
 
차주현:... 무슨 탓이 있단 말입니까. 그동안 속인 것을 탓하는 겁니까? 그런 거라면 이미 받아들였으니 괜히 말하지 마세요. (조금 말이 날카롭게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조금의 원망을 담은 말. 그러나 차분했다. 충격이라면 이미 충분히 받았고, 세갈래의 길에서 어느 길을 택할지 내가 정해야 할 뿐이었으니. 머리가 차게 식는 기분이다.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떴다. 이내 제 앞으로 다가온 당신에 잠시 흠칫. 악마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성한 당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낀다. 다시금 어제의 피로 물들여진 악마의 모습이 떠올라 겹쳐보인다. 그 다정한 웃음이 가득한 얼굴을 마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두려움이 아니라, 내가 흔들릴 것 같아서. 제 손을 쥐고 기도하듯 말하는 당신을 내려다보았다. 세상엔 악이 필요하다는 그 말, 선이 있으면 악이 있어야 하고 선에 있는 자가 악을 타도하여 모두 행복해진다는 결말은 익숙했지만 그걸 당신에게서 듣는 것이란 조금 괴로웠다. 미묘한 감정들이 섞인다. 그것이 진심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서 띄워진 의문과, 그런 말을 하는 당신에게 닿는 동정심.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 됐습니다. 괜히 물어봤습니다. ... 실은 어떻든... 어떤 답이 돌아온다고 해도 상관 없었을 겁니다. 상관이 없다기 보단, 이해가 된다고 하는 편이 맞겠죠. 그러니, 그런 말 하지 말아주십시오. ... 괴롭습니다.
 
로먼 캐모마일:...방까지 데려다드리죠 아가,(별다른 말을 첨언하지 않고 그저 잡고 있던 네 손을 놓아주고는 제대 옆에 놓아두었던 초를 켜 불을 밝힌다. 일렁이는 불꽃을 잠시 눈으로 응시하다가 이내 걸음을 뗀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당신을 방까지 바래다줍니다.
 
푹 쉬라는 말도 잊지 않고 첨언한 후, 방문을 닫아줍니다.
 
적막이 찾아옵니다.
 
이제 그만 잠을 청해야겠죠.
 
잠들기 전 그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이제 곧 이 마을을 떠난다고 했던가요.
 
그럼 그가 떠난다면,
 
이 마을은 어떻게 되는 걸까.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어느새 그가 떠날 날이 점점 다가옵니다.
 
그간 그가 곧 이 마을을 떠날 거라는 말에 모두가 어떤 반응을 보였던가요.
 
다행히 걱정과는 달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잠잠하게 있었습니다.
 
물론 몇몇은 가지 말라며 붙잡긴 했지만요.
 
그 외엔 큰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 조용하게, 쓸데없는 이야기는 씹어 삼킨 채 평소처럼.
 
그것이 사실은 눈치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눈감아준 채,
 
만들어진 평화는 느리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사건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옵니다.
 
퍽!
 
오후였을 겁니다.
 
갑자기 누군가 그에게 돌을 던진 것은,
 
워낙 순간이라 그는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맞아, 이마에서 피가 흐릅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돌을 던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제야 누군가의 한이 서린 얼굴이 보입니다.
 
“악마!”
 
“저건 악마야! 우리 모두 속고 있는 거라고!”
 
돌을 던진 이는 정신 나간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며 소리를 지릅니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에 의해 금방 저지되지만,
 
여전히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봅니다.
 
광인이 있다면 저런 느낌일까요.
 
<이성>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SAN Roll
기준치: 64/32/12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성은 감소되지 않습니다.
 
그는 다친 와중에도 당신을 보호하듯 감싸 안습니다.
 
로먼 캐모마일:...다치진 않았나요 아가?(걱정이 되는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당신의 상태를 확인한다.)
 
차주현:... (그런 당신에 오히려 인상을 살짝 쓰고는 답한다. 사람이 많은지라 최대한 차분하고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본인부터 걱정하십시오. ... 괜찮습니다. 이마... 괜찮습니까? (당신의 상처부위를 살폈다.)
 
로먼 캐모마일:...이미 다 나았습니다.(당신에게로 상체를 가까이 하고는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넘겨 이마를 보여준다. 거짓은 아닌지 상처가 남아 있지 않았다.) 오늘은 위험해보이니 성당으로 돌아가도록 하죠.
 
차주현:(옅게 숨을 몰아쉬었다.) 다행입니다... (가만 당신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주변을 바라보고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가요.
 
