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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완벽한 ■■의 여름
KPC. 아론 테일러
PC. 알피 케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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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무얼 하고 있었죠, 알피?
여름의 더위가 가득 차오른 머리는 절절 끓는 것 같고, 드문드문 내쉬는 날숨마저 공기에 열기를 더해갑니다.
무거운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올리면 눈을 찌르는 햇빛 아래 조각난 시야가 보석의 단면처럼 반짝입니다.
관찰력 판정
알피 케니스:
어쩐지 눈앞이 가물거립니다.
미친 듯이 끓어오르는 여름의 날씨 탓일까요.
아지랑이가 일렁입니다.
아니, 일렁이는 것은 아지랑이가 아닙니다.
세상이 녹아내리고, 꺼져 가는 생명의 단말마가 환영처럼 일렁입니다.
…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사라집니다.
꿈이었던 걸까요?
??? + 5
아론 테일러:알피. 무슨 일있어? 피곤해 보이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여태껏 더위에 취한 당신의 정신을 흔들어 깨웁니다.
아론이네요.
당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론은 당신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그래요, 분명 수업을 듣고 있었죠. 오늘도 평온한 하루입니다. 반복되는 학교생활은 조금 지루할 정도군요.
칠판 위를 분필이 미끄러지는 소리, 단조로운 선생님의 목소리.
여름 햇빛 아래서 보자니 교실을 부유하는 흐릿한 먼지마저도 황금빛으로 보입니다.
지루한 수업 시간은 평소와 다름없이 졸리기만 합니다.
그나마 여름방학까지 사흘 남았다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입니다.
다시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자면, 옆자리의 아론이 선생님 몰래 책상 아래로 접힌 종이를 건넵니다.
아무래도 이걸 보여 주려고 졸던 알피, 당신을 깨운 모양이에요.
펼쳐 볼까요?
알피 케니스:(더위에 가만히 눈만 깜빡…)
쪽지를 펼쳐 보면 짧은 글과 함께, 수족관 입장 티켓 한 장이 들어 있습니다.
[ 알피, 내일 같이 수족관에 가지 않을래? ]
쪽지에 관찰력 판정이 가능합니다.
알피 케니스:(수족관?)
노트에서 뜯어낸 듯한 작은 종잇조각입니다.
파란 펜으로 쓰인 글자는 누가 봐도 아론의 필적이네요.
수족관 티켓에도 관찰력 판정이 가능합니다.
알피 케니스:(좋아하는 사람의 것이란 이 작은 쪽지 하나로도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마법과도 같아서. 금세 더위는 잊어버리고 작게 미소 그리는 낯으로 티켓으로 시선이 향했다.)
화려한 물고기들이 그려진 그림이 자그마한 입장권의 대부분을 메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족관의 이름 부분은 아무리 읽으려 해도 읽을 수 없습니다.
글자들이 더운 공기 속으로 녹아내리는 것처럼 한데 뭉그러집니다.
이성 판정
알피 케니스:(어라. 나………… 더위 먹.었나? ;;)
이성 감소 없음.
다시 보니, '보라 수족관'이라는 이름이 제대로 보입니다.
역시 더위를 먹은 모양이에요.
그 사이, 아론이 목소리를 낮추어 작게 소곤거립니다.
아론 테일러:나도 테니스부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이 수족관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고기가 있대. 같이 보러 가자. 곧 문을 닫는다는대서... 한 번 쯤은 알피랑 가보고 싶었어. (그리 말하곤 당신을 흘긋 바라보다 웃는다.)
알피 케니스:정말? (따라 소근소근… 수족관을 갈 일이 자주 없었을 뿐더러, 네가 먼저 제안해준 것이었기에, 배로 더 들뜨는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물고이…,
아론 테일러:(두근두근. 답을 기다리면서 가만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의 시선이 티켓에 머물고, 마지막엔 나를 바라볼 때, 어떤 작은 일렁임이 일어난다. 숨길 수 없이 눈에 띄게 밝은 미소를 띄우게 된다.) 당연하지! 알피랑 가려고 티켓도 구해왔는걸. (선생님 흘긋, 들뜬 목소리를 낮춘다.) 무슨 물고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홍보 문구가 그랬으니 분명히 아름다울 거야. 아니라면... 슬프겠지만... (눈 도르륵.)
알피 케니스:(와아앗…!) 고마워, 아론… 나랑 같이 가려고 티켓을 직접 가져와줘서. (마찬가지로 주위 눈치를 보며 작은 말로 이어갔다. 두 손으로 쪽지와 티켓을 쥐었다. 구겨지지 않게끔 소중히. 그러다 네가 말 끝을 흐리며 눈을 굴리는 모습에 앗차. 고개를 바로 저었다.) 그, 그럴 리가…!
선생님:"케니스, 테일러. 지금 둘이서 수업 시간에 무슨 비밀 이야기 하는 거니?"
한참을 그렇게 떠들고 있으면, 수다에 정신 팔린 사이 다가온 선생님이 엄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내려다봅니다.
아론은 민망함에 어색한 표정으로 웃음을 짓습니다.
창문 밖으로 아스라하게 들리는 매미 소리와 운동장의 활기찬 소리 위로, 다른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겹쳐집니다.
-
는지럭대며 흘러가던 수업 시간도 어느새 끝나고, 익숙하다 못해 귀에 붙은 멜로디의 종소리가 하교 시간을 알립니다.
알피가 집에 돌아가는 방법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죠.
걸어서 집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 하면, 아론이 자전거를 끌며 쫄래쫄래 뒤를 따라옵니다.
그러고 보니 집이 같은 방향이었던 것도 같네요.
아론 테일러:오늘도 걸어서 가? 내가 태워줄게, 알피.
