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게구름 아래 선 가로수는 가지마다 맺힌 녹음을 드리우고,
어디선가 차르르, 환청처럼 자전거 페달 밟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훑어내는 자리마다 흐드러지는 머리칼을 내리누르며 시선이 닿는 곳은,
보도블럭이 붉어질수록 희어져만 가는 당신의 얼굴을 가만 바라보다,
정오를 가리키는 여름 하늘이 잘못된 꿈처럼 아득합니다.
당신이 정확히 천 번 하고도 백 스무 번째 죽은 날입니다.
달력에 적힌 날짜는 여전히 앞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은 알피가 죽던 날, 그 정확히 24시간 전의 정오입니다.
알피가 죽을 때마다 다시 이 순간으로 돌아오기를 택했던 것은,
아무리 시간을 돌려도 변함없이 죽어가는 알피,
그 알피를 손에서 놓을 수 없어 끝도 없이 시간을 돌리고 있는 당신이 아닙니까.
[우리 만나지 않을래? 네 얼굴이 보고 싶어.]
아론 테일러:(잠시간 핸드폰 화면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멍한 정신을 잡고는 답장을 한다.)
[좋아! 나도 알피가 너무 보고 싶은 걸. 오늘은 어디에 갈까? 알피가 가고 싶은 곳에 가면 좋을텐데.]
알피 케니스:[어디가 좋을까! 음~..... 장소는 이따가, 통화하면서 얘기해줘도 괜찮아? 아론과 같이 가는 거니까, 가고 싶은 곳 신중하게 골라야겠다.]
[준비 다 할 때 쯤에, 다시 연락할게, 아론!]
아론 테일러:[응응. 알겠어. 문자보단 통화가 편하기도 하구! 그래도 난 알피랑 가는 거면 어디든 좋은데.]
[기다리고 있을게!]
아론, 당신은 몇 번이나 이 문자를 받았을까요.
수많은 당신의 죽음에 나는 이미 닳아 버려서,
닳지 않고 아직까지 오롯한 것은 당신을 사랑했다는 기억 하나뿐이라서.
메마른 마음에 담기에는 당신과의 추억들이 너무나 애달파,
햇빛 젖은 바람 사이로 건조한 한숨이 낮게 깔립니다.
익숙한 손길로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면 전화 벨소리가 울립니다.
알피 케니스:아론~ 준비 다 했어?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집에만 있으면 아깝잖아.
그리고, 이렇게 날씨가 좋으니까! 아론 얼굴이 보고 싶어서...
아론 테일러:응~ 지금 막 집 밖으로 나왔어. 오늘도 알피 말대로 집에만 있긴 아까운 날씨네.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렇지만 웃음소리 사이엔 묘한 처연함이 섞였을지도 모르겠다. 그야, 당신을 또 잃어야하는 운명이 눈 앞에 기다리고 있으니. 내가 보고 싶다는 당신의 말에 무심코 목이 막혀 잠시간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연다.) 나도~! 원래 우리 항상 날씨 좋을 때 놀러다녔었잖아. 저번엔 어디에 갔었더라... (흐릿하게 조각난 기억의 파편을 떠올릴 수가 없어서 대충 얼버무리고 만다.)
알피 케니스:그렇지? 날씨가 엄청 좋아!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더 좋게 느껴질 것 같아. (마냥 맑은 목소리를 너에게 흘렸다. 사이사이에는 들뜬 마음과 행복한 감정이 새어 나왔고, 얼버무리는 목소리에,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게, 우리.. 어디를 갔었더라! 나도 기억이 잘 나지 않네.. (음~, 하고, 작게 앓는 소리.) ...잘 기억이 안 나면 뭐 어때! 추억은 계속 쌓으면 되는 거잖아. (그렇지? 하고 장난스럽게 속삭였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아론, 혹시~ 몸이 아프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아론 테일러:갑자기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버리면 나 아무것도 못한다구~ (괜히 장난스럽게 말하곤 다정하고 밝은 당신의 목소리를 제 귀에 가득 담았다. 핸드폰을 거쳐 들어오는 당신의 목소리가 당신의 곁에서 듣는 온전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이것마저도 소중했기에. 점멸해가는 기억의 파편 속에서 이것이라도 기억하고 싶었기에 단 한 음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추억은 쌓으면 되는 거니까. (그 추억이 쌓아지지 못하고 계속 조각나는 경험을 천 번을 넘게 한 나는 당신의 말에 온전한 목소리로 대답할 수 없었다. 핸드폰을 거쳐 조금은 치직거리고 붕 떠있을 나의 목소리가 이럴 때만큼은 반가웠다.) 전혀! 오늘 컨디션은 최상이야. 잠도 잘 잤어.
알피 케니스:응? ...그렇지만! 아론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맞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 또 사랑하는 사람! (맞지? 아론도 나 좋아하잖아, 하고 개구진 목소리로 이야기 하며 마냥 천진난만함을 내비췄다. 핸드폰을 잠시 만지작 거리며 말이 없다가도,) 그렇지만.. 역시 아론이랑 같이 쌓는 추억은,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기도 하구. (조금 아쉬운 듯 그리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은 뭐든 다 소중하니까. 부러 덤덤히 속삭였을까, 이내 다시 명랑한 목소리로 돌아와 전화 너머로 네게 햇살 같은 밝음을 전했다.) 정말이지? 혹시 몸이 아픈데 일부러 나 때문에 나온 거면 절~대로, (뜸 들이고.) ....용서, 안 할 테니까~ (간극 사이에 남겨진 공백이 무겁게만 느껴졌고.) 아론만 믿을게! 나도 오늘은 컨디션이 엄청 좋아. 아론과 같이 열심히 놀게, 푹~ 잤어.
아론 테일러:(거짓없는 순수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나의 사랑하는 알피 케니스, 당신의 사랑한다는 말 하나로 아팠던 아까의 상념들이 모두 잊혀져갔다. 사랑하지 않았으면 내가 이런 일을 선택하지도 않았었겠지. 이 하루를 소중히 여기자. 오늘이 세상의 종말이라도 되는 것마냥 당신을 품에 안고 그대로 사랑을 속삭일게.) 나도야. 뭔가 기억이 흐릿한게~ 다시 생각이 난다면 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우리가 항상 같이 있다보니까 익숙해져서 기억이 흐릿해져버린 걸지도 모르지. 왜, 그거 있잖아. 너무 일상같아서. 일상에 있는 모든 일이 기억나진 않는 그런 거. (당신을 안심시키려는 듯 밝게 말해보았다. 실은, 이 말은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 이젠 당신을 잃는 것 마저 덤덤해져갈 것 같은 지경이었기에. 그럼에도 난 포기할 수 없어서 계속 시간을 돌렸지만.) 정말! 내가 알피한테 거짓말 안 하는 거 알잖아~ 또 나 아프면 바로 티 나는 걸! 내 목소리 아파보여~? (장난스레 말하면서 웃어보았다.) 으응. 좋다 좋다. 그럼 어디서 만날까?
하늘을 올려다보면 몇 번이나 봤을지 모르는 여름의 푸르른 하늘이 펼쳐져 있습니다.
앞으로 당신은, 몇 번이나 더 이 여름하늘만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더 이상 당신이 볼 수 있는 단풍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알피, 오로지 당신을 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차라리 당신의 손을 잡고 영원히 이 여름에 머무르는 것을 택했으니까요.
맨 처음 시간을 되감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렇게 정한 일입니다.
그런데, 내딛는 발걸음이 무거운 것은 어째서인가요.
아마도, 목덜미를 태우는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일 겁니다.
알피, 당신 언제까지 이 여름에 머물러 있을 건가요...
전화 너머의 알피의 목소리는 여름 햇살처럼 청명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다른 계절로 넘어가지 않아도 당신은 행복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알피 케니스:그럼, 이쪽으로 와~ 알겠지? 기다릴게, 아론!
사랑해, 하는 작은 속삭임과 함께, 전화가 끊깁니다.
알피가 불러준 주소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공원입니다.
작고 고즈넉한 공원은 꽤나 풍경이 아름다워서, 언제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공원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시야에 작은 신문 가판대가 잡힙니다.
아론 테일러: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3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차곡차곡 놓여 있는 신문. 헤드라인에 적힌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트럭 급발진 사고, 사망자 1명 발생' '...시 외곽의 공사현장에서 구조물 붕괴, 지나가던 행인 덮쳐...' '...시 추락사 사건, 노후 건물 보수 필요성 강조'
...세상에는 사건 사고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사건사고란에 가득한 기사들을 보니, 어쩐지 불안해집니다.
공원에서 기다리고 있을 알피를 향해, 걸음을 조금 빨리 합니다.
가판대에 걸린 유리 풍경이 오색 찬연한 그림자를 기울이며 잘그랑, 소리를 냅니다.
저 먼 곳에서는 매미 울음소리가 학교를 마친 아이들의 종소리처럼 울려퍼지는 웃음소리에 화음을 넣고,
열기 가득한 여름의 바람에 가로수들은 파도처럼 유연히도 휘어집니다.
물방울을 닮아 걸음마다 튕기어 흩어지는 녹음을 밟고,
천 번이 넘는 되돌림 동안, 몇 번이나 이 공원에 왔을까요.
이제는 제 집 앞마당처럼 훤히 꿰고 있는 곳이지만...
때마침 저 멀리서 당신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드는 사람이 보입니다.
내리쬐는 햇살에 손차양을 하고 외치는 그 모습이,
아론 테일러:
지능
기준치: |
60/30/12 |
굴림: |
13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당신, 그렇게 밝게 웃고 있는데 어째서 미소에 그늘이 드리웠나요.
당신, 그래야 그 미소에 홀려 내가 다시 한 번 당신과의 하루를 시작하지요.
알피 케니스:아론, 많이 덥지? 오느라 수고했어.