성당으로 돌아가려 걸음을 떼면 마을 사람들이 두 사람의 주변으로 몰려옵니다.
 
그들 모두 걱정 어린 표정으로 괜찮냐며 자신들이 다친 마냥 호들갑 떱니다.
 
“요새 잠잠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그간 조용히 있던 건 전부 저희 눈을 속이기 위해서가 틀림없습니다!”
 
“이제 마을 문제는 저희가 해결할 테니, 사제님은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그들 모두 한껏 호의를 보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호의가 왜 이리 불편한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 기이한지.
 
사실은 저 표정이 단순한 호의가 아닌 것을 눈치채서?
 
<지능>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저 표정,
 
저 무언가를 바라는,
 
무언가에 홀린 저 표정들!
 
분명 예전에도 어디서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멍하게 서 있으면 그가 그만 돌아가자며 당신의 손을 잡아 이끕니다.
 
차주현:(이끌려 가면서, 울려오는 머리에 인상을 찌푸리다가 다시 한 번 흘긋, 사람들을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돌리고 돌아갑니다.)
 
로먼 캐모마일:(말없이 성당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멀어진 후에야 당신의 손을 놓아주고는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한참 그렇게 침묵 속에서, 성당 안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너를 돌아보며 말한다.) ...오늘 새벽, 나는 이곳을 떠납니다. 아가는, 어쩔건가요?
 
차주현:... (침묵을 깨고 들려오는 물음에 다시금 침묵을 유지한다. ... 이대로 당신을 놓고 싶진 않고, 감시를 한다는 명목아래 함께 있을 수 있다면... 핑계일 뿐이지만 용서를 받을 순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한동안 입을 달싹이다가 겨우 말을 내뱉었다.) ... 따라가겠습니다. ... 비록, 척도는 달라지겠지만...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따라가기로 어릴 때부터 마음을 먹었으니까요. ... 이만하면 답이 됐을까요.
 
로먼 캐모마일:그런가요. 아가가 따라와준다니 기쁩니다. 그럼 새벽까지 짐을 정리해두도록 하세요 아가, 저는 할 일이 있어 먼저 방으로 가보겠습니다.(작게 웃음을 지었나. 네 말에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고는 걸음을 떼어 제 방으로 향한다.)
 
이렇게 이곳을 떠나게 된다니,
 
짐을 정리해둬야겠습니다.
 
성당의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눌 수도 있겠네요.
 
차주현:... (방으로 돌아가봅니다. 미리 정리를 해두고 인사를 하는 게 낫겠지...)
 
얼추 시간을 보내면, 저녁이 찾아옵니다
 
출발하는 시간은 새벽이라고 했죠?
 
그렇게 늦은 시간에 출발하는 이유는 역시 악마라서일까요?
 
아무튼, 이제 몇 시간 뒤면 출발일 테니 가서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차주현:(잠시 고민하다가 로먼의 방으로 향합니다.)
 
그의 방 앞으로 가서 노크를 하면,
 
아무 소리도 반응도 없습니다.
 
차주현:(...? 들어가도 되는 건가...)(슬그머니 방 문을 열어봅니다.)
 
의아함과 함께 문을 열면 아무도 없는 빈 방이 눈에 들어옵니다.
 
분명히 할 일이 있다며 먼저 방으로 돌아간다고 말했을 텐데…
 
이미 전부 끝낸 걸까요?
 
그러기엔 정리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보입니다.
 
짐가방도 챙기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죠.
 
안쪽을 둘러보면, 최소한의 가구들만이 놓여있습니다.
 
침대와 옷장,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종이들로 채워져 있는 책상입니다.
 
차주현:(슬그머니 들어와 문을 닫고는 방 안을 걸으며 천천히 둘러보다 책상을 봅니다.)
 
책상 위는 종이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성경책부터 무언가 메모해 놓은 종이까지 책상 위에 난잡하게 놓여 있습니다.
 
얼핏 살피면 마을에 관한 일들이 적혀 있습니다.
 
여태 일어난 문제들을 정리한 것 같네요.
 
<자료조사>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자료조사
기준치: 65/32/13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다시 한 번 봐봅니다.)
 
다시 한 번, <자료조사>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자료조사
기준치: 65/32/13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
 
종이들을 손으로 뒤적여보다가 그만,
 
종이에 손이 베입니다.
 
체력이 1 감소됩니다.
 
차주현:(따갑네...)
 
살피는 도중, 책상 위가 너무 난잡한 탓인지 몇몇 종이들이 바닥으로 쏟아집니다.
 