알피 케니스:(응? 눈 둥글게 뜨고서 올려다 제 옆에 쫄래쫄래 다가온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하강하여 자전거로 향하고 말문을 열었다.) 아, 자전거…
아론 테일러:더우니까 더 태워주고 싶은 거지! 걸어가면 그 햇볕을 전부... 느끼며 걸어야 하잖아. 아까도 수업 시간에 더위 먹어서 멍해 보이던데 걱정 돼. 어차피 가는 길이 비슷하기도 하고. (라고 말하다가 문득 시선이 닿은 당신의 얼굴에 대놓고 그려져 있는 뜻에 작게 웃음소리를 흘린다. 이런 면에선 참 못 숨기는 사람이다. 페달에 발을 올라고 안장에 앉아 자전거를 지지한 채 있는다.)
알피 케니스:(얼굴에 본심 그려진 것도 모르고 두 손 공손하게 모아 꼼지락 거렸다.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쓸모 없는 고민을 하는 듯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사랑이란 게 그런 거니까. 무엇이든,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지는 법이니까. 더위 때문인지 상기된 낯으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부탁할게. 고마워, 아론.
귀엽군요.
여튼,
아론과 함께 곧게 뻗은 길을 따라 나아갑니다.
앞을 보면 아론의 등.
기분 좋은 속도감과 함께, 산들바람이 햇살 아래 뽀얗게 드러난 이마를 쓰다듬고 지나갑니다.
이따금 전신주며 길가에 핀 꽃들이 옆을 스쳐 지나가고, 먼 곳의 풍경은 초록으로 빛나 눈이 시립니다.
새파란 하늘 위로 비행기 구름이 한 줄 하얗게 그어집니다.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곳을 향해 어디까지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행운 판정
알피 케니스:
아쉬우니 한 번 더 굴려봅시다.
다시 한 번 행운 판정
알피 케니스:(;; 다. 다시.)
오
덜컹!
작은 돌 위를 지나쳤는지 자전거가 순간 요동칩니다.
붙잡고 있던 아론의 몸에 힘이 들어가고, 당신의 손에도 자연스레 힘이 들어갑니다.
그와 동시에 당신과 같은 온도의 체온이 꼬옥 닿아옵니다.
어쩐지 뜨거운 온도는 이 여름을 함께 보내는 친근감인 것만 같습니다.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 체온만이 아니라 심장 박동도 전해질 듯 합니다.
알피와 아론, 둘이 그 사실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렇게, 한참을 페달을 밟던 발이 문득 멈춥니다.
이 근처에 작은 가게가 있었더랬죠.
가만 멈춰서면, 푸릇한 꽃과 풀의 향기가 은은하게 두 사람의 주변을 맴돕니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해바라기는 해를 따라 꼿꼿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시야가 닿는 가장자리까지 가득 펼쳐진 것 같은 해바라기의 평원입니다.
아론은, 아마 이 풍경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그 곁으로 가냘픈 나뭇가지가 드리웁니다.
찬란한 황금빛 꽃들 사이 드문드문 섞인 꽃잎이 새빨간 빛을 툭 떨굽니다.
빨간 꽃에 지능 판정
알피 케니스:(예쁘다…!)
다른 사진을 억지로 오려 붙인 것처럼 새빨간 꽃잎이 생경하게 시야 안에서 겉돕니다.
이거, 이 계절에 피어나는 꽃이던가요?
알피 케니스:(으응?)
아론 테일러:응? 알피 왜? (저 멀리서 해바라기를 구경하고 있다가 곁으로 총총 다가온다.)
알피 케니스:응. 저 꽃 말이야… (버릇처럼 네 옷깃 잡아당기는 듯 싶더니 의아함이 묻어나는 투로 새빨간 꽃을 검지로 가리켰다.)
아론 테일러:으응? (빤히...) 꽃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모르겠는데... (식재료라면 몰라도... 하고 작게 중얼거린다. 제법 그 쪽엔 빠삭한 편.) 내가 아는 여름 꽃들 중에서 붉은 색은 없었을 걸? (가만 꽃을 바라본다.) 근데, 그러고 보니 알피, 빨간색 좋아했지? 그 꽃, 꽤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
알피 케니스:으음. (대답을 들으면 뻗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꽃에 대해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둘 걸. 오늘부터 시작해야지. 속으로 또 하나의 작은 계획을 서운다. 질문에는 잠시 멈칫, 하는 듯 싶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빨간색도 좋아하지만…
아론 테일러:(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지 고개만 기울이다가 이내 옅게 웃는다.) 녹색은 학교 앞에 많이 있잖아. 지금은... 온통 나뭇가지의 잎들이 녹색이 예쁘더라. 가끔 운동하면서 보는데 햇살은 조금 힘들어도 녹읍들은 좋아. 그러고보니, 녹색 꽃은 한 번도 제대로 봐본 적이 없네. (곰곰.) 녹색 꽃이 있는지 나중에 찾아볼까? 아니면 떨어진 나뭇잎들을 엮어서... 잠시 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도 예쁠 것 같기도 해. 아무래도 희귀하면 이런 곳에서 보긴 힘들테니까. (빨간색 말고, 녹색을 좋아했던 건가. 이상하다... 하지만, 본인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알피 케니스:그치. 녹색은 나뭇잎 아니면 본 적이 없어서… (내내 네 옷깃만 꼭 쥔 상태다. 그것을 자각을 못 하는 건지.) 지금은 더우니까. (나뭇잎으로 시선이 향했다. 네 눈을 닮아 맑은 녹음 뽐내는 어여븐 빛깔의 잎을 바라보다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듯해 그것에 계속 시선을 두고 싶게끔 만들었다.)
아론 테일러:(제 옷깃을 쥔 작은 손 한 번 바라보다, 붉고 맑은 눈을 한 번 바라본다. 묘하게 두근거리는데, 이걸 어쩌면 좋지. 나도 모르게 잠시 시선을 피해 괜히 나무나 바라보았다. 잠시간 마음을 진정하고 있었던가.) 으, 응? (멍하니 있던 중에 들려온 목소리, 저를 빤히 올려다 보는 눈에 어쩔 줄 몰라한다. 겨우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던가. 어쩐지 휘말린 느낌이다.) 그러다가 찾으면 나중엔 식물원도 가볼까? 혹시 몰라. 그런 곳엔 있을지도...? (조금 횡설수설하지만, 기쁜 모양이다. 안 돼, 이러다가 들키겠어.) 근데... 알피. 좀 덥지? 저기 가서 시원한 거라도 먹고 갈까? (슬그머니 손가락으로 작은 구멍가게를 가리켰다. 시선이 저 쪽으로 가주길 내심... 빌어보는 눈치.)