너랑 같이 이 공원에 와 보고 싶어서. ...어때, 마음에 들어?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알피는 당신의 손에 음료수를 하나 쥐여 주며 맑게 웃습니다.
캔 표면에 송글송글 맺혔던 물방울이 영글어 팔목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아론 테일러:여름~ 활기차서 좋긴 하지만 더워서 힘든 건 어쩔 수 없나봐! 여름엔 운동하는 것두 힘들어~ (늘어지 듯 말하면서 당신의 곁으로 다가왔다. 같이 이 공원에 오고 싶었다는 당신의 말. ... 이미 몇 번이곤 왔던 이 장소. 몇 번이고 들었을 말들.) 당연하지. ... 예쁘다. 공원도, 알피도. (햇빛에 달구어져 뜨거울 당신의 머리를 잠시 쓰다듬었다. 당신에게 받은 음료수는 소중하게 손에 쥐고 있었다. 내 체온으로, 이젠 미지근 해져가겠지.)
알피 케니스:그렇지~ 확실히, 여름은 더우니까 축 늘어지게 되구. 운동을 하면 땀도 더 많이 나구.. 오늘같이 더운 날에는, 운동도 쉬엄쉬엄 해야 해, 알겠지? (무리하면 큰일 나니까~ 라고 덧붙인다. 장난 섞인 잔소리를 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웃는다.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쑥스러운 듯이 약하게 얼굴을 붉히며 웃어보고는.) ...응, 아론도 오늘 완전 멋있어! (그리 말하고, 음료수를 들지 않은 네 빈손으로 살며시 손을 뻗어 조심스레 쥐어 잡는다.) 더워도, 손은 잡고 싶어서.. (헤헤, 작게 웃고는.)
아론 테일러:당연하지. 혹시 몰라서 중간중간에 자주 쉬면서 하고 있으니까 걱정마. (이것또한 당신을 위한 거짓말이다. 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니, 내가 자주 했던 운동들 마저도 할 수 없다. 당신과 있는 시간이 훨씬 중요했으니까. 실은 이젠 라켓을 쥐는 법도 잊혀져가는 듯 했다. 하지만 별 신경은 쓰지 않아. 난 알피, 네가 더 중요하니까.) 나는 평소와 같은 걸~ (이라고 말하면서도 기분이 좋은 듯한 목소리는 숨기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제 손을 쥐어잡는 당신을 내려다보며 잠시 눈을 깜빡였다. 웃음소리를 내는 당신에 같이 미소를 지어보였나. 그리곤 당신에게 좀 더 가까이 붙었다. 더운 공기 사이로 느껴지는 하나의 또다른 뜨거운 온기. 이리도 따뜻한 당신을 다시 차가운 모습으로 마주해야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진다.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도. 날이 얼른 풀렸으면 좋겠다. 여름도 좋지만, 난 단풍이 진 가을도 좋거든. 선선해서 같이 이렇게 붙어있으면 따뜻하고 말이야. (그러곤 가만히 주변을 거니는 사람들을, 또 공원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알피 케니스:좋아, 계속 그렇게 하기로! (그저 지금 이 순간,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서, 다가올 미래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애 같은 미소를 지어본다. 거짓말을 하는 줄도 모르고, 그저 그렇다니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고개를 기울여 네 얼굴을 가만 들여다보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떠본다.) 아닌데, 우리 아론~ 오늘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어! (아론 얼굴만큼은 내가 보장해, 잡은 손을 꼼지락 거리며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한다. 가까이 다가온 얼굴에, 눈을 깜빡. 깜빡. 그리고 웃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너와 시선을 마주하고.) 이렇게 잘생기고 멋있는데! 평소랑 같은 거면, 우리 아론, 고백하려고 줄 서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걱정이야... (실은 이미 걱정은 잔뜩 하고 있지만~.. 하고, 조금 늘어지는 느낌으로 이야기한다. 당신의 가슴이 미어지는 줄도 모르고, 눈을 곱게 휘어 접어 웃어본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가만 바라보다가,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바람에 의해 살랑 흔들리는 나뭇잎도. 놓치면 마냥 고까울 듯이 천천히, 그리고 깊게 눈에 담는다.) 그러게, 가을은 언제 올까? 아론과 같이 맞이하는 여름도 좋지만... 난 역시 가을도, 겨울도, 그리고 그 다음의 있을 봄도 너랑 같이 보고 싶어서. (조금 먹먹한 목소리로 덤덤히 말한다. 먹구름이 왔나, 이렇게 날씨는 맑고 푸른데, 싶은 생각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마냥 맑은 날씨 청량한 목소리로 말 할 것 같으면서도. 눈을 아래로 내리 깔아본다. 괜히 네 손에 힘을 주어 잡는다.) ..음, 자, 아론! (잠시 공백을 사이에 두고, 다시 얼굴을 찡그리듯 웃으며 고개를 들어 널 올려다본다.) 우리, 꽃밭부터 가지 않을래? 꽃, 구경하고 싶어서. 같이. 아론은 꽃을 좋아하던가? (먼저 한 걸음 내딛어 잡은 손을 끌어당긴다.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아론 테일러:(이리도 천진난만한 밝은 미소를 짓는 당신은, 지금 내 모든 것들이 거짓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겠지. 묘한 죄악감이 치민다. 그야, 당신의 앞에선 거짓을 말하기 싫으니까. 당신에겐 모든 것을 진심으로 보여주고 싶은데. 어째서 운명은 이럴 수 밖에 없는 걸까.) 으응~? 그럼 얼굴만 좋아? 얼굴만? 뭐야~ 너무한데. (일부러 장난을 가득담아, 이렇게 말하면 당신이 웃을까, 아니면 당황할까. 그 많은 시간을 달려온 나는 왜 이것마저도 계산을 하고 있는 걸까. 이러고 싶지 않은데.) 그렇지만 그래도 난 알피 뿐인 거, 알고 있잖아. 언제나 앞으로도 계속. 어쩌면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을 진심이라고 해도 상관 없을 만큼. (당신의 미소를 바라보고 있자면, 행복해지면서도 가슴이 아프고 기쁘면서도 곧 다가올 절망에 당신의 웃는 얼굴이 눈물, 또는 아무런 것도 담지 못한. 더 이상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얼굴을 하게 될 것이 보여서 무심코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지금도 그렇고. 불어오는 미적지근한 바람이 볼에 닿자 뜨거워진다. 그래. 이런 와중에도 난 당신과 있어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있겠지. 붉어진 얼굴은 여름의 열감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었다.) 가을... 아마도 곧 오지 않을까?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니까. 또 곧 이제 푸른 잎들은 지고 서서히 가을의 색으로 물들겠지. 아하하. 물론 나도야. 단풍놀이도 가고 싶고, 눈이 와서 쌓인 어느 날엔 같이 손잡고 붙어 걸으면서 눈길 위헤 발자국을 남기고. 봄에는 같이 도시락을 만들어서 피크닉을 가는 그런 것들. 계속 떠오르고 그래. (왜, 이렇게 말하는데 먹먹해질까. 왜 또 당신은 미래를 말하면서 먹먹한 목소리를 할까. 묘한 의문이 피어올랐지만 애써 잠재웠다. 당신은 이런 분위기를 싫어했지. 화제를 바꾸는 당신에 나는 또 따른다. 무시하자. 그런 슬픈 것들은. 문득 당신도... 이렇게 같은 시간만을 반복하는 것을 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만다. 그 때 보인, 먹먹함과 묘한 슬픔의 감정은. 내 착각이 아닐 거라고 느꼈으니까, 이다. ... 진실은 모르겠지만.) 꽃밭? 으응~ 좋아하지, 당연히! 사진 찍어줄까? 아니면 같이 찍는 것도 좋구. (저를 이끄는 당신을 따라갔다. 이 때 만큼은 맑게 웃어보였다.)
불어오는 바람에 시야 가득히 만개한 로즈마리 꽃이 잘게 흔들립니다.
아론 테일러:
지능
기준치: |
60/30/12 |
굴림: |
5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그때는 다양한 종류의 여름꽃이 심겨진 평범한 꽃밭이었는데요.
아론 테일러:
교육
기준치: |
55/27/11 |
굴림: |
88 |
판정결과: |
실패 |
로즈마리 꽃에도 꽃말이 있었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개화한 꽃만큼이나 흐드러지게 웃는 알피의 옆모습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당신의 그 미소를 보기 위해 몇 번이나 시간을 되돌렸습니까.
당신을 놓지 못하고 또 이렇게 시간을 돌아 당신이 웃는 계절에 도착해 있습니까.
수없이 짓이겨진 나의 여름은 로즈마리 향기가 화하게 짙어서,
알피 케니스:이것 봐, 아론! 로즈마리가 잔뜩 피었어~ 예쁘지? (손을 뻗어 로즈마리를 약하게 훑는다.) 아론은 로즈마리 좋아해?
아론 테일러:응! 예쁘다... (가만히 꽃밭을 바라보다가 당신을 마주본다. 잔잔한 미소를 담았다.) 로즈마리... 꽃에 대해선 그렇게 잘 아는 편이 아니라서... 그래도 꽃이라면 예쁘니까 좋아해. 어떤 종류이든!
알피 케니스:(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며 웃어보고, 시선을 다시 꽃밭으로 옮긴다.) 응, 실은 나도 꽃들은 잘 몰라. 근데, 로즈마리는 예뻐서. ....있지, 아론은 로즈마리 꽃말에 대해 알아?
아론 테일러:꽃말? (잠시 당신의 말에 눈을 꿈뻑이며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꽃들에 모두 꽃말이 있는 건 알지만... 로즈마리는 잘 모르겠어. 알피는 뭔지 알고 있어? (고개를 갸웃하며 천천히 당신에게 다가왔다. 아까 당신이 한 것처럼 로즈마리를 손으로 약하게 훑어보았다. 꽃내음, 풀내음이 잔잔하게 올라와 안정이 된다.)