아무래도 일을 더 늘린 것 같습니다…
 
정리라도 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차주현:(...)(피가 안 묻게 조심하면서 정리를 해둡니다.)
 
책상을 정리하다보면 이 근방이 그려져 있는 지도가 툭, 하고 떨어집니다.
 
몇몇 구간이 크게 표시되어 있거나 지워진 곳이 보입니다.
 
<지능>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지도에서 지워진 곳,
 
어딘가 익숙하지 않나요?
 
맞아요. 전부 모종의 이유로 괴멸된 마을들입니다.
 
지도가 끼워져 있던 책이 눈에 들어옵니다.
 
무언가 적혀있는데...
 
대략 마을과 관련된 일들을 기록한 것 같습니다.
 
차주현:(책을 펼쳐서 봐봅니다.)
 
핸드아웃 확인.
 
이건 대체…
 
무슨 말이죠?
 
여긴 그의 방일 텐데?
 
그러니깐 이건 분명 그의 물건인데요?
 
하지만… 이것을 쓴 것은 누구죠?
 
당신이 알고 있던 그가 맞나요?
 
<이성>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SAN Roll
기준치: 64/32/12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성이 1 감소됩니다.
 
마지막 기록에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비가 내리던 날, 이건 분명 그와 당신이 처음 만났던 날이 확실합니다.
 
그럼 그때의 다정함은?
 
그동안 보인 다정함은?
 
설마 다 거짓말이었던 건가요…?
 
정말 여태 혼란을 가져온 이가 로먼,
 
정녕 그였단 말인가요?
 
그것도 고작 그 유흥 때문에!
 
…그럼 그는 지금 어디 있는거죠?
 
지독한 예감이 덮쳐옵니다.
 
그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차주현:(충격을 받은 건지 마지막 기록을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는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눈에 빛무리가 졌던가. 겨우 정신을 차리곤 그를 찾아서 모든 걸 묻기 위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에게 모든 걸 묻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 순간,
 
발치에 무언가 걸린 것을 깨닫습니다.
 
바닥 부분이 살짝 올라와 있습니다.
 
차주현:(시선을 내려 바닥을 확인해봅니다.)
 
바닥에 붙어 있는 문이 보입니다.
 
차주현:(...)(도대체 뭘 더 숨기고 있길래, 이런 문까지? 상념을 가득 끌어안고는 문을 열어봅니다.)
 
문은 쉽게 열립니다.
 
그와 동시에 지독한 냄새가 납니다.
 
무언가 썩은 비린내 같은 것이…
 
바닥 아래에 고개를 내밀어 그 안을 살피면 무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확인하려면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네요.
 
다행히 바닥 아래는 그리 깊지 않지만…
 
안으로 들어가려면 몸을 숙여야 할 것 같은데,
 
차주현:(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뜨곤 몸을 아래로 숙여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봅니다.)
 
몸을 숙여 바닥 아래에 있는 것을 확인하면,
 
맙소사.
 
이미 썩어버린 시체를 발견합니다.
 
<이성>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SAN Roll
기준치: 63/31/12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성은 감소되지 않습니다.
 
<관찰>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3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토기가 절로 나는 것을 참고 시체를 살피면,
 
시체는 신부복을 입고 있습니다.
 
시체의 손엔 무언가 목각 같은 것이 들려 있습니다.
 
그 옆엔 책이 놓여 있네요.
 
차주현:(목각을 확인해봅니다.)
 
잘 보니 목각으로 만든 십자가인 것 같네요.
 
십자가 끝 아래는 뾰족하게 깎여 있습니다.
 
마치,
 
무언가를,
 
찌를 수 있을 것처럼.
 
차주현:... (애써 헛구역질을 참으며 책을 확인해봅니다.)
 
이 시체가 쓴 일지일까요.
 
책을 펼치면 상당히 거친 필체가 보입니다.
 
글씨는 저마다 제각각이고 배열이 엉망인 것을 보니,
 
빛 한 점 없는 곳에서 쓴 것이 분명합니다.
 
다행히 읽을 수는 있을 것 같네요.
 
차주현:(읽어봅니다.)
 
핸드아웃 확인.
 
책을 읽던 도중,
 
어느덧 숨쉬기가 괴로워집니다.
 
호흡을 어떻게 했더라.
 
머리가 점점 어질 거립니다.
 
빨리 이 지독한 곳을 나가서 그를 찾아야겠습니다.
 
찾아서…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생각의 회로가 단순해지고 점점 몽롱해지는 것 같습니다.
 