알피 케니스:(네가 휘말렸다 느낀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식물원 가자는 이야기는 맑은 눈으로 올려다보며 선뜻 고개를 끄덕였고.)
아론 테일러:응! 음료수랑 뭐랑 다 사서 먹고 가자. 예전에 갔을 때도 꽤 괜찮았던 거로 기억해서. (눈 도르륵 굴리다가 고개를 젓는다. 그리곤 옅게 웃어보였다.) 오늘은 바쁘지 않아. 애초에 방학 때에 더 바빠지는 걸. 그래서~ 방학 전까진 좀 쉬어 가겠다고 테니스부에도 말해뒀어. 걱정하지 마. 그럼... 가볼까?
알피 케니스:(그제야 안도의 숨 내쉬었다. 더운 공기 중으로 섞여 흔적 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가로질러 먼저 걸음을 옮겼다.) 정말이지…? 아론 말만 믿을게.
참, 이상합니다. 기억이 섞이기라도 한 걸까요. 더위를 먹은 걸까요.
끈적하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팔다리를 감싸고는 축 늘어집니다.
바람을 맞으며 기껏 말랐던 땀이 또다시 목덜미를 적시는 감각이 불쾌합니다.
차라리 어디에라도 가는 게 기분이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타이밍이 좋았어요.
구멍가게는 이 길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자그마합니다.
비뚜름하니 달린 초라한 간판은 빛바래고 지워져 무어라 쓰여 있었는지 거의 알아볼 수 없지만,
그 아래의 유리문은 손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게 잘 닦여 있습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는 저런 조그마한 가게라도 소중한 피난처가 되어줄 수 있겠죠.
문을 열면, 자그마한 풍경이 흔들리며 맑게 울립니다.
눈앞이 아른거리는 더위에 한 줄기 푸른빛처럼 청량한 소리입니다.
털털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 덕분인지, 가게 안쪽은 바깥보다는 조금 시원합니다.
자질구레한 간식거리들이 [진열대] 위에 적당히 놓여 있고, 저쪽의 [가판대]에는 잡지며 신문이 몇 권 쌓여 있습니다.
한쪽에는 아이스크림이 든 [냉장고]도 보이네요.
알피 케니스:(에어컨이 아니라는 점에서 조금 아쉽지만, 맨 땅에 서서 직빵으로 햇빛 쬐는 것보다야 훨씬 나으니까. 한결 편안해진 낯으로 가게에 들어섰다. 간식을 쌓인 진열대로 시선이 향했다. 독서를 하며 먹을 마땅한 간식 같은 게 있을까, 하고.)
맥주 모양 사탕이며 아카시아 향이 나는 풍선껌, 라면을 닮은 매콤한 맛의 과자와 입에 물면 혀가 파래지는 사탕까지.
동전 몇 개로 살 수 있는 자질구레한 간식거리들입니다.
배를 채울 정도는 아니지만, 심심한 입은 달랠 수 있겠어요.
혹시 따로 먹고 싶은 게 있나요?
알피 케니스:(엄청 작은 간식들이 많구나… 물그럼 바라보다 굳이 다른 간식 찾지 않고 풍선껌 한 개를 골랐다.)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잡지나 신문들이 있습니다.
가판대에 자료조사 판정
알피 케니스:
찾는 사람이 없는지, 잡지 위에는 먼지가 엷게 쌓여 있네요.
환하게 웃고 있는 표지 모델의 색 바랜 미소가 애처롭습니다.
알피 케니스:(에긍… 괜히 짠하게 느껴진다.)
냉장고 앞엔 아론이 있습니다.
냉장고는 겨우 구색이나마 맞추려 가져다 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이스크림만은 꽤 여러 종류가 충실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론 테일러:너무 덥지... 아이스크림 먹자. 이러다가 더워서 쓰러져.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냉장고를 열고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 듭니다.
따라 손을 넣으면 싸늘한 냉기가 손목을 타고 오릅니다.
냉장고 안을 채우고 있는 알록달록한 포장지 위로 엷게 성에가 얹혀 있습니다.
알피, 당신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어떤 맛인가요?
미처 고르기도 전에, 아론이 덥석 당신의 손에 아이스크림을 하나 쥐여 줍니다.
알피 케니스:(깜빡.)
아론 테일러:알피 그거 좋아하지? 나 다 기억하고 있어.
그랬던가요?
아론이 건네는 아이스크림을 순순히 받아듭니다.
그 와중에 계산은 아론이 하네요. 같이 자전거 타준 게 고마워서, 라는 이유로요.
계산을 마치고, 포장을 벗겨 한입 물면…
끔찍한 맛입니다.
메론맛은 좋아하지 않아.
그런 기억이 어렴풋이 머릿속을 스쳐 갑니다.
하지만 이건… 메론의 맛조차 아닙니다.
인공적인 맛은 불쾌하게 입천장에 들러붙어 목구멍을 조르는 듯하고, 냉기는 입천장을 뚫을 듯 싸늘합니다.
당장 먹지 않으면 죽을 거야.
누군가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정체 모를 지독한 허기가 뱃속을 쥐어짜는데도, 딱 그만큼 강렬한 혐오감이 숨을 틀어막고 있어 아무것도 삼킬 수 없습니다.
알피, 이성 판정
알피 케니스:
이성 감소 없음.
아론 테일러:알피... 표정이 안 좋아. 맛이 이상해? 내 거 먹을래? 자, 아~ 해봐.
가까스로 시선을 들면, 걱정스러운 표정의 아론과 마주합니다.
아론은 조심스럽게 아이스크림을 내밀어봅니다.
입가로 내밀어진 아이스크림을 무심결에 한 입 베어 물자,
딸기 아이스크림 특유의 달짝지근한 맛과 더불어 시원한 냉기가 입안을 맴돕니다.