알피 케니스:응, 나는 뭔지 알아. (그리 대답하고 잠시 말이 없다.) 행복한 추억, 나를 생각해요. 그리고 하나는... (음~) 비밀! (조근조근 속삭이듯 말하며, 로즈마리 한 송이를 꺾어 가만 바라보다가. 제 귀에 꽂아보기도 하고.) 이거 봐, 어때? 누가 꽃인지 모르겠지? (철없는 장난을 치며, 꽃받침! 눈 똑바로 뜨고 어떤 반응일지 기대하며 눈을 반짝반짝..)
아론 테일러:그래? (알려달라는 듯 귀를 쫑긋, 당신에게 집중했다. 잠시 말이 없는 그 간극이, 원래라면 간극이 오면 불안했겠지만 이번은 그렇지 않아서. 이것도 로즈마리가 주는 안정이었을까.) 행복한 추억... 나를 생각해요... (가만히 중얼거렸다. 전부 예쁜, 또 아련한 뜻이네.) 응? 비밀이야? (눈 동그랗게 뜨고 눈을 꿈뻑였다.) 뭐야... 그렇게 해버리면 궁금해서 잠도 안 온다구~ ... 나중에 알려줄거지? (싱긋 웃으며 당신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다 슬그머니 당신의 장난을 보더니 작게 소리내서 웃고는 핸드폰을 들었다. 이렇게 찍어봤자, 다시 사라질 것들이지만.) 정말~ 누가 꽃인지 모르겠는데? 그럼 나 꽃 사진 좀 찍어도 될까? (당신을 향해 핸드폰 들어보였다.)
알피 케니스:음~ 나중에도 말해줄까, 말까! (장난스럽게 고개를 기우뚱,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우리 아론 궁금해서 잠 못 들지 않게 꼭 얘기해줄게! (사진을 찍는다는 얘기에 자세를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듯, 눈을 깜빡이며 작게 앓는 소리를 낸다.) 잠시만! 자세 좀 고쳐볼게, (급하게 꽃받침을 내려보고, 어떻게 할까, 하다가 꽃밭을 배경 삼아 뒷짐을 지어본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맑게 눈웃음을 활짝!) 이제 찍어도 돼!
아론 테일러:왜에~ 알려줘~ 언제가 되었든 좋으니까. (또, 기약없는 미래를 말하고 만다. 그러다, 알려주겠다는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오늘 안에 말해주면 좋을텐데. 허둥지둥 자세를 잡는 당신이 사랑스러웠다. 사랑스럽다는 티를 가득내는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 미소가, 계속 되었으면 좋겠어. 언제까지나.) 응. 좋아! 셋 할 때 찍을게? 하나, 둘, 셋... (핸드폰을 들어, 찰칵. ... 찍혀진 사진의 당신은 행복해보였다. 아름다웠고, 예뻤다. 당신의 곁으로 다가와 당신에게 찍힌 사진을 보여주었다.) 어때, 예쁘게 나온 것 같아?
알피 케니스:정말로, 나중에는 꼬옥, 얘기해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알겠지? (잔뜩 개구진 목소리로 답하고는, 사진을 찍는 셔텨 소리가 울리자마자 자세를 풀고는, 네가 보여주는 사진을 찬찬히 살핀다.) ..응, 예쁘게 나온 것 같아! (만족! 고개 끄덕끄덕!) 참.. 아론도 찍어보지 않을래? 내가 찍어줄 테니까. 그냥 가기에는 아쉽잖아, (달라는 듯이 손을 내밀고는.) 사진 찍어주면.. 음. 선물 줄게! 나, 아론한테 주고 싶은 게 있거든. 어때?
아론 테일러:응. 알겠어. 나 알피 말 잘 듣잖아. (... 그 나중이 언제가 될까, 하는 물음은 애써 다시 목 안으로 삼켰다. 내가 찍은 사진을 만족스러운 듯 보는 당신에 미소가 번졌다. 당신과 지내면서, 관심도 없었던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었지. 이유는 당신의 모든 것을 남겨두고 싶어서. 이것마저도 이젠 기억이 흐릿하다.) 응? 나도? (그러고보면 내 사진을 찍은 적도... 기록한 적도 거의 없었다. 잠시 당황하다가 제안에 응하고는 핸드폰을 건넸다.) 응? 선물? 뭘까나~ 기대해도 돼? 그러엄 예쁘게 찍어주세요 사진사님. (해맑게 웃으며 어정쩡하게 포즈를 잡아보았다. 포즈라기 보단 그냥 서있는 상태로, 바람결에 흩날리는 옷자락과 꽃잎들 사이로 웃는 얼굴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알피 케니스:그럼~ 우리 아론, 말 엄청 잘 들어주지. (네 얘기에 응하듯 고개를 얼른 끄덕여본다.) ...아론은 사진도 잘 안 찍었잖아, 맨날 나만 찍구.. 나도 아론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그리고 서로의 사진으로 핸드폰 배경화면을 꾸미면, 그것도 나름대로 예쁘지 않을까~.. 해서. (웃으며 핸드폰을 받는다. 핸드폰을 가지런히 고쳐 잡고서는,) 우리 모델님~ 사진사가 예쁘게 찍어줄게요! (나만 믿어, 하고 덧붙인다. 어정쩡하게 자세를 잡은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웃음을 빵 터뜨린다.) 자세가 너무 귀여워, 아론~ (조금 놀리 듯한 어투로 얘기했을까, 이내 웃음을 잠재우고 셔터를 누르기 위한 카운터를 재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하고, 이어서 찰칵 소리가 그 뒤를 가득 메운다. 짧은 셔텨 소리 뒤에 남은 공백에 끼어들어, 입을 연다. 그것마저도 웃음 소리였으나, 짧게 웃고 난 뒤에 네게 다가가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잇는다.) 자, 어때? 귀엽지~ 누구 애인이라서 이렇게 귀여운지 모르겠어! ..자, 사진을 찍었으니까, 우리 모델님한테 선물을 줘야겠지? 잠깐만 눈 감아줄래? 5초 정도만 눈을 감았다가 뜨면, 아론 앞에 선물이 나올 거야.
아론 테일러:아하하... 그렇지만~ 사진이 그렇게 잘 나오는 편도 아니고 찍히는 게 어색해서 그래. 그리구... 알피를 사진으로 남기는 게 더 좋으니까? 아, 배경화면? 귀엽겠다. (그건 좀 혹 했는지 눈을 깜빡이다가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귀엽긴... (살짝 힝, 하는 얼굴을 했을까.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진을 찍히는 것도 기억하기론... 아주 오랜만이었으니까. 도대체 며칠, 몇시간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을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그런 사소한 것들을 기억하기엔 당신이 더욱 중요했다.) ... 다행이다. 괜찮게 나온 것 같기도 한데? (가만 사진을 바라보다가 미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응? 눈... 알겠어. (지긋이 눈을 감았다. 5초... 그 5초라는 시간 마저도 아까웠지만 당신의 말이었으니 잠자코 따르도록 할까.)
알피 케니스:잘 나오는 편이 아니더라도! 내 눈에는 잘 나온 것처럼 보이니까. 아론은 어떻게 찍어도 귀엽게 나온다구. 물~론, 나도 내가 사진 찍히는 게 더 편하기야 하지만.... 지금이라도, 아론에 관한 추억 하나라도 더 남기고 싶은 게, 내 마음인 걸. ....그렇지? 배경화면, 분명 귀여울 거야. 나는 아론 사진으로, 아론은 내 사진으로~ (잔뜩 들뜬 목소리로 답한다. 찍힌 사진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이걸로 하면 되겠다, 내 배경화면. (뭐가 그리 좋다고 밝게 웃는다.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고, 네가 눈을 감는 사이에 뒤를 돌아 무언가를 만지작 거리 듯이 분주하게 꼼지락 거리더니, 5초가 지난 그 때에 뒤를 돈다. 네 손가락 사이즈에 딱 맞는 반지 모양으로 얽힌, 작은 꽃들을 보여주고는.) 신랑님~ 손을 주시겠어요? (하고, 맑은. 햇살의 밝음을 잔뜩 담은 미소를 짓는다. 눈을 뜬 너에게, 제 손을 내밀어본다.)
아론 테일러:(맑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거 콩깍지잖아~ 물론 알피 눈에만 예쁘다면 그걸로 나는 만족이지만 말이야. ... 추억, 나에 대한 추억... 그렇다면 계속 찍혀줄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언제든 괜찮으니까, 내 허락 안 받아도 되니까 사진 찍고 싶을 때 알피가 찍어도 괜찮아. 대신에~ 알피 혼자만 보기! 어때? (잠시만이라도 이런 행복에 취해보자. 언제 끝날지 모를 이 하루를.) 항상 핸드폰 볼 때마다 알피 생각나겠다. 하루도 연락 빠뜨리는 날이 없을 것 같아. (언제나, 빠뜨리지 않았지만. 이런 시간 속에 있게 된 뒤부터는. 그런 상념을 떠올려내며 가만히 초를 새었다. 제 앞에 있을 당신의 온기가 느껴졌기에 아까의 아깝다고 생각되었던 것은 전혀 다시금 떠오르진 않았다. 5초가 지나고 눈을 떴다. 제게 손을 주라는 당신의 말에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제 손을 내밀었다.) 신랑... 이라니. (생소하고도, 또 묘하게 기쁜 그 단어의 울림이 좋아서 당신을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알피 케니스:콩깍지인가~? ..아무렴 어때! 아론을 좋아해서 그런 거잖아. 응, 아론도, 싫지 않지? (어째 자신감이 넘치는 어투였다. 헤헤, 웃고는.) 그으럼~ 앞으로는 내 사진도 찍고 아론 사진도 찍는 걸로 하자, (좋은 생각이지! 그렇게 덧붙이고, 혼자 보라는 얘기에 고개를 얼른 끄덕인다.) 당연하지! 아론 사진은 나만 보고 싶어. 나만 꼭꼭 숨어서 몰래 봐야겠다~ 으응, 나도 그럴 것 같아. 핸드폰을 킬 때마다 아론 생각부터 나니까. 물론, 핸드폰 배경화면이 아니더라도 항상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야~.) 하하, 그렇게 감동이야? (눈을 반 접어 곱게 웃는다. 제게 내밀어진 손을 조심히 잡아, 네 약지 손가락에 꽃반지를 끼워본다.) 나, 이런 거 꼭 해보고 싶었어. 왜, 그런 거 있잖아. 자기야~ 가 아니라, 여보야~로 바뀌는 거. 그런 사소한 변화가 좋더라구.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고, 네 끼워진 손가락을 가만히 바라본다.) ...여보야! (장난 스럽게 내뱉은 한마디,) 우리 이제.. 분수대나 보러 갈까? 어때요?