<관찰>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디선가 달콤한 향내와…
 
...기름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차주현:아... 안 돼... (얼른 나가려고 발걸음을 뒤로 한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단내에 취하다 보면 눈이 피로해지고 기분 나쁜 이명이 들려옵니다.
 
분명 걸음을 옮기려 했을 뿐인데,
 
이명이 끝없이 머릿속을 헤집습니다.
 
그리고 무언가 속삭이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집니다.
 
"어려울 건 하나도 없단다. 아가,"
 
"단지, 내게 기대고 눈을 감으면 그만이야."
 
이 얼마나 거슬리고 괴이한 속삭임인지.
 
삿된 속삭임이 분명한데,
 
어째서인지 그것을 들으니 몸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정신을 다잡고 싶어도 자꾸만 눈이 감깁니다.
 
안되는데, 잠들면 안 되는데…
 
결국 벗어날 수 없는 잠에 휘감겨 당신도 모르는 사이,
 
암흑 속으로 빠져듭니다.
 
-
 
새카만 암흑 속에서 무언가 보입니다.
 
다만 물속에 있는 마냥 시야는 흐릿했고 몸이 무거워 걷는 것조차 버거웠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이 어딘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런 생각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 지경입니다.
 
문득, 멍하니 서있는 ‘어린’ 당신을 누군가 나타나서 끌어안고 달립니다.
 
그와 동시에 잃어버린 상자를 찾아 연 것처럼,
 
모든 것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 새벽이었습니다.
 
마을은 비명이 끊임없었고 분노가 넘쳐흘렀으며,
 
역겨운 피비린내가 진동해 멀쩡한 사람도 미치게 만들 정도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당신은 가족과 함께 그 미치광이들에게 벗어나고자 집 안 깊숙이 몸을 숨겼죠.
 
어서 빨리 이 악몽이 끝나길 빌었습니다.
 
아아, 고작 그뿐이었는데!
 
그저 살고자 했을 뿐이었는데!
 
가만히 몸을 숨긴 당신들을 누가 발견했던가요.
 
감히 누가 당신에게 용서받지 못할 일을 저질렀던가요.
 
대체 누가,
 
누가 감히 당신의 눈 앞에서,
 
당신의 소중한 이들을,
 
찢고, 죽이고, 기어코 홀로 남은 당신을 비웃었나요!
 
미쳐버린 마을 사람들?
 
아니면...
 
아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알지만 입에 담지 않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악몽에서 깨어납니다.
 
<이성>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SAN Roll
기준치: 63/31/12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은 감소되지 않습니다.
 
…정신이 언제 돌아왔더라.
 
어느새 허리보다 낮은 제대에 손을 올려 몸을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들어보면 예배당입니다.
 
언제 여기까지 걸어온 걸까요.
 
이곳은 분명…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립니다.
 
이곳에서 그가 그동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잖아요?
 
멍하니 그 안에 서있으면,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납니다.
 
<듣기>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가물거리는 정신을 붙잡고 다시 들어봅니다.)
 
다시 한 번, <듣기> 판정이 있습니다.
 
차주현: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바깥이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
 
사람들의 분노로 가득 찬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즘, 예배당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옵니다.
 
아아,
 
그입니다.
 
로먼 캐모마일.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마치 걱정이라도 한 마냥,
 
당신을 발견하자 금세 달려옵니다.
 
“아가! 여기 계셨군요. 찾고 있었습니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해요. 그들이 당신도 죽이려 들 겁니다.”
 
마을 사람들의 상태가 이상해졌다며 어서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재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막아주고 있으니 이틈에 벗어나자며 당신에게 손을 내밉니다.
 
하지만,
 
하지만 당신은 저게 어떤 손인지 알고 있잖아요?
 
악마,
 
오롯이 삿된 존재.
 
말해주세요, 사제님. 아니 나의 아버지.
 
당신이 제 가족을 죽였나요?
 
차주현:(증오, 혼란, 갈무리 되지 못한 모든 감정이 섞인다. 당신이 제게 손을 내미는 것을 내치고는,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원망이 가득 섞은 목소리로 말한다.) 기만자, 악마. 살인자. ... 모두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모두 봤고요. 말해주십시오. 당신이... 모두 저지른 겁니까? 제 가족들 말입니다. 나에겐 신뢰를 운운했으면서? 정작 모든 건 당신이, 아.. 아... 이러지 마. 이러지 마라고요. 난, 적어도 당신의 절반은 믿었어. 그런데 나한테 이래? ... 그 애정, 사랑마저도 전부, 당신의 재미일 뿐이었냐고!!
 