평범한 아이스크림입니다.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확인차 다시 먹어 보아도, 그저 좋아하지 않는 맛의 아이스크림일 뿐입니다.
아까 느낀 그 끔찍함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햇살에 방치되어 녹아내린 얼음처럼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는 것 외엔 알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한 손엔 아이스크림을 들고 가게 밖으로 나서면, 바깥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여름입니다.
??? +5
아론 테일러:아깐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았던 거야? (고개를 슬금 기울이며 당신의 아이스크림에 시선이 향한다.) 한 번 먹어봐도 돼? 이상한 건 아닌지... 확인해야겠어. (알피의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 노려본다...)
알피 케니스:… 응, 응? (깜빡.) 아, 바, 방금…
아론 테일러:... ... (그래도 안심은 못하는 건지 냅다 당신의 아이스크림에 입을 가져다 대곤 뇸, 한 입 먹어본다. 뭔가 상한 건가, 이상한 건가 싶었는데 익숙한 메론맛이다. 주인에게 가서 항의를 하려 했는데 실패다. 뭔가 오묘한 표정으로 갸웃거린다.) 마...음대로 먹어버려서 미안해. 그치만 걱정 됐는걸. (자기가 한 행동을 그제서야 자각하고 부끄러웠는지 눈을 데구르르 굴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냥 내 딸기맛 가져가서 먹을래? 메론맛은 내가 먹을게!
알피 케니스:(멀뚱히 아이스크림 한 입 빼앗긴 미어캣 얼굴 한다. 어라… 이거 간접………………)
아론 테일러:(어쩐지 당신의 얼굴이 붉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제 행동에 대한 자각을 다시 한 번 하고는 덩달아 얼굴이 붉어진다. 덥다. 역시, 날씨가 더운 모양이다. 둘 다 붉어졌으니 이거로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응. 아무리 그래도... 알피가 그런 표정 하는 거 거의 못 봤어서, 걱정이 많이 되네. (내민 아이스크림을 받아들고는 제 아이스크림 내민다. 붉어서 열이 도는 얼굴과는 다르게, 아이스크림이 녹는 것은 제법 느리다. 모른 척, 모르는 척 해본다.)
알피 케니스:(다 티가 났겠지. 적나라하게 붉어진 뺨은 이 여름 뜨끈한 기온에 서서히 녹아내리는, 지금 제 손에 쥐어진 빨간 아이스크림의 색과도 비슷할 거라고. 분명히 그럴 거라고. 네 얼굴도 따라 달아오른 것조차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론 테일러:(이대로 헤어지긴 아쉽지만... 여기서 계속 뭔갈 말하고 있다가는 전부 들켜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쉬워도, 어차피 돌아가는 길이었으니까. 먼저 한 걸음 내딛어볼까. 조금이라도 가는 시간을 늦추기 위해 한 손엔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론 천천히 자전거의 손잡이를 쥐고 끌기 시작한다.) 그럼... 이제 슬슬 다시 가볼까? 아까처럼 넘어질 뻔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걸어서 가자. (핑계다. 그것도 아주... 잘 꾸며낸.)
알피 케니스:아, 응. 좋아. (잠시 시선을 내리 깔고, 어쩌면 가장 익숙한 시야로 손에 쥔 딸기 아이스크림이 되어버린 낯을 식히고 고개를 들어보면, 핑계인 것도 모르고 순순히 승낙했다. 일리 있는 말이지… 좁은 보폭으로 한 걸음 먼저 내딛어 걷기 시작했다.)
어느새 해가 기울어, 오후의 공기가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듭니다.
자전거를 끌고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뒤를 따르는 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집니다.
매미 소리도 잦아들고, 두 사람분의 발소리와 이야기 소리에 잠겨 드는 골목길.
담벼락을 따라 주홍빛 능소화 덩굴이 탐스럽게 늘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두 사람은 갈림길에 도착합니다.
어느새 여기까지 왔나요.
아론의 집은 갈림길 저편이었죠. 이제는 집에 돌아갈 시간입니다.
아론 테일러:알피, 조심히 들어가! 들어가서 연락해줘.
알피 케니스:(핫. 어느새 다 먹은 막대기만 꼭 쥐고서 빈 손을 흔들었다.) 응, 연락할게. 조심히 들어가. 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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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깜빡.
눈을 떠 보니 교실 안입니다.
곧 수업이 시작할 것 같은 시간이네요.
알피 케니스:… … (깜빡.)
지능 판정이 있습니다.
알피 케니스:
참, 이상한 일이죠.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봅시다.
다시 한 번 지능 판정.
알피 케니스:(뭐지… 뭐지… 알피 케니스! 머리 굴려! 머리 굴리라고!)
학교라고요?
대체 언제 학교에 왔죠?
기억이 뚝뚝 끊어집니다.
엉성하게 얼기설기 이어붙인 필름을 돌려보는 듯한 기분입니다.
분명 아론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장면들이 영 이어지지 않습니다.
??? +5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든, 오늘도 지루할 정도로 평범한 학교생활의 시작입니다.
창틀 안에서 네모나게 조각난 하늘 위로 몸집 큰 뭉게구름이 느긋하게 흘러갑니다.
옆자리가 비어 있는 걸 보니 아론은 아직 등교하지 않은 모양이네요.
이러다 지각할 텐데. 아침조례를 시작하기 직전, 학생이 거의 들어찬 교실은 고요합니다.
...
잠깐,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지 않나요?
알피 케니스:(이렇게 조용할 시간이 아닌데…,)
부자연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입니다.
교실 안에 움직이는 존재라고는 당신 뿐입니다.
일시 정지된 동영상 화면처럼, 박제된 밀랍 인형처럼.
태엽을 감아줄 손을 기다리는 오르골 위의 먼지 쌓인 장식품처럼.
누군가는 얌전히 제 자리에 앉아 교과서를 꺼내고, 누군가는 금방이라도 수다를 떨 것처럼 입을 벌리고 있고,
누군가는 막 책상에서 내려오려는 것처럼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멈춰 있습니다.
그런 동급생들의 모습이 한순간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흩어집니다.