아론 테일러:... (자신감 넘치는 당신의 말투에 못당하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당신의 말은 사실이었기에. 당연히 당신과 하는 모든 것들은 싫지 않고 오히려 아련하게 흐릿해져가는 그것들을 잡고 싶었으니까. 오히려 갈망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싫지 않아. 알피가 하는 것들이라면 전부 좋아. 사진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옆에서 같이 손을 잡고 있는 것도 사소한 것들 하나 하나 모두. (언젠가의, 고백처럼 제 마음을 나열했다. 풋풋한 날의, 행복만 가득했던 또, 그 나이대처럼 조금은 혼란스러웠던 그 날처럼.) 나도 알피랑같은 마음이야. 항상... 그냥 바로 알피부터 생각이 나더라고. 뭘 하든간에? 아하하. 이건 그냥 사랑한다는 뜻이야! 일상 하나 하나에 알피가 스며들어있다는 거니까. 이건 사랑의 일부로 봐도 되겠지. (제 약지에 꽃반지를 끼워주는 당신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런 건, 내가 해줘야하는데. 아주 멋지게. 하나하나 예쁘게 준비해서 정식으로 말이야. ... 그렇지만, 난 지금 너무 행복해. (이것만큼은 절대로 거짓으로 점칠되어진 것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난 미래보다 현실을, 지금을 보며 살아왔던가,) 나도. ... 그거 알고 있어? 그런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에 알피가 있고, 또 알피에겐 내가 있다는 거. 물론~ 내 상상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해. (나를 다른 호칭으로 부르는 당신에게, 저도 답했다.) 응, 여보. (다정한 목소리를 내었을까.) 좋아. 가면... 은근 시원하겠다. 거기가서 좀 쉬다가 또 다른 곳 가고 그럴래?
알피가 고개를 끄덕이고, 당신의 손을 잡고 이끕니다.
여름의 햇살을 닮은 미소를 지음에도, 어째서 맞잡은 손이 시리게 느껴지는 걸까요.
그렇기에 마주 잡은 손을 더더욱 놓지 못합니다.
정교하게 조각된 뱀이 제 꼬리를 문 채 분수대를 휘감고 있습니다.
공기 중에 산란한 물방울이 아지랑이처럼 무지갯빛으로 부서져 흩어집니다.
아론 테일러:(...소원...)(도전해봅니다.)
아론 테일러:
행운
기준치: |
63/31/12 |
굴림: |
31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아론의 손을 떠난 동전은 멋들어지게 분수대 안으로 들어갑니다.
아론 테일러:(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읍니다.)(이 고통이 곧 끝나길.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나의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평범한 일상이 돌아오길. 그렇게 바라며 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뜹니다.)
눈을 뜨자, 당신을 바라보던 알피의 얼굴에 웃음이 번집니다.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는지, 답을 듣기도 전에 손을 뻗어 당신의 손을 감싸쥡니다.
이게 몇 번째든, 앞으로 몇 번을 더 반복하게 되든 지금은 당신과 함께 있는 순간인걸요.
나는 아직도 당신을 애정하여 잡은 손을 놓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알피 케니스:...한 번에 멋지게 성공하다니! 대단해, 아론. 나 몰래 빌고 싶은 소원이 있었던 거야?
아론 테일러:아하하~ 소원이라면 많지! 그렇지만... 알피한테 소원을 빈 게 뭔지 말해주진 못할 것 같아. 그야 소원은 소원인 채로 남아있어야 즐거운 법 아니겠어? (싱긋 미소지었다.)
알피 케니스:(히잉..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조금 아쉬운 듯 힝구 표정을 짓는다.) ..그럼, 그 소원이 이뤄지면 나중에 얘기해줘. 나 궁금하니까! (곧 평소와 같은 밝은 표정으로 돌아오고는.) 아론이 소원도 빌었으니까~.. 이제, 언덕이 남았지? 나는 이런 거 못 하니까, 그냥 넘어가야겠다. (잡은 손을 살짝 당겨본다.) 이제, 마지막으로 언덕으로 가지 않을래?
아론 테일러:(아쉬운 듯한 당신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다가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그럼. 당연하지! 이루어진다면 바로 알피에게 달려가서 말해줄게. 그토록 바라왔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말이야. (가만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천천히 가자. 서둘르다가 지칠지도 모르잖아. (가볍게 잡은 당신의 손을 조금 더 단단하게 쥐었다.)
인파 속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어깨에 떠밀린 알피,
아론 테일러:
민첩
기준치: |
70/35/14 |
굴림: |
75 |
판정결과: |
실패 |
걱정 가득한 모습으로 당신을 살피며 말하는 목소리가 어쩐지,
다친 곳도 없고, 그냥 넘어졌을 뿐인데요...
알피 케니스:...아론,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랬어. 위험하잖아!
아론 테일러:... 미안해. (어째서 사과를 하게 되는 걸까. 오히려... 당신이 나에게 하는 말들은 내가 당신에게 수천번이고 했을 말인데. 묘한 감각에 울컥하지만 참아보았다.) 알피는, 안 다쳤어? 괜찮아?
알피 케니스:(소리 치듯이 내뱉은 말 뒤에, 이어지는 사과. 목소리를 듣자, 아차, 하며 찡그린 표정을 천천히 푼다.) 그, 아론. ....미안해, 놀라서.. 나는 괜찮아, (정말로. 먹먹한 감정을 담은, 짧은 한마디를 내뱉는다. 그리고 애써 웃고는.) .....얼른, 갈까? 늦겠다.
아론 테일러:아냐.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 다 걱정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할 수 있어. (애써 웃어보이며 당신의 먹먹한, 또 그 먹먹한 감정을 마주한다. 그것또한 애써 웃으며, 평범한 걱정이겠거니 치부하며 나 자신을 속인다. 우리 둘 다, 웃는 얼굴이 진실이 아니야.) 응. 얼른 가자. 손 잡을래? (당신에게 제 손을 내밀었다.)
알피 케니스:...그래도, (네가 애써 위로하는 말에,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시선을 이리저리 굴린다. 제게 내밀어진 손에, 천천히 손을 내밀어 잡았고.) 응, 잡을래. 가자.
상처 하나 남지 않은 나를 걱정하는 당신이 몇 번이나 내 눈 앞에서 죽었는지,
몇 번이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숨이 끊어졌는지,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얼굴 앞에 당신이 지나온 수많은 죽음들이 겹쳐집니다.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가면, 멀리까지 풍경이 한 눈에 보이는 언덕입니다.
투명하게 내리쬐는 오후의 햇살에 아지랑이처럼 일렁입니다.
흐릿한 시야를 되돌리기도 전에, 알피가 맑게 웃는 낯으로 손을 잡아 이끕니다.
네게 꼭 보여주고 싶었어, 아론!
당신보다도 더, 어쩌면 이 세계의 누구보다도 더요.
아론 테일러:...응. (찬찬히 익숙하고도, 묘한 일렁임이 이르는 그 언덕에서 멀리, 저 먼 곳의 풍경을 내다본다.) 보여주고 싶었던 거면, 전부터 알고 있던 곳이었어?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만, 다시금 물어보았다. 그저 잊고 싶지 않아서 다시금 머리에 넣기 위함이었다.)
알피 케니스:예쁘지? (네 반응을 가만 살피다가, 따라 시선을 옮겨 전 곳의 풍경을 바라본다. 일렁임까지 모두 제 시야에 담았고. 말 없이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고는.) ...오늘 아침에 나오기 전에, 한 번 알아봤거든! 예쁘다길래, 아론과 오면 딱이겠다 싶어서~ 얼른 보여주고 싶었어. (마음에 든 거 맞지~? 하고, 웃으며 덧붙인다.)
아론 테일러:알아봤었구나? 그래서 직접 본 소감은 어때? 상상만큼 마음에 들고 예쁜 곳이야? (당신의 덧붙여진 말에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안심이... 되는 곳이네. 시야가 트여있어서 그런가. 여기서 지는 해를 바라봐도 예쁠 것 같아. 노을이 지면... 저 푸른 잎들이 노을의 붉은 빛으로 물드는 걸 보는 것도 아름다울 텐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말은 애써 삼켰다. ... 노을이 지기 전에 당신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알피 케니스:인터넷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예쁜 것 같아. 상상 이상으로 예뻐서 엄청 만족 중이야. 아론이랑 같이 봐서 그런 걸까? 더 들뜬 건. (어깨를 으쓱이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두 걸음, 세 걸음. 그 정도 걸었을 때, 뒤를 돌아서,) 같이 보는 거야. (저물어가는 배경을 등지고 네게 웃으며 말한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꼭 같이. 그럼 분명 더 아름답겠지? 아론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다. (말을 마치고, 빙글, 가볍게 뒤를 다시 돌아 배경을 바라본다.)