당신이 그리 외치자 그는 충격 먹은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는 듯 말이죠.
 
감히 들키면 안 될 것을 들켜버려 그는 괴로움에 몸부림칩니다.
 
...저것이 괴로워 한다고?
 
아니, 그것은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습니다.
 
웃음이 튀어나오는 것을 참기 위해서 몸을 떨고, 몸부림치고, 흐느끼고.
 
아아, 그럼에도 결국 삿된 웃음소리만은 참아내지 못했나 봅니다.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은 당신이 알고 있던 다정한 사제가 아닌,
 
삿된 악마만이 서있었을 뿐입니다.
 
필시 그간의 다정한 모습은 분명,
 
제 속을 감추기 위한 필사적인 저항이었을 겁니다.
 
그야 그렇잖아요?
 
당신만 바라보면 웃음이 절로 나는데!
 
이제 감출 필요가 없어진 그는 오롯 당신만을 바라보며 다정한 미소를 짓습니다.
 
로먼 캐모마일:아아, 들켜버렸네. 드디어 나를 봐줬구나! 굉장히 기뻐. 언제쯤 알아챌지 기다리고 계속 기다렸어.(몸을 수그려 입가를 손으로 가린 채 억눌린 웃음소리를 내다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며 당신을 마주한다. 기이할 정도로 빛나는 두 눈,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당신에게로 다가와 손을 내어 당신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리고는 이윽고 눈물을 흘린다. 조금 전까지 웃음을 짓고 있던 그는 어디로 갔는지. 한없이 서글프다는 표정을 한 채로 나직이 속삭인다.) 아가, 가족들 일은 정말 안타깝군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인간이란 원래 그리 나약한 존재가 아니던가요. 아아, 그러니 조금만 건드려도 혼자서 자멸하고는 하니! 이 얼마나 우스운 꼴입니까! 그렇지 않나요 아가?(눈물이 흘러나오는 두 눈은, 이질적 이게도 형형하게 빛나고 있다.)
 
차주현:... 미친 새끼. (제 뺨에 닿는 손길을 내치고 싶었으나 그만큼의 정신이 없었다. 가증스러운 눈물을 지어내는, 인간의 모습을 흉내내는 그 모습에 진절머리가 나려고 한다. 신이시여,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신이시여, 신... 주여... 이것마저도 당신께서 내린 벌인 것입니까. 사랑해선 안 될 이를 사랑한 벌을 이렇게 내리시는 겁니까. 아니면, 당신은 정말 없는 것인가요. 제 앞의 악마는, 나를 보고 있는데. 말문이 막혀 말마저 나오지 않는다. 그저 눈물을 흘러내며, 입술을 꽉 깨물고 당신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아가, 라고 부르지마. 역겨워. ... 당신을 아버지라고 여기던 날은 이미 지났어. (그리 말하는 목소리는 날카로웠으나 떨리고 있었다. 아아, 사랑이 이리 꺾여가는구나. 한줄기의 빛같았던 구원 이후, 나의 빛이였던 당신이 사랑이 되고 나락이 되기까지, 당신은 이 모든 걸 바라고 있었던 걸까. 헛웃음이 절로나온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 가엾은 어린양을 나락으로 이끌기 위한 밑바탕에 불과했던가,) 알고 싶지 않습니다. 난 당신과 같은 악마가 아니니 죽어도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 가엾은 인간들에게 손을 내미는 건 당신이 아니었어야 합니다. 당신같은 악마가 아니어야했다고!! 아... 그래서, 즐거우셨습니까. 당신의 유희에 나는 어땠습니까. 무슨 답을 듣던간에, 난 더이상 당신에게 얽매이고 싶지 않아.
 