허공을 떠도는 단어들이 들을 이 없이 녹아 버립니다.
이성 판정
알피 케니스:
이성 1 감소
아론 테일러:으아... 지각이다...
숨 막힐 듯한 정적을 깨는 것은 익숙한 목소리입니다.
굳이 귀 기울여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아론이네요.
그가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타이밍 좋게도 아침 조례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교실 안은 다시 조금은 소란스럽고 왁자지껄한 평소의 모습 그대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당신만은 불쾌하게 들러붙은 위화감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습니다.
???+10
알피 케니스:… (뭐지.)
무어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미묘한 위화감입니다.
머리가 조금 아픈 것도 같네요.
알피 케니스:(머리 아파서 조금 뚱~한 표정 됨.)
지능 판정이 있습니다.
알피 케니스:
행운 2를 깎아 성공 판정으로 만듭니다.
아론의 등장과 교실 안이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타이밍이 일치하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요.
꼭 아론의 존재가 멈춰 있던 태엽을 다시 돌아가게 만든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이번엔 아슬아슬하게 지각은 아니지만, 다음부턴 더 일찍 나오도록 해. 알았지?
선생님의 잔소리에 적당히 대꾸한 아론은 넉살 좋게 웃습니다.
냉큼 당신의 옆자리에 앉아서 교과서를 꺼내는가 싶더니, 금세 수업이 시작됩니다.
방학까지 고작 이틀 남은 교실 안 분위기는 여전히 어수선하지만요.
방학을 앞두고 들뜬 학생들의 마음이 나비 날갯짓 같은 소곤거림에 실려 있는 것 같습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금세 옆자리에서도 아론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아론 테일러:알피, 오늘 약속 기억하고 있어? 수족관에 간다는 거. 나 벌써부터 정말 기대돼. (두근두근. 눈 반짝.)
알피 케니스:(뚱-한 얼굴이었다가, 네가 말을 걸어오면 다급하게 표정을 갈무리했다. 그치, 수족관에 가기로 했지.)
아론 테일러:(뚱한 얼굴이던 당신을 눈치채진 못했는지, 그저 즐거운 모양새이다. 곧 마주한 당신도 눈을 빛내고 있어서 작게 웃어보인다.) 그치? 선생님이 수업 좀만 더 빨리 끝내주셨으면 좋겠다. 어차피 곧 방학인데 왜 수업을 하시는 걸까... (조금... 처져있다...)
알피 케니스:(에긍… 축 처진 아론 안쓰럽게 바라봄.)
아론 테일러:(여전히... 추욱... 약간 얼굴에 먹구름이 끼어있는 것 같기도. 앞에 있는 선생님에게 집중하지 않고 빤히 당신을 보다가 무언가 슥슥 적는 걸 보고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해. (라고 작게 속닥였다.)
알피 케니스:(좋아해, 그 소리에 손이 움찔 떨렸다. 귀여운 동물을 좋아한다는 소리인데, 어째서인지 내가 부끄러워지는 것 같아 다급하게 손을 움직였다.) 그러면…,
아론 테일러:(손이 떨리는 건 보지 못했는지 그저 느릿하게 눈만 꿈뻑였을 뿐이다. 가만히 당신이 쥐고 있는 펜의 끝부분만 바라보다가 슬금, 당신을 바라보다를 반복했다. 그려진 작은 강아지를 건네 받고 빤히 보더니 옅게 미소 지었다.) 귀여워. (여전히 작은 목소리였지만 아까보단 활기가 느껴진다.) 이상하지 않아. 정말 귀여운 걸. 저번에... 예전에 길에서 본 아기 강아지도 생각나고. 정말 귀여웠는데. (곰곰...) 잠시만. (자기도 노트와 펜을 꺼내선 뭔가 끄적끄적 그리기 시작한다. 토끼... 같은 걸 그리는 듯 싶다가도 이게 아니다, 라는 걸 깨달았는지 다시 슬그머니 집어넣고 머쓱하게 웃는다.) 못 그리겠다! (그저... 웃고...)
알피 케니스:(눈치를 살금 본다. 자신과 그림을 오락가락하는 네 불안정한 시선을 보고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가, 활기가 느껴지는 작은 목소리에 힘 주어 펜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고서 바람같은 웃음을 흘렸다.) 다, 다행이다… (아론 생각나서 강아지 그렸다고는 말 못 함.)
아론 테일러:(그저... 아무런 의도 없이 번갈아봤을 뿐인데 부담을 줬나? 하는 생각에 눈을 도르륵 굴렸다. 그러다가도 당신이 웃음을 흘리면 시선은 그대로 당신에게 머문다. 왜 강아지를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강아지를 좋아하나? 어쨌든 귀여우니까 되었지!) 응? (얌전히 집어넣다가 조금 놀라선 당신을 본다.) ... ... 정말... 못해서... (부끄러움에 다시 눈을 굴린다.) 차...라리 바느질로 작은 자수를 두는 거라면 모를까... 그림은 참 안 따라주는데... (보고 싶다고 하면 보여 주고 싶지만, 잘 그린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계속 뒤로 빼고 만다.)
알피 케니스:(그 말에 조금 무의식적으로 아쉬운 기색을 내비춘다. 저렇게 곤란해 하는데, 굳이 얻어낼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고 있으면, 문득 스쳐지나간 자수 이야기를 떠올렸다.) 저, … 그러면 아론.
아론 테일러:(아쉬운 기색이라 이걸 어쩌지... 싶어서 쩔쩔매다가 자수 이야기에 차라리 그게 낫지, 하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다. 슬그머니 가방에 달아두었던, 직접 자수를 놓은 키링들을 보여준다. 소동물부터, 꽃까지 제법 다양하다.) 이거... 달고 다니던 거 전부 내가 한 거야. 최근에 동생 놀아주면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만들어서 달고 다니게 됐어. (어색하게 웃는다.) 조금, ... 부끄러워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다고 거짓말 하고 다녔지만. 내가 만든 거 맞아. (꽤나 섬세한 모양. 흘긋 당신의 반응을 살피는 듯 했다.)