아론 테일러:사진이랑 실제로 보는 거랑은 역시 느낌이 다르려나. (만족한다는 당신의 말에 웃어보았다.) 응? 아하하. 그래?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알피랑 있으면 뭐든 다 좋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그 말은 사실인까 하고 말을 덧붙였다. 당신이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저를 돌아보는 당신과 뒤의 아름다운 배경이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하나라도 놓칠 새라 눈에 담았다. ... 나중이라는 말은 언제나 잔인하게 들린다. 우리에게 미래는 없는데. ... 찾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데.) 나중에. 그럼. 언제라도 좋아. 꼭 지는 노을을 이 언덕 위에서 바라보고 서로 꽉 붙잡고 있자. 놓지 말아줘. (조금은 어리광을 피우는 듯 장난스레 말했지만 이 말은 진심이니까.)
알피 케니스:아무래도 역시 그런 거겠지? 사진보다는, 실물로 봐야지 더 예쁜 건 사실이니까... (중얼거리 듯이 얘기하고는, 이어지는 네 말에,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응, 아론도 나랑 있으면 뭐든 좋다고 했었어. 그리고....... 나도 그렇다고, 얘기해주고 싶었으니까. 줄곧. 아론과 같이 하는 모든 건 하나도 지루하지 않거든! 오히려 더 같이 있고 싶고, 떨어지기 싫어서 말이야. (이정도면 중증이지, 하고 덧붙인다. 네 답답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늘어놓기 바빴다.) 좋아, 약속한 거야! 나중에 나랑 또 여기 보러 오기로. (놓지 말아달라는 얘기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눈을 깜빡이다가. 네 앞으로 다가왔고.) 우리 아론, 어리광 피우는 거지! 정말이지. 그렇게 귀여우면 말이야~ 당장이라도 안아주고 싶단 말이야! 이렇게~ (라며, 팔을 벌려 너를 힘껏 끌어 안는다.)
아론 테일러:(하나하나, 나열되는 당신의 말을 듣고 있으니 맑은 하늘과는 다르게, 먹구름이 끼는 것 같이 우중충해지는 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다시 당신을 바라보고 먹구름을 지워내었다. 나에게 있어선 태양같은 당신이었으니까. 먹구름이 사라지고 태양의 따스함만이 나에게 남았다.) 중증이라니, 나도 그런 걸. 그냥 우리 서로 너무 좋아하나봐. 안 그래? (가벼운 미소를 담고는 약속, 이라는 단어에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약속. 언제가 되었든. 생각이 나면 다시 오자. (잠시간 당황하다가 나를 힘껏 끌어 안는 당신에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한다. 왜, 왜 나는 여기서 또 울컥하는 걸까. 가끔은 이렇게 껴안았을 때에 내 얼굴 표정이 안 보이는 것에 감사하다고 느낀다. 무심코 눈물이 맺혔지만 꾸욱 참아내었다.) 어리광인 거 어떻게 알았어~? 나, 자주 안아줘. 요즘 온기가 그리워~ (여름에 무슨 온기,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로 이 공허한 마음은 겨울과도 같았다. 마음 속에 채워지지 않는 온기에 서서히 심장부근부터 얼어가는 기분, 여름 속에서 내 심장만큼은 홀로 겨울인 채로 있었다. 당신의 온기가 심장에 닿자 눈 녹듯 겨울은 사라져갔다.) 알피, 있잖아. 많이 사랑해. 알고 있지?
알피 케니스:그런가?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그리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 그럼, 난 아론을 너무 많이 좋아하나 봐! (그리 말하며 해맑게 웃는다. 자신이 태양과도 같은 존재인 것을 아는지, 마냥 또 해바라기가 바라보는 밝은 태양과 같이도 웃어보였다더라, 해바라기 같은 당신에게 아낌없이 줄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라.) 응~ 척하면 척이지! 우리 아론, 요새 내가 많이 못 안아줬잖아. 안아달라고 얘기를 안 하려나~ 싶었지. 자주 안아줄게, 아론이 질리도록 매일 안아주면~.. 아론이 기뻐하려나? (여름이어도, 사람간의 온기는 마냥 따스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특히 그것이 네 온기라면. 시리더라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딱 붙어 함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천천히 네게서 떨어지고, 환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알고 있어. ...나도 많이 사랑해, 아론!
공원을 전부 둘러보고 나자, 벌써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저무는 태양 빛에 금빛 물들인 미소로 당신이 나긋하니 인사합니다.
알피 케니스:그나저나,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이제 그만 가야겠다.
아론, 우리 그럼... 내일 또 보자.
그리 말하고, 머뭇거리다,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웃습니다.
...많이 사랑해.
그 말만 남겨 놓고 어스름 깔린 거리로 사라져 버리는 당신,
나는 그 말을 주워 심장 가장 깊은 곳에 담고 서서히 몸을 돌립니다.
이 어둠이 짙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겠어요.
땅거미 진 저녁 공기에는 뭉근하니 습기가 묻어납니다.
다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조금쯤은 가벼워진 것도 같습니다.
끝나지 않을 푸른 밤의 손길에 이끌려 꿈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올리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릅니다.
그러면 내 뺨을 적시고, 신고 있는 구두코에 떨어져 얼룩지는 이 비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아니, 이 비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게 이상합니다.
모든 계절을 합친 것보다도 무거운 나의 당신,
생경한 바닷속처럼, 폐부를 물이 한가득 채운 것만 같습니다.
꿈이 기도를 틀어막아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반복되는 하루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건가요.
KP:아론, 생생하고 끔찍한 꿈에
<이성> 판정.
아론 테일러:
SAN Roll
기준치: |
64/32/12 |
굴림: |
5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숨을 고르고 머리맡의 휴대폰을 보자, 느지막한 오전입니다.
알피에게서 부재중 전화 몇 통과 문자가 와 있습니다.
[전화를 받질 않네, ...목소리 듣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어제 그 공원으로 와줘! 우리, 열두 시에 보자.]
다급하게 나갈 채비를 마치고, 구르듯이 집밖으로 뛰쳐나갑니다.
열기를 머금은 도로에 발을 내딛자 불안한 예감이 무더위와 함께 덮쳐듭니다.
알피, 이번에도 또 당신을 구하지 못하면 나는 어떻게 할까요.
아, 나의 알피 케니스. 사랑하는 사람....
...저 멀리 공원으로 건너가는 횡단보도 너머에서 반갑게 손을 흔드는 사람이 보입니다.
오늘은 정말로 이 계절의 끝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호등의 초록불이 켜지고, 당신을 향해 발을 내딛습니다.
아론 테일러: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79 |
판정결과: |
실패 |
...나를 보며 웃지 말아요. 어째서, ....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살이 뭉개지고 한 목숨이 끊어지는 소리.
아스팔트에 흘러 고이는 눅진한 피비린내에 나는 다만 아찔하니 눈을 감습니다.
당신이 정확히 천 번 하고도 백 스물 한 번째 죽은 날입니다.
달력에 적힌 날짜는 여전히 앞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은 알피가 죽던 날, 그 정확히 24시간 전의 정오입니다.
설마 그 많은 죽음들은 전부 당신의 선택이었던 건가요.
나는 끝도 없이 자살하는 당신을 살리기 위해 끝도 없이 시간을 돌렸던 건가요.
알피 케니스:[아론, 같이 도서관에 가지 않을래?]
아론 테일러:(어떻게 해야할까. ... 울렁거리는 속이, 울려오는 머리가 믿지못할 것들이 계속 떠올라서 혼란스럽기만 한 상태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겨우 들어 당신에게 답을 한다. ... 사실을 알고 싶어. 그렇다면 당신을 만나러 가야겠지.) [응, 언제볼까? 도서관은 오랜만이네.]
알피 케니스:[음.. 있지, 지금 바로 준비해서 나올 수 있어? 나, 벌써 도서관인데.. 혼자는 조금 심심해서.]
아론 테일러:[응? 아 그럼. 바로 갈게. 좀만 기다려! 같이 책 읽다가 책 빌리고 카페라도 가자.]
당신, 이 계절이 무엇이 그리도 무서워 모든 하루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죽음을 택했는지.
그 사이를 관통하는 오후의 햇살과 인력을 잃고 느릿하니 공중을 부유하는 황금빛 먼지들.
당신의 손을 뒤에서 잡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웃어 보이며 검지손가락을 세워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아론 테일러:(고개를 끄덕이곤 당신을 따라간다.) 되게 조용하네...
알피 케니스:엄청 조용하지? 오랜만에 책을 읽고 싶어서.. (당신을 조심스럽게 이끌고는.) 올 때 많이 덥지는 않았어?
아론 테일러:응. 일부러 그늘있는 곳으로만 왔지. (라고 말하면서 뒤에 여름의 뜨거운 햇빛은 이젠 싫어서~ 라고 가벼이 덧붙였다.)
알피 케니스:잘했어. (고개 끄덕!) 그래? 나는, 그래도 아론과 같이 있어서.. 아직은, 햇빛이 싫진 않아. (...그냥, 그렇다구. 작게 덧붙인다.)
...참, 있지. 아론.
나는 찾을 책이 있어서 저 쪽으로 가 봐야 하는데. 우리, 조금 있다가 볼까?
아론 테일러:그래? (당신의 말을 가만 듣다가 무엇인가를 더 말하고 싶은데 입이 쉽게 열리지가 않았다. 고개를 살짝 숙이곤 입술만 달싹이다가 이내 들리는 당신의 말에 다시 당신을 바라보았다.) 응. 나도 좀 오랜만에 온 만큼 둘러보고 있을게.
...오늘도 사랑해, 아론.