로먼 캐모마일:아아, 좋아. 나를 그렇게 증오해.(저에게 욕지기를 내뱉으며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저를 올려다보는 모습, 이를 얼마나 갈망해왔던가! 어서 나를 의심해. 내가 누구였는지 떠올려. 그러면 마지막까지 도달한 당신에게 아끼고 아낀 상을 줄게. 절망으로 물든 당신을 위해, 누구보다 찬란한 비웃음을! 어느새 인간 따위를 흉내 내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온몸을 잠식하는 쾌감을 견디기가 힘들어져서, 날카로운 이빨과 빛나는 두 눈을 그대로 드러내며 한껏 당신을 비웃는다. 아아, 멍청하기도 하지. 네 가족을 내 손으로 목을 쥐어뜯은 것도 모르고, 이토록 나를 사랑하는 꼴이라니. 어리석기도 하지, 나약하기도 하지.) 인간이란 참 재밌어. 그렇지? 서로를 물어뜯다가 자멸하는 꼴이라니! 내가 한 짓은 별 거 없어. 그저 작은 불화의 씨앗을 심어주었을 뿐이지. 내가 직접 목을 쥐어뜯은 인간은 몇 되지 않아. 아 그래, 그중에는 네 부모란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던가? 아하하, 나약하기도 해라. 고작 그 정도에 죽어버리다니... 조금 더 고통에 찬 신음을 듣고 싶었는데 너를 감싸다가 금방 죽어버리던 걸? 그대로 만족할 수 없어서 너를 데려왔지. 그래, 더 큰 절망을 맛보고자! 너는 내가 한 짓 중에 최고의 절망이야. 알아? 최고의 유희라고.(순식간에, 당신의 앞으로 바짝 다가가 날카로운 손톱을 목에 박아 넣는다. 눈을 마주하면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게 되겠지. 너를 속박해둔 채로 고개를 숙여 새어 나온 피를 핥는다.) 나를 사랑하잖아 주현아? 그런데도 나랑 얽매이고 싶지 않다고? 네가 원한다면 사랑을 속삭여줄게. 자비로운 사제이자 다정한 아버지를 연기하면서 사랑을 속삭여줄게. 응?
 

차주현:(내가 그토록 바라던 신은 없다는 걸 이제와서야 깨닫고 만다. 신에게 용서를 빌었던 것 마저도 허황된 것이었고,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당신에게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 모두 알량한 이 신앙심 하나로는 하늘엔 닿지도 않았겠지. 적나라한 악마의 모습을 마주하고는 절망은 더욱 커진다. 나약하고 어리석고 죄악이 가득 쌓인,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이다. 인외의 것을 마주하면 정신이 미쳐버리 듯, 당장 그 직전이었다. 이럴 때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이 신이라지만, 난 이제 당신이 없는 것을 안다. 결국 서서히 무너지고 말것이었다. 인간의 약점은 사랑이랬던가.) 닥쳐!! 닥치라고. (제 부모의 이야기를 하는 당신에게 증오감이 가득 찼다. 분노가 서린 눈으로 다시금 당신을 노려보았다. 내가 당신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아. 그리고 난 당신을 죽일 수 없고 말이야. 그러니 이런 반항밖에 할 수 없었다. 아아, 나약한 인간. 신의 믿음 마저 저버린, 믿었던 이 마저, 사랑했던 이 마저 저를 배신해버린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빈 인간.) 그래, 너한테는 그냥 내가 아주 쉽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일 뿐이겠지. 아... 그래... 애초에 제대로 된 구원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을테니까. 진작 깨달았다면 당신에게서 벗어나서 홀로 죽어버리든가 했을 걸!! 그렇게 한다면 당신이 어떤 반응을 했을까 궁금하네. 그 알량한 소유욕이랑 유희라는 감정이 어떻게 무너졌을지. (이빨을 빠드득 갈며, 당신이 제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눈을 마주하고 몸이 굳는다.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그저 고통 때문에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을 뿐. 당신이 내뱉는 말들은 제 정곡을 찌르는 말들이라 잔인하다 못해 역겨워지기까지 했다.) ... ... 사랑이라고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괴물에게 거짓어린 사랑을 갈구할 거라고 생각해? 아, 맞아. 난 너를 사랑해. 이 좆같은 사랑이 얼른 깨져버리면 좋겠는데 말이야. 더이상 사랑하기엔 나 자신이 싫고 역겨워질 것 같아서. 그러니까 차라리 날 놔. 그러면 적당히 괴로워하다가 홀로 죽어가줄테니. 그 전까지 날 보면서 그 유희라는 걸 즐기면 너도 나도 이득 아닌가? 사랑은 끝나고 유희는 유희대로 즐기고. 원래, 악마들은 이런 계약 좋아하지 않아? 안 그러냐고. (속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바라보는 눈 만큼은 형형했다. 절대로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마냥.)