알피 케니스:… (와아. 입 작게 벌리고 무음으로 감탄사를 뱉었다. 눈 반짝이며 자수를 바라보다가,) 부끄러워할 작품이 아닌 것 같은데… 멋지다, 아론…!
아론 테일러:정말? (말은 그리 했어도, 당신의 반응에 제법 기뻤는지 얼굴에 티가 난다. 부끄럽기도 하고, 좋기도 한 애매한 감정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마워... ... 그래도, 조금은... 약간 그런 게 있긴 하잖아. 남자애들 사이에선 막 드러내기 좀 그런 거. (은은하게 웃...는다.) 아, 하는 건... 지금은 좀 어려울지도...? 선생님도 계시고, 도구도 안 가지고 왔거든. 뭐 원하는 거 있어? 만들어서 줄게! (빵긋)
알피 케니스:(뭔지 알 것 같기도… 하지만 그냥 꽁쳐두기에는 아깝다고 연신 생각한다.) 나, 나… (음.)
아론 테일러:알피를 보면 생각나는 동물? (여러가지가 있었다. 토끼, 햄스터, 페럿... 온갖 작은 소동물이 생각났지만, 역시 토끼인가. 아까 나도 모르게 토끼를 그렸던 것도 그렇고.) 좋아! 내일 방학식이기도 하니까, 그 때 선물겸 해서 줄게. (그렇지만, 자수 하나로 끝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왕 선물하는 거, 양껏 해주고 싶어서. 벌써 뭔갈 구상하고 있는 건지 말이 없어졌다.)
알피 케니스:oO(어떤 동물일까…)(두근두근.)
아론과 이야기하다 보면 아뿔싸,
수다에 정신이 팔려 몰랐지만 어느새 수업도 절반쯤 지나가고 있네요. 지금이라도 열심히 수업을 들어야겠어요.
듣기 판정
알피 케니스: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던 당신은 이상한 점을 깨닫습니다.
고장 난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단조로이 이어지는 목소리는 이따금 노이즈가 섞이며 뭉개지고 끊어집니다.
더 이상한 일은, 당신을 뺀 다른 모든 학생들은 이 이변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 +5
당신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했든, 수업은 계속됩니다.
학교란 본래 그런 공간이니까요.
그 안에서 호흡하는 학생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든,
정해진 시간마다 종을 울리고 수업을 반복하는 것이 학교의 미덕 아니던가요.
그렇게 무슨 내용인지도 알 수 없는 지루한 목소리를 배경음 삼아 하교 종이 울릴 때까지 시간을 흘려내다 보면…
하나,
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쏴아아.
어둑한 구름을 배경으로, 소나기가 하늘 가득 쏟아집니다.
시원한 빗소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를 뚫고 학교 안까지 섞여듭니다.
아론은 곤란한 표정으로 자꾸만 창밖을 내다봅니다.
아론 테일러:나 우산 안 가져 왔는데... 어쩌지... 알피는 우산 가져 왔어?
알피, 당신은 우산을 가져왔나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치만 혹시 모르죠!
행운 판정
알피 케니스:
여름 날씨는 이렇게 변덕스럽다니까요.
그래도 하필이면 오늘, 그와 놀러 가기로 한 날에 소나기라니.
우산 같은 건 없는데, 곤란하게 됐네요.
현관에 서서 곤란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날씨가 우리의 사정에 맞춰 변해 줄 리 있나요.
어둑하게 가라앉아 낮게 깔린 구름 아래로, 빗방울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세로줄을 그으며 떨어져 내립니다.
손을 내밀어 보자 차가운 빗방울이 똑, 똑 떨어지며 손바닥을 간지럽힙니다.
멍하니 서 있으면, 아론이 당신의 손을 슬그머니 잡습니다.
아론 테일러:수족관까지 얼마 안 되는데, 그냥 뛰어갈까?
알피 케니스:상관이야 없지만… 나, 달리기 느린 편인데. …… 괜찮을까?
아론 테일러:그럼, 내가 알피 안고 갈까? (장난스럽게 말은 했지만, 충분히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고.)
알피 케니스:(딸꾹…)
아론 테일러:(그저 웃고만 있다. 행동으로 보여 주려는 건지 가벼이 당신을 훅 안아 들었다.) 가벼운데... 저녁이랑 다 잘 챙겨 먹는 거 맞지?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보려는 듯 당신의 눈 빤히 바라본다.)
알피 케니스:(꺄아악. 번쩍 들어올려짐.) 다, 당연하지…! 삼시세끼, 항상 챙겨 먹고 있는 걸…… (귀 잔뜩 빨개져서는. 입 꾹 다문다.)
아론 테일러:(빨개진 당신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본인도 얼굴이 붉어질 것만 같아서 슬금 시선을 피한다.) 그렇다면 다행이구. 혹시나 했지. 너무 가볍길래. 언제... 또 이렇게 안아 줬었더라... 어렸을 때 같은데. (기억을 더듬어보려 하다가 히죽 웃더니,) 그럼... 갈까? (당신이 비를 많이 맞을까 걱정 되었는지, 정자세로 바르게 안아 들었다.) 꽉 잡을 준비 되셧나요~
알피 케니스:아, 아론이 힘이 센 거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대꾸하더니, 고쳐 안길래 얌전히 목 끌어 안았다. 와아,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얼굴 아는 다른 사람이 보진 않겠지? 그럼 정말 부끄러울 것 같은데. 오만가지 생각 다 하면서.) 네, 네……!
찰박찰박,
아론은 급하게 발을 내딛으면서도, 당신이 혹시나 떨어질까봐 조심스러운 기색입니다.
아론의 발치 아래로 물방울이 튀어 오릅니다.
쏟아져 내리는 비가 시야를 메우고, 귓속에도 끊이지 않는 빗소리가 가득 들어찹니다.
눅눅하게 가라 앉아 서늘한 공기 때문일까요,
당신과 맞닿아 있는 아론의 몸이 유독 선명하게,
따스히 느껴집니다.
빗물에 속절 없이 머리칼이, 어깨가, 옷자락이 젖어 듭니다.