그 말만을 남긴 알피는 야속할 만치 가벼운 발걸음으로 서가들 사이로 사라져 버립니다.
느지막한 오후의 적막만이 당신 주변을 감싸고 있습니다.
아론, 알피가 돌아올 때까지 책이라도 읽고 있을까요.
아론 테일러: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3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서가 사이에 단 한 권, 제목이 없는 검은 책이 꽂혀 있습니다.
어쩐지 기묘한 느낌이 나는 책입니다.
책을 펼쳐 보면, .....
...모독적이고 광기 어린 신화 생물들, 형언할 수 없이 아득한 주문과 저주와 그 어떤 것들.
KP:닿아서는 안 될 신화의 편린을 접한 아론,
<이성> 판정.
아론 테일러:
SAN Roll
기준치: |
64/32/12 |
굴림: |
4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책을 덮으려던 순간, 한 문단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뒷 페이지는 찢어져 있지만, 앞 내용은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시간과 공간에 잇닿은 위대한 그 분의 힘을 빌리면 인간의 몸으로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대가는 되돌리는 시간만큼의 기억, 표식은 힘을 쓰는 자의 생명.
...누적된 시간은 세계에 쌓여 세계를 무너뜨릴 것이니.
자신은 단 한 번도 기억을 잃은 적이 없는데.
아무리 시간을 되돌려도, 단 한 번도 기억을 잃은 적 없이,
이 끝없는 계절을 이어 온 것은 정말로 당신이었습니까?
아론 테일러:
지능
기준치: |
60/30/12 |
굴림: |
2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모든 하루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매번 죽어갔던 사람,
당신은 어째서 매번 죽어 이 계절을 이어가고 있나요.
시간을 돌렸던 것도, 이 하루를 반복하고 있던 것도,
아론 테일러:
SAN Roll
기준치: |
64/32/12 |
굴림: |
3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한참을 달리다 보면,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입술을 열었는데, 알피의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당신과 눈이 마주치자,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습니다.
기억하고 있었어? 전부?
...그 모든 순간들을?
또 얼마나 많은 비밀들을 끌어안고 있기에 발걸음이 그리도 무겁습니까.
당신 홀로 짊어진 것이 무엇이기에 그리 죄 지은 듯 버거워하면서도,
알피가 사라진 자리, 떨어진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론 테일러: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6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종이에 쓰여 있던 내용이 눈에 들어옵니다.
무너지는 세계에 쌓인 시간들은 고이고 흘러내려 그 되돌림의 종착지에 쌓였고, ...
어리석은 자, 단 하나를 위해 세계를 돌렸으나,
인간의 몸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죄업을 그 몸에 쌓았구나.
눈앞을 휘젓는 토막난 생각들에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당신.
가없이 푸르기만 한 이 계절이, 칠흑처럼 검어지도록 걸음만 옮깁니다.
무언가에 부딪혀 고개를 들었더니, 익숙한 현관입니다.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당신은 또 하루의 끝에 와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그대로 물에 젖은 솜처럼 잠에 빠져듭니다.
마르지 않는 눈물이 눈가를 적시고, 때아닌 비를 내립니다.
모든 것이 젖어 흐린 가운데 고요히 누워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 이상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이름을 부르고,
흐느끼며 고개 숙여 발원하듯 이마를 맞댑니다.
모든 것이 푸른 이 계절에서 홀로 붉고 하얀 당신이 서럽습니다.
나는 당신이 없는 이 하루를 홀로 남아 버틸 수가 없어요.
가슴을 후벼파는 고통에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몸을 수그립니다.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온 생애와 마음을 바쳐 애달프게 애정했던 것은
온 세계와 반복되는 모든 하루를 통틀어, ..
고개를 들면 정해진 수순처럼 휴대폰이 울립니다.
당신은 언제나처럼 내게 내어 줄 대답이 없겠지요.
전화 너머로 전해지는 목소리에는 옅은 물기가 스미어 있습니다.
...온 하늘이 깨끗한데 어디서 비구름에 젖어 왔을까요, 당신.
나는 홀로 죽어 나를 사랑해 왔을 당신이 마냥 안쓰럽기만 합니다.
알피 케니스:아론, ...미안해. 미안해....
나 지금... 너희 집 앞에 있어. 아론, ...
너에게, 할 얘기가.. 있어.
아론 테일러:(아무말도 없이 가만히 그렇게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울컥 울컥 올라오는 감정들의 나열을 차마 입을 열고 말할 수가 없어서 그대로 침묵하고 만다. 겨우 입을 열어서 하는 말은 당신의 물기어린 목소리를 보듬어 주고 싶은 나의 다정의 파편.) 왜 미안해 해, 알피가. ... 알겠어. 금방 나갈게.
차양이 드리운 그늘 아래 서 있는 알피입니다.
아론 테일러: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2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전조도 없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철골에 놀란 눈을 하다가,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피어오릅니다.
공기 중에 산란했던 뿌연 먼지는 내려앉으며 한껏 핏물을 머금습니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뛰쳐나온 당신의 발을 감싸안아 샛붉게 물들입니다.
정오에 짓이겨진 당신의 죽음에서는 이 잔혹한 계절과 같은 향이 납니다.
당신을 으깨어 나를 살리고, 당신은 행복한가요.
당신이 정확히 천 번 하고도 백 스물 두 번째 죽은 날입니다.
달력에 적힌 날짜는 여전히 앞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은 알피가 죽던 날, 그 정확히 24시간 전의 정오입니다.
옷을 챙겨 입고,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갑니다.
처음으로 내가 먼저 당신에게 전화를 건 정오.
알피 케니스:아론, 부탁이야. 여기로 와 줘.
알피가 불러준 주소는 여기서 멀지 않은 폐건물, 옥상 위입니다.
힘겹게 달리는 발걸음 따라 뭉게구름이 흐르고,
물기 머금은 바람은 등을 밀어 앞서 나갑니다.
저 멀리서 잔향처럼 자전거 바퀴 소리가 차르르, 부서지고,
당신은 이 계절이 무서워 죽음을 택했던 것이 아니었군요.
그리고 그 다음의 내가 없을 계절이 무서워서,
제가 영원히 죽어 나를 영원히 살리기 위해서,
죽음으로 하루를 이어붙이고, 이어붙이고, 이어붙여...
알피, 당신이 살아 있고, 내가 살아 있어 완벽한 하루입니다.
군데군데 웅덩이가 생긴 바닥은 쪽빛 물들인 하늘을 닮아,
그리고 난간을 하얗게 감아쥐고 위태로이 기대선 알피.
아론 테일러:...응. 나 왔어. (차마 웃는 당신을 바라볼 수가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는 당신에게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간다.)
알피 케니스:...나한테 궁금한 게 많을 거야, 그렇지? (다가오는 당신을, 여전히 웃는 낯으로 가만 바라본다.) 뭐부터 설명을 하면 좋을까.
아론 테일러:(어째서 당신은 그렇게 덤덤할 수 있을까. 애써 참아왔던 것들이 밀려 올라와 시야가 서서히 흐릿해진다. 빛무리지는 시야가 원망스럽다. 울고 싶진 않았는데. 최대한 삼켜본다. 으레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와 같이. 덤덤하게.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얇은 목소리 사이로 나온 말은 구차한 감정의 나열들.) 알피, 왜, 왜그랬어. 응? ... 난, 아무것도 모르고 이 반복되는 날들이 너무나도 괴로워서, 미래가 없는 이 계절에 갇히는 게 너무 괴로워서 갈망하고 뭐라도 해보려고 하고, 너무 많은 날을 보내와서 이젠 기억조차 흐릿해져가는 일상 속의 행복들을 찾기가 너무 힘들어서 모두 끝내고 싶었는데. 그래 버리면... 난, 어떻게 해야할까. 알피.
알피 케니스:(이미 덤덤하기로 다짐했던 것이었다. 얄팍하게 떨리는 네 목소리와, 그 사이로 울컥 흘러나오는 네 감정들이 듣기만 해도 시려운 것 같아서. 쥐고 있던 난간에 힘을 준다. 찡그리듯이 다시 웃는다. 게다가 지금 이렇게 울지 않으면, 아론, 널 달래줄 수가 없잖아.) ........아론. 내 이기심 때문에 힘들었지, 많이 괴로웠지. 그것도 모르고 내가... ....미안해, 네게 할 말은, 미안하다는 말 밖에 없는 것 같아. (차분히 호소하는 몇 마디. 나를 원망해도 괜찮아, 네가 살아있잖아. 그 말들을 속으로 삼킨다. 잠시 뜸을 들이고 말이 없다가도, 심호흡을 하듯 숨을 크게 고른다. 천천히 입을 연다.) ...내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설명.. 해줘도 괜찮을까. 변명 밖에 안 되겠지만...
아론 테일러:(이기심, 당신의 이기심.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길래. 나를 잃을 수 없었다는 그것 하나 때문에 그런 리스크를 감당하고서 이 계절 속에 스스로 갇혀버린 당신이 어째서 원망스럽지 않을까. 왜, 그런 당신에게 무어라 말을 할 수 없고 그저 당신을 껴안아 주고 싶을 뿐일까. 당신이 내게 하는 말은 내가 당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다. 많이 괴로웠지, 많이 힘들었지. 당신을 버려가면서, 깎아가면서 마모되고 잃어가면서 그 모든 걸...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내가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당신에겐 또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먼저, 먼저 말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오진 않지 않았을까? 감정의 나열들을 거두고 당신에게 다정을 내비친다. 나를 위해 모든 걸 버려온 당신에 대한 나의 작은, 아니 하찮을지도 모르는 위로를, 어루만짐을. 당신에게 다가가 당신을 내 품에 안았다. 부서져라 당신을 내 품에 안고 참았던 눈물을 토해내고 만다.) 아니야. 아니야. 알피가 왜 미안해 해. 미안해 하지 말아줘. 알피도 너무 괴로웠을텐데 어째서 알피가 나를 위로해. 그러니까, 제발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말아줘. 제발...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그리곤 울리는 흐느끼는 소리. 당신의 어깨에 내 얼굴을 묻고는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놓아주고 당신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울고 있어 엉망이 된 얼굴로 당신을 향해 웃어보인다. 모든 다정을 담아, 나의 사랑하는 당신에게. 그토록 그리워 했을 나의 진실된 웃음을.) 변명, 이라고 해도 좋아. 알피가 괜찮다면. 난 모두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 같아.