 
로먼 캐모마일:결국 그러지 못했잖아?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나를 사랑한 주제에,(인간이란 종족은 그런 존재였다. 순간의 평화와 행복이 있다면 그것에 눈이 멀어 주변을 둘러싼 절망을 눈에 담지 못했다. 나는 그걸 이용한 것뿐이지. 공포와 분노 속에서,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역겨운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그곳에 홀연히 나타나 얄팍한 평화와 행복을 그들의 손에 쥐여주고 불화의 씨앗을 던져두기만 하면 그것은 서로를 향한 불신을 먹고 순식간에 자라나 결국 그들 스스로 자멸하기 마련이었으니까. 그 짓도 슬슬 질려 갈 때쯤 너를 만났지. 나에게 유희를 선사해주었으니,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조금쯤은 들어줄까. 악마의 마지막 자비를 말이야. 네 목을 붙잡고 있던 손을 순순히 놓아주고 너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 그런데 말이야 주현아,) 네가 나를 벗어날 수 있겠어? 죽음은 완전한 도망이 아니야. 일시적인 안정이지. 나약한 인간들은 종종 그런 식으로 구원을 바라기도 하지만, 너까지 그러면 안되지. 내가 어떻게 골라온 인간인데,(슬그머니 너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아아, 그래 그 눈빛이야. 절대로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꽃. 나는 내내 그것을 갈망해왔어. 그러니 너는 스스로 자멸해서는 안되지. 불꽃이 스스로를 꺼트릴 수 있나? 아니, 오직 외부적인 요인으로만 꺼질 수 있어. 그러니 나는 너에게 계속에서 숨을 불어넣을 거야. 잘 마른 장작을 넣어주고 충분한 산소를 공급할 거야. 결국엔 그 불꽃이 세상을 덮고 모든 것을 파멸로 이르게 할 때까지! 바깥의 소음이 커진다. 누군가가 다투는 소리, 날붙이 따위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 가만히 그것을 들으며 비웃기라도 하듯 천천히 입을 연다. 네가 사랑해마지않는, 자비로운 사제와 다정한 아버지를 연기하며,) 아가, 저를 지키려는 이들과 해하려는 이들끼리 싸우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서로를 헐뜯고 피를 보다, 결국엔 알아서 파멸하겠지요. 저는 이런 식으로 모두를 구원해드렸을 뿐입니다. 그들 모두가 스스로 서로를 구원해 줄까지, 인간의 얄팍한 마음을 이용해왔지요. 그러니 아가도,(천천히 너에게로 다가간다. 너를 지나쳐 예배당 가운데에 놓인 제대 앞으로. 아니, 나의 관 앞으로. 매캐한 연기가 점점 짙어져 간다. 너는 숨을 쉬기가 어려워지겠지. 예배당 안으로 불길이 치솟는다. 아랑곳하지 않고 관 위에 놓인 천을 스르륵 벗겨낸다. 그리고는 너에게로 손을 내민다.) 그러니 아가도 저에게서 구원을 찾으세요. 인간은 오직 죽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지. 그래...
나의 어린 양, 내가 바로 당신의 구원자야.
 
차주현:...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발악을 해 봤자, 그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몇 년이고 나 자신을 역겨워하면서도 당신을 사랑해왔고 신을 찾으며 용서를 바라던 회피적인 인간의 밑바닥. 그게 나였다. 목에 오는 고통이 끝나고 막혀오던 숨이 트이자 기침을 해대며 겨우 안정을 찾는다. 안정이 되기가 무섭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떨군다. 벗어날 수 있겠냐고, ... 벗어나려고 해도 당신이 나를 그리 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애초에 난 이미 당신에게 결속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당신의 정체를 알고도, 의심을 하면서도 당신을 따라가기로 결심을 했던 것을 보면 이미 사실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지. 빌어먹을 사랑은 증오를 누르고 나를 무너지게 했으니, 나보다 단단한 듯 싶었다. 나의 나약함에 다시금 헛웃음이 나온다.) ... 못벗어 나겠지. 벗어나려고 했으면 진작 너를 버리고 홀로 떠났을테니까. 아...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게 왜 이렇게 역겨울까. 빌어먹을 사랑이라는 감정은 왜 잃을 수가 없지? 이것도 인간의 죄악인 거냐고. (그리 중얼거리다가 들려오는 소음에 눈이 커진다. ... 지금 쯤이면, 당신이 바라는 파멸이 일어나고 있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끔찍한 소음. 당신이 내게 안겨준 절망의 순간과 구원의 순간이 겹쳐보인다. 정신이 마모되는 것 같은 끔찍한 소음들에 눈동자가 흔들린다. 정신이 깎이고 깍여나간다. 그 사이, 다시금 당신은 나에게 구원을 했던 그 순간과 같은 모습으로 연기를 한다.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자비로운 사제, 다정한... 나약한 인간은 또 이렇게 흔들리고 만다.) ... ... (결국엔 이렇게 되는 건가, 나의 구원은 신이 아닌 악마로부터 오는 건가. 그 구원이 낙원이 아닌 나락으로 향하는 것, 내 평생을 저 악마에게 바치는 것이겠지. 그저 저 악마에게 놀아나는 장난감에 불과한 인생으로 살아가겠지. ... 신이시여, 들리십니까. 당신이 구원하지 못한 한 어린 양은 기어코 다시금 악마의 손을 잡고 맙니다. 당신이 있었더라면 이 악마조차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겠지요. 다 이해합니다. 만약에 있다면, 마지막으로 이 어린 양의 목소리를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 세계의 구원자이시여, 나의 신이시여. 용서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이 파멸을 지켜보십시오. 어떤 결말이 올지. (그리 중얼거렸다. 자, 그럼 눈을 가려보기로 할까. 이 지옥보다 더욱 지옥 같은 현실에서 눈을 가리고 거짓으로 점철된 나날을 보내며 거짓된 사랑 속에서 자기 만족을 하며 사랑하는 악마에게 무너지고 고쳐지길 반복하겠지. 사랑하는 나의 사제, 나의 악마, 나의 아버지. 당신의 손을 잡았다. 그리곤 당신의 가까이 가 속삭였다.) 그러니, 어린 양에게 사랑을 속삭이세요. 지독하게. 더 큰 절망을 보도록. (단정하게 묶었던 머리를 풀고는 당신에게 훅 가까이 갔다. 악마의 키스는 나락으로 향하게 한다지만, 인간이 악마에게 하는 키스는 과연, 어떨까. 당신에게 진득하게 입을 맞췄다. 사랑과 구원을 갈구한 어린 양에게 숨을 달라는 듯. 애타도록. 배덕함에 가득 취해 나락으로 떨어지도록.)
 