조금은 가쁘게 내쉬는 숨이 희게 흩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나 더운 여름인데도, 소나기가 내리는 지금 이 한 조각의 순간만은 빗물에 식어 서늘합니다.
이대로는 수족관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푹 젖은 물고기가 될 것 같아요.
아론은 커다란 나무 앞에서 잠시 멈춰 섭니다.
나무 아래에서 잠시 비를 그으면 푸릇한 풀과 꽃의 향기가 훅 끼쳐옵니다.
나뭇잎 사이로 이따금 빗방울이 새긴 하지만,
아무것도 없이 비 아래에 서 있는 것보단 훨씬 낫네요.
뺨을 지나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을 겨우 훔쳐냅니다.
무성히 핀 수국에도, 머리 위로 드리운 초록빛 나뭇잎도 물에 젖어 한 겹 색을 더한 가라앉은 빛깔입니다.
옆을 돌아보면, 마찬가지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아론이 머쓱하게 웃어 보입니다.
아론 테일러:빨리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비가 짓궂네... 이러다 알피 감기 걸리면 어떡하지...
아론 테일러:(의외로 비를 맞는 건 익숙한 건지 아무렇지 않게 빗물들을 털어내고 당신을 바라보며 웃는다. 푹 젖어버렸지만 당신과 있음에 나쁘지 않다는 듯. 당신은 아닌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힘들리가! 훈련할 때도 비슷한 거 많이 하는 걸. (맑은... 목소리로 말해본다.) 나, 사실은... 비 맞는 것도 꽤 좋아해서. 나쁘지 않아. 조금, 축축한 건 싫지만.
알피 케니스:비 맞는 걸 좋아하는구나. (새삼스럽게 깨달은 듯한 투였다. 어째 그런 점마저도 너다운 점이라, 작게 웃음이 흘렀다. 비웃음의 의미는 아니었다.)
아론 테일러:(당신이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조금 나이를 먹고 나서, 비오는 날에도 운동장을 돌며 훈련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비와 친해질 수 밖에 없었다고, 구태여 얘기를 안 한 탓도 있었다.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따가 수족관 가고 나서 집에 돌아가면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따뜻한 물도 많이 마셔야 해. 잘못하다가 정말 감기 걸릴지도 몰라. (당신의 손길을 슬 보고는 슬그머니 제 높이를 내려준다. 망설임 없이 자연스레 내려가는 것이, 아무래도 익숙한 걸까. 자각하고 나니 조금은 부끄러워져 귓가가 아주 살짝, 붉어졌다)
알피 케니스:응. 꼭 그럴게. 감기 걸려서, 아론을 곤란하게 만들면 안 되니까. (따뜻한 물을 보온병에 넣어 들고 다녀야 할까, 가만히 생각한다. 자각이 없는 듯 낮아진 높이에 한결 편한 낯으로 머리를 톡톡 털어주며 정리한다.)
아론 테일러:곤란.. 한 건 아니지만, 아마 하루 종일 걱정이 될 것 같아. 내가 비 그치기도 전에 먼저 가자고 하기도 했고. (조금 우물쭈물하며 눈을 데굴 굴린다. 그러면서도 당신의 손에 시선이 닿았다. 멍하니 있다가 눈을 꾹 감았다 떴다. 흐트러진 게 머리카락 뿐만 아닐텐데. 어쩌면... 마음까지도.) 으, 응. 고마워. 정말로 수건이라도 가져올 걸 그랬네. (괜히 말을 돌리며 웃어 보인다.) 비가 언제 쯤 그치려나... 소나기라 빨리 그칠 것 같긴 한데.
알피 케니스:(따라 옅게 웃었다. 빨갛게 된 네 귀는 못 본 것인지 태연하게 손을 내렸다. 손수건을 하필 오늘 집에 두고 오는 바람에…! 살짝 분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니, 그보다 접이식 우산을 마련해서 들고 다니는 게 더 나을지도.… 발코를 바닥에 툭툭.) 금방 그치는 거라면 다행이지만. (비 가만히 바라본다.)
그리 멍하니 나무 아래에서 비를 긋고 있으면 빗살이 조금씩 약해집니다.
역시 소나기였던 걸까요.
비는 내리기 시작했을 때만큼이나 빠르게 그 자락을 거두고,
갈라지는 구름 사이로 햇빛이 한 줄기 두 줄기 비쳐 들어옵니다.
똑, 똑.
나뭇잎 끝에 맺혀 떨어지는 물방울이 햇빛을 반사해 보석처럼 반짝입니다.
빗소리가 잦아든 세상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고 또 찬란하게 느껴집니다.
아론 테일러:아, 무지개다.
아론의 목소리에 따라 고개를 들면, 정말로 무지개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비에 한 번 씻겨 내려간 탓일까요, 유독 새파란 하늘 위로 일곱 빛깔 호선이 그려집니다.
무지개를 보면 운이 좋다고 하던데요.
한참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으면 정면에서 비쳐들어오는 햇빛에 조금 눈이 부십니다.
교육 판정
알피 케니스:
부신 눈을 몇 번 깜빡이니 눈가에 눈물이 고입니다.
눈물을 훔쳐내고 다시 올려다보면, 무지개는 어느새 흐려졌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어딘가 이상함을 느낀 당신과는 달리, 아론은 그저 좋은 모양입니다.
???+5
아론은 멍하니 있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다시 비가 내리기 전에 얼른 가자며 이끕니다.
알피 케니스:(의아해 하면서 끌려감…)
역시 바로 앞이였나봐요. 금세 수족관 근처입니다.
-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아론은 그토록 손꼽아 기대하던 수족관에 도착해 들뜬 모양입니다.
티켓을 보여 주고 안에 들어서면, 온통 푸름으로 물든 시야에 벌써부터 물그림자가 아른거리는 듯합니다.
수족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만,
문을 닫기 전에 한 번 와 보려는 아론 같은 사람들이 많았는지 내부는 나름대로 북적거립니다.
[열대어 전시관], [심해 전시관], 그리고 두 전시관을 거쳐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있는 [특별 전시관] 정도를 둘러볼 수 있겠네요.