알피 케니스:(나의 이기심이란, 너를 놓아주지 못하고, 계속해서 바스라져 가는 모습을 네게 내비췄다는 것. 너를 놓아주면 되는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하고, 붙잡아서, 마지막까지 너를 곤란하게 해버렸다는 것. 어쩌면, 그 자체만으로도 네게는 고통이었으리라. 내가 네게 할 수 있는 말은 그것 밖에 없었다. 쓰디쓴 아픔을 참아가면서까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채로 네가 사랑하는 나의 죽음을 보여주는 것이 정말로 옳은 행동이었을까. 침묵, 침묵이 이어진다. 애써 웃는 낯으로 살짝 고개를 숙여본다.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너를 울리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너를 살리겠다고 이 끝나지 않는 여름 속에 뛰어들지 않았어도....... 당장에 왈칵 차오르는 눈물을 꾹, 삼킨다. 나까지 울면 안돼. 정말로 너를 달래줄 수 없을 지도 몰라, 봐. 울 것 같은 네 얼굴을 보고, 어떻게 나까지 울 수 있겠어. 널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잖아. 그렇지? 아론. 제게 다가와 끌어안는 모습에, 곧 눈물을 토해내는 모습에, 안쓰러움을 담은 미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천천히 팔을 뻗어 너를 끌어 안는다. 또 천천히, 등을 토닥인다. 흘리는 눈물을 천천히 어루 만지듯이. 너는 무엇이 그리 슬프길래 목소리를 떠는 걸까. 그건 아마도 내가 그동안 널 살리겠다는 명목 아래에 했던 모든 죽음과 고통 때문이겠지, 그래 놓고서도 네게 미안하다고 고하는 내 작은 호소 떄문이겠지. 그저, 말 없이, 너를 토닥인다. 알아, 네가 하려는 얘기가 무엇인지 다 알아. 구태여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지만, 그 의도가 전해지게끔 최대한 다정히 어루만진다.) ..응, 알겠어. 미안하다는 얘기, 안 할게, 아론....... (말 끝이 조금 떨렸나, 그것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젖어가는 어깨가 마냥, 홀로 서러워 나를 놓치고 마는 네 슬픔이 가득 담겨있는 것 같아서.) ...얼굴 엉망이 됐어, 아론. (약간의 장난이 섞인 말을 애써 뱉는다. 그래도 웃어주는 모습이 고마워서, 엉망이 되어버린 얼굴도 나는 그저 사랑스러워 보여서. 어쩌면 네 존재 자체가, 차마 함부로는 놓을 수 없었기에. 나는 이기적인 선택을 했나보다.) ....응, 아론, 그럼 전부 얘기할게. 잘 들어줘.
알피가, 다시금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합니다.
알피 케니스:너는 알까, 아론. ...너는 까마득히 오래 전, 맨 처음의 오늘에 갑작스런 사고로 내 곁을 떠났다는 사실을.
너를 잃은 나는, 너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아론을 다시 내 곁에 둘 방법을 찾아다녔어. 그냥 보내주면 될 걸. 미련하지, 미안해. (잠시 뜸을 들이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기억과 목숨을 대가로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어.
......처음에는 너를 살리려고 했지만 모든 방법이 실패했고, ...결국에는 네가 죽기 전에 내가 죽어서, 네가 살아 있는 하루를 끝없이 반복하기로 했어. 애초에 불가능 했던 거야, 네가 죽고 난 뒤로..
네가 있는 하루를 이어가기 위해 하루를 계속 돌린다면, 분명히, 세계가 무너질 것을 알았지만.... 세계보다는 네가 있는 하루가 더 소중해서, 그래서. (턱, 무언가 막힌 것 마냥 입을 꾸욱 다문다. 몇 번 입을 달싹이더니, 다시 목소리를 꾸역 뱉는다.)
그렇지만... 네가 내가 세계를 돌린 대가로 그 무너지는 모든 기억들을 받게 되었을 줄은 몰랐어, 홀로 기억을 갖고 계속 되돌아갔을, 아론, 너에게... 많이 미안해. 미안하고, 또 미안해. 많이 힘들었잖아, 날 살릴 수 없어서... 그렇지? (애써 웃는다. 차마 눈물을 흘릴 수 없음을 알기에,) 넌 미안해 하지 말라고 그랬지만, ...미안해. 나는 네게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모든 진실을 알고, 혼자 아파했을 아론, 너에게...
마지막으로, 선택권을 줄게.
그 얼굴에 물탱크의 그늘이 드리워 표정을 알아보기 힘듭니다.
위태로이 난간에 기대어 하늘에 반쯤 몸을 걸친 양이,
꼭 계절이 바뀌는 순간, 비상을 준비하는 철새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내가, 네가 있는 하루를 위해서, ...
...다시 한 번 죽어도 될까?
당위처럼 다가올 세계의 종말을 알면서도 당신 하나에 목을 매어 이 지경까지 온 그 사람이.
멸망을 기다리듯, 조용히 난간에 체중을 싣습니다.
아론 테일러:(아아, 나의 사랑하는 사람아. 그 아픈 것들을 참아가면서도 나의 앞에선 울지 못하고 모든 감정들을 꾹꾹 참는 나의 가녀린 사랑아. 그런 당신을 마음껏 품에 안고 울어도 된다며, 무너져도 된다며, 내가 지지해줄테니 아파하지 말라며 고하며 당신에게 내 모든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 나를 몇 번이고 달래주고 지탱해준 당신을 이젠 내가. 그 역할을 내가 하고 싶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은, 전해졌다. 나에게, 또 당신에게. 그렇게 닿는 온기가 어째서인지 이 여름에는 어울리지 않아서. 이 풍경도, 여름의 마지막을 고할 것 같아서. 계절의 끝, 그 날카로운 선단 위에 서있는 당신이 견뎌왔을 모든 것들이, 또 바라왔을 것들이 해일처럼 머릿속을 울린다. 이기적이라면, 내가 더 이기적이지 않느냐고, 당신의 고통을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행동했던 것들이 이제서야 업으로 다가와 다를 짓누른다. 사랑이 이리도 아픈 것일까. 여름의 사랑은 온도가 너무 뜨거워 결국 나와 당신에게 화상을 입히고 말았어. 영상 36.5도. 당신과 나의 체온보다 더욱 뜨거운 영상 1200도. 나의 모든 것. 내 모든 걸 바쳐서 사랑하고 싶은, 내 모든 걸 주고 싶은 나의 사랑아. 당신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도 마지막까지 나를 위해서 선택지를 주는구나. 당신의 사랑이 너무나도 커서 감히, 내 사랑도 당신만큼 클까, 만약에 내가 그랬더라면 당신처럼 나도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 끝없는 잔인한 문장들의 나열. 다시금 목이 막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멸망을 맞이할 당신의 그 처연한 모든 것들이, 난간에 기대는 당신이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인다. 손을 뻗는다. 손을 뻗고 다시금 당신을 품 안에 안는다. 우리는, 그 누구도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 모든 것은 운명이 일으킨 우리의 어긋남 뿐이니까. 우리는 모두 뜨거운 계절 속에서 고통스러워했고 이젠 그 계절을 끝낼 때야. 그렇지만서도, 나는 당신을 잃는 게 두려워. 더이상은 잃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내게 확신을 줘. 나의 온전함을 확인할 그것, 사랑 말이야.) 있잖아 알피. ... 내 결정을 말하기 전에 확신, 을 줄 수 있을까. 알피, 내 사랑하는 사람아. 알피. 알피 케니스. (속절없이 당신의 이름을 되내인다. 내뱉는다. 아, 확신을 받을 그 말을 내뱉어야하는데 어째서 입이 움직이지가 않아. 또 어째서 눈에서 뜨거운 것들이 쏟아져내려 당신을 눈에 담을 수 없어. 모든 게 고통스러워. 꾹 감았다가 빛무리진 시야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 여름의 마지막 하늘. 이젠 정말로 고해야한다. 구름 한 점 없는 저 하늘을 배경으로, 나의 사랑을 그리고 당신의 사랑을.) 알피, 있잖아. 나를 사랑해? 난, 난 알피를 너무 사랑해. 너무나도 사랑해서 더는 잃고 싶지 않아. 더이상의 절망은... 버틸 수 없을지도 몰라.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서, 결국 또 무너질거야. 그러니까, 내... 말에 대답해줄래?
나를 사랑해? 내가 무너지지 않게, 사랑을 고해줘. 내 사랑.