로먼 캐모마일:(아아, 그래. 이래야지. 나약한 인간은 악마의 손을 빌려서라도 눈을 가리고 거짓으로 물든 행복 속에서 가련하게 살아가야지. 그것이 나를 사랑한, 악마를 사랑한 인간의 죄악이자 숙명일지니. 맞닿는 입술 새로 끔찍한 조소가 흐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이 전신을 잠식한다. 너에게서 천천히 입술을 떼어내고는 네 팔을 붙잡아 비워진 관 안으로 너를 밀어 넣는다. 그리고는 상체를 숙여 눈을 마주하고는 나직이 얘기한다.) 네 눈 앞에 있는 구원을 바라봐. 절망을 잊고, 오롯이 나를 바라보는 거야.(이윽고 네 이마에 맞닿는 입술. 부드럽게 입 맞추고는 상체를 물려 관의 뚜껑을 닫으며 끔찍한 다정을 속삭인다.) 자, 어려울 건 하나 없어. 그저 눈을 감고 나만을 생각해. 사랑해 주현아, 나의 어린 양.
 
-
 
그 손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은,
 
그간의 온정 때문에.
 
여전히 그 따스한 손을 잊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요. 당신은 그를 사랑하니까요.
 
비록 그가 끔찍한 악마일지라도,
 
모두를 파멸에 빠뜨린 잔혹한 악마일지라도,
 
눈앞의 악마는 당신의 모든 것을 빼앗았으면서,
 
그런 주제에 모든 걸 되돌려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그리고 어리석게도 당신은 그런 뻔한 수법에 걸려서 어느새 빠져나오지 못하게 돼버렸습니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니까요.
 
나약하고, 어리석은.
 
그는 어쩌면 알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나를 거부할리 없다고.
 
이 얼마나 오만한 악인지…
 
제 관에 누워있는 당신을 내려다보며,
 
사랑을 속삭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풍경이 아닌가요.
 
악마의 속삭임이었습니다.
 
그 삿된 속삭임에 저항할 시간조차 없이 눈이 감겨집니다.
 
그것이 마지막 밤에 일어난 죄악이었습니다.
 
…새벽이었습니다.
 
피비린내와 연기가 자욱한 그곳을 뒤로 한 채,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악마가 홀로 그곳을 유유히 빠져나옵니다.
 
어느 관 하나를 아주 소중하게 안으며…
 
그 악마는,
 
모두를 파멸에 빠뜨린 그 악마는,
 
다음 사냥터로 발을 옮깁니다.
 
다음은, 대도시로 할까요.
 
그게 좋겠습니다.
 
이제 작은 마을은 질렸으니까요.
 
오롯이 그의 유희를 위해,
 
마을은 어느새 비명 소리로 가득찹니다.
 
나의 어린 양,
 
내가 바로 당신의 구원자야.
 
END 5. 양의 구원자
 
KPC, 탐사자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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