알피 케니스:...아론. (이끌려 네게 안긴다. 속절없이, 네 품에 안겨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몇 번 깜빡이다가. 천천히 웃는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감는다. 네가 내게 전해주는 온기는 너무나도 따뜻해서, 이 더운 여름에도 유일하게 놓칠 수 없는 게 너의 사랑이라. 데이고 데여도, 계속해서 잡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더라. 계속해서 품에 끌어안고, 사랑을 마주 속삭이고, 혹여 그 사랑에 다친다 하더라도 놓을 수 없는 것이 아론 테일러, 너라는 사람이었기에. 내 몸을 던지고 던져서, 천 번이 넘는 시간을 함께 버텨준 너 또한 사랑스러웠기에, 그래서 더욱이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몸이 바스러지고 마모되어 더 이상 쓸모를 잃는다 한들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너를 위해서라면 이런 건 몇 번이고 더 할 수 있어,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우리가 그 멸망 속에서 잠들어버리는 것이 최후라 하더라도, 나는 마지막에 안고있을 너의 온기가 마냥 그리울 것이어서. 너를 품에 끌어안고 사랑을 고하고 싶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고해성사를 하듯, 구별없이 말을 내뱉는다.) 있지, 아, 아론. 나는 혼자는 싫었어, 네가 없는 나는 홀로 이 여름을 벗어나기가 너무 힘들었어, 아론. 그래서, 나는 말이야, 너를 너무 사랑해서, 너를 내 기억 속에서 놓았다가는 정말로 너랑 떨어져버릴 것 같아서, 그게 너무 무서워서, (결국 왈칵 쏟아지는 눈물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떨리는 어깨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결국에는 네 앞에서 제 서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토해내버린다, 너의 다정함에는 힘이 있어서, 결국에는 날 울리는 구나. 되내어지는 제 이름이, 어째 이번에 마지막으로 불리어질 이름 같기에, 두 눈을 꾹 감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아론, 나는 이대로 너를 보낼 수 없어. 보내기 싫은데 어째서,) 그런 말은 하지마, 아론... 결정을 해야겠다느니, 지금 너와 보내는 이 여름이 마지막인 것처럼, 그렇게 얘기하지마, 제발.... 제발, (어쩌면 네게 묻지 않고도 바로 눈을 감고 몸을 던질 수 있을 것이었다. 네게 인사를 고하고, 또 다시 몸을 던져 이 더운 여름을 반복할 수 있었을 거야.) ....너와 함께 하는 여름이잖아, 네가 있는 여름이잖아. 나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서. 내가 죽는 건 신경 쓰이지 않았어, 그런데..... 그렇게 마지막을 고해버리면, 나는.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해, 아론. 널 붙잡는 방법 밖에 이제는 아는 것이 없는데, 네가 이렇게 마지막을 고해해버리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해, 아론? 아론, 아론 테일러, 나의 사랑하는 사람아... 소나기 오듯 제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에 고이는 이 물은, 어디서 왔기에 내 얼굴을 이렇게 적시는지. 그건 아마도 너를 사랑하는 나의 이기심에서 왔으리라. 그런 이기심을 품어주는 너의 다정한 사랑에서 왔으리라. 네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말이 없다. 너의 옷깃을 꽈악 잡은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서, 놓칠 것 같이 위태로운 너를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아론, (천천히 손에 힘을 푼다. 눈물 범벅으로 된 내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네 품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들지 않고는, 네게 들릴만큼의 목소리로만, 잘게 떨리는 목소리와 어깨로. 너의 이름을 천천히 부른다. 그래, 이제는 때가 된 것 같아. 너를 놓아줘야 할 것 같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널 붙잡고 있는 것은 네게 절망 밖에 되지 않겠지.) 응, 응, 아론. 이제, 이제는 그만해야 할 것 같아. 너를 붙잡는 건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아. ...내게, 사랑한다고 물었지, 아론, 대답해줄게.
...억겹의 시간이 지나 우리가 다시 만나 서로를 알지 못하더라도, 내가 사랑할 사람은 너 뿐이야, 아론. 사랑해, 내 온 생애를 바쳐 애달프게 애정했던 내 사랑.

아론 테일러:(수천번 고쳐 죽어, 나의 여름을 지켜준 나의 사랑스러운 사람. 그런 당신을 내 모든 것을 꺼내어, 숨김 없이 그 무엇도 거짓된 것 하나 없이. 마치 지난 날의 거짓의 업을 지우려고 하기라도 하는 듯 애절하게 내 모든 진심을 꺼내어 당신에게 전한다. 나의 세상은 당신인데, 나의 세상이 아파하고 마모 되어가는 것은 도저히 눈으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그렇기에 당신이 진심을 고하면서 눈물을 흘려도 당신의 바람대로 해주지 못할 것 같아. 그러니 그저 당신에게 다정을 건네며, 또 그 공허한 심장을, 마모 되어가는 정신을 몸을, 나의 모든 것을 빼어내어 채워줄 뿐이다. 어째서 이리도 운명은 잔인한 것일까. ... 언젠가, 너무나도 행복하던 시절.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온전한 일상이 있었던 시절에 무심코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온전했을 때에 바라왔던 영원한 시간이,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토록 잔인할 수가 없더라. 나는 너무나도 약한 사람이라서, 이 여름을 계속 하기에는 너무나도 약하고 어떻게 보면 당신보다도 마모되어가고 있는 나약한 사람이라서. 이런 내가 싫기도 해.) ... 혼자, 혼자는 외로우니까. 전부 이해할 수 있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감각은, 그 속에서 살아간다는 감각이 아프고 또 아프고 끔찍하고 무섭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아. 알피. ... 그렇지만, 지금은 내가 옆에 있잖아. 온전한 나는 아닐지 몰라도 네 앞엔 내가 있어. ... 같이 여름을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이 지독하게 뜨거웠던 여름을. 아픈 여름날의 기억을 떨쳐낼 수 있을 거야. (가만, 눈물을 토해내는 당신을 토닥였다. 토닥이면서 그저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알피, 알피 케니스. 알피. 알피야. 네가 우는 것은 마음이 아프지만, 이 때만큼은 울어도 괜찮아. 그동안 많이 참아왔잖아. 나를 위해서. 이제는 내가. 너를 위해.) 여름은, 계속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다음 계절을 보고 싶어. 여름은 너무 뜨거워. 우리, 가을로 가볼까? 같이... 함께 말이야. ... (이 또한 당신에겐 너무나도 잔인한 말이 될 것 같아서 가슴이 아려온다. 또 다시 시야가 일렁이는 것이 느껴진다. 당신은, 내가 있는 세계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는데 나는 또 이 몸을 버려, 당신과 함께 이 계절을 끝내려 하는 지독하게 잔인하고 욕심많은 사람이야. 나의 다정함이... 당신에게 아픔이 되지 않길, 독이 되지 않기 만을 바랄 뿐이다. 이 다정마저도 당신을 아프게 한다면 더이상 나는 정말로 버틸 수가 없을 것만 같아. ... 곧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당신의 입에서 나올 것 같은 말이 당신이 나를 놓아줄 것만 같아서, 나를 포기할 것만 같아서 두려움에 찬다. 사랑의 확신을 얻었지만 어찌 이리도 슬픈 걸까. 아아, 다시금 속절없는 눈물로 시야가 가득 찬다. 애써 웃음소리를 내어보았다. 울음소리를 내었다간 당신도 나도 무너지게 되겠지. 자, 이제 당신에게 나의 선택을, 또 나의 진심을 고해볼까. 나의 사랑하는 사람. 다시는 없을 사랑아, 나의 모든 것. 나의 모든 것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알피 케니스 당신이야.) 응, 정말. 정말로 사랑해. 나의 사랑아. 영원한 시간이 반복되더라도, 우리의 시간선이 달라 서로 못보게 될 지라도 나는 언젠가, 어떻게 해서든지 기어코 너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자신할 수 있어. 이게 내 진심이자 전부이고 난, 알피 너를 위해서 내 모든 걸 바칠 수 있어. 알피가 나에게 해 준 것처럼. 알피의 모든 운명을 나에게로 바꿀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거고, 알피처럼 영원한 여름을 반복할지도 몰라. 이렇게 생각해보니까, 알피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것 같더라. 그러니까, 알피. (당신을 품에서 놓고 난간 쪽으로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갔을까. 그대로 당신을 바라보곤 말했다.) 나는 이제 더이상 알피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동안 너무나도 많이 아파왔잖아. 괴로웠잖아. 알피도, 나도. 우리의 여름은 너무 길었어. 사랑스러운 여름은 저물어 가고 있어. 그저, 모든 것을 녹일만큼 뜨거운 여름만이 남아있을 뿐이잖아. (눈물은 어느 새 그쳐있었다. 그리고 당신을 바라보며, 당신이 사랑했던 나의 활짝 웃는 미소를, 이 모든 것을 맑게 밝힐 수 있을 만큼 환한 미소를 당신에게 전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이 여름을 끝내볼까. 같이. 말이야. 같이 저 하늘을 배경으로, 우리의 다음 계절을 맞이하자.
난간에 가까이 섭니다. 그리고, 가만히 당신을 바라봅니다.
눈물 범벅으로 된 얼굴임에도, 한없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나는 나 하나 보고 여기까지 죽어온 당신이 너무도 가엾습니다.
하지만 내가 없는 계절에 당신 홀로 남기는 것도 내키지 않습니다.
죽고 죽어 제 몸을 헐어서 이 시간을 반복해오며 놓치 못한 당신에게 그리 고했던가요.
사랑스러웠던 여름이 지나, 온기가 있던 여름은...
내가 마지막을 고하고 나서야 열기만을 가진 뜨거운 여름으로 변합니다.
이 여름을, 당신과 함께 끝낼 때가 온 것 같아요.
흘러내리는 눈물을 차마 닦아내지 못하고, 이 계절의 온기를 가득 담아 어여쁘게도 웃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품을 끌어안기까지는 분명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겁니다.
알피를 꼭 안고, 끝없이 펼쳐진 하늘로 걸음을 옮깁니다.
하나가 된 우리는 여름을 닮아 푸른 아스팔트 위로 한순간 비상합니다.
아래를 향해 날아오르는 것에도 비상이란 이름을 주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여름을 닮은 이 계절에 당신이 애정이라 이름붙인 것처럼,
회전축과 종착지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세계도 그대로 부서져 멸망합니다.
이 잔혹한 계절에 어울리는 이기적인 결말입니다,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