아론 테일러:역시! 앞에 있는 것부터 천천히 돌아볼까?
알피 케니스:(고개 끄덕! 톳톳 걸음 옮긴다.) 좋아, 그럼… 열대어 전시관이었지.
아론 테일러:(마주 끄덕이고는 총총총 걸음을 함께 옮겼다. 열대어... 귀엽겠다.)
구름이 없다는 것을 빼면 하늘과 꼭 닮은 선명한 푸른빛을 배경으로 화려한 빛깔이 흩어집니다.
열대어 전시관이라는 이름답게,
온갖 색상의 물고기들이 산호 모양 조경물 사이를 노닐며 지느러미를 느지막이 팔랑거립니다.
환상적인 색채의 향연입니다.
눈을 어지럽히는 물고기들의 자태에 홀린 듯 시선을 빼앗기고 있으면,
나란히 수조 안을 구경하던 아론이 문득 묻습니다.
아론 테일러:그나저나 이제 조금만 있으면 방학이네. 알피는 방학 하면 뭘 할 거야?
알피 케니스:으응? 나… (곰곰.)
아론 테일러:... 정말 알피다운 계획이다. (옅게 웃었다.) 전부... 대부분 공부네. 해두면 좋겠지만... 어디 놀러가거나 하진 않을 거야? 이왕 여름방학인데도. (곰곰.) 나야, 아무래도 훈련 하지 않을까 싶어. 오히려 방학 때 더 열심히 하는 편이니까. 며칠은 그래도 쉬는 날을 주지만! 그거 말곤 따로 계획은 없는 것 같은데...
알피 케니스:… (멋쩍게 웃다가, 다시 골몰하는 낯이다. 놀러간다라.) 외출… 딱히, 계획은 없었는데. 여행에 관련해서는 아는 게 없는 문외한이라…… 누가 같이 가주지 않으면, 역시… 쭉 집에 있는 것 같아.
아론 테일러:아무래도, 여행이 막 가보자! 해서 가지는 게 아니지... 여러모로 고려해야 할 것도 많으니까. 다만, 이렇게 오래 쉬는 기간이 오니까 한 번쯤은 어떨까 해서. (잠시 말을 끊고 물고기에 시선을 두는 당신을 가만 바라보았다. 무얼 말하려 하는 걸까. 조금은 긴장한 상태로 있던 중, 당신의 입이 열리고 그 속에서 나온 말들은 나를 녹였다. 작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걸 어쩌지. 내가 먼저 같이 가자고 말하려 하고 있었는데... 당해버렸어. 난, 정말 좋지. 바다, 바다는 어때? 바다에 가자, 알피. ... 어쩐지, 알피랑 바다에 가본지는 오래 된 것 같아서.
이상합니다.
바다, 바다?
평온하기만 한 아론과는 달리,
'바다'라는 말을 들은 당신의 머릿속에 떠도는 것은 이상한 이미지들입니다.
수평선이 일그러지더니,
파도가 범람해 한 줌 남은 그나마 멀쩡한 땅까지 갉아먹습니다.
폐 속까지 들어차는 물에 비명마저 덧없이 익사하고, 모든 이들이 물에 잠겼기에 유언마저 남길 수 없는 세계.
붉다 못해 검게 물든 하늘을 가로질러
유성이 하나, 둘 떨어지며 수면 위로 끔찍한 충격파를 뿌립니다.
열이 절절 끓습니다.
매일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것이 불가능한 기적으로 여겨지는 세계.
어째서 이런 이미지들이 이토록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까요.
이토록 끔찍하지 않았더라면 진짜라고 믿어버릴 정도로.
??? +5
아론 테일러:괜찮아, 알피? (당신을 빤히 바라본다.) 갑자기 멍하니 서서... 표정이 안 좋았어. (걱정스러운지 근심이 가득하다.) 혹시, 아까 비를 맞아서 그런가... 괜찮은 거 맞아?
아론의 얼굴 뒤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물고기들이 평화로이 지느러미를 하느작거립니다.
계속 물고기를 구경하거나 아론과 이야기하면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는 게 낫겠어요.
그리 떠올리는 와중에도, 찝찝한 두통과 더불어 설명하기 힘든 혼란이 머릿속을 헤집습니다.
이상해요. 이건 분명 이상해요.
분명 원래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하지만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거죠? 알 수 없습니다.
알피 케니스:…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것들만 보이고, 머릿속을 유영한다. 이상하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이 이상한지 설명하기가 어려워 말을 꺼낼 수도 없다. 아론. 무지개는 원래 해를 등지고 뜨지 않아? 아론, 나 방금 세상이 멸망하는 듯한 환상을 떠올렸어. 아론… 여기 이상해. 머릿 속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빙빙 맴돌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비명이 익사하는 마냥. 그에 조용히 시선을 내리 깔았다가, 고개를 들어 고개를 얼른 저었다. 멋쩍게 웃었다.) 아, 아니야. 나 괜찮아! 잠시,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미안해.
아론 테일러:(감으로 알 수 있다. 당신이 지금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함께 해 온 시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걱정스러운 낯으로 당신을 이끌어 근처의 벤치로 갔다. 앉으라는 듯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던가.) 아프다면... 참지 말고 바로 말해줘. 난 무엇보다 알피가 아픈 게 가장 마음이 아프니까... (뜸.) 응. 바다에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알피랑 함께 간지 제법 오래 된 것 같아서, 간만에 어떨까 하고.
알피 케니스:물론, 아프면 무리하지 않을 테니까… 나, 정말 괜찮아. 봐. (어떻게 이… 씩씩함을 보여주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어정쩡하게 만세하는 모양으로 팔을 들었다. 손을 쥐락펴락하기도 하고, 한 번 흔들어보기도 하고. 그러다 천천히 내렸다. 나름의 표현 방식인데. 내리고 난 직후에 너무 애매한 표현일까 싶어 뒤늦게 걱정이 들었다.) 바, 바다… 그러니까.
아론 테일러:(제게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 당신의 모습을 본다. 정말로 날 안심시켜주고 하는 모양이구나. 가만 당신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손을 잡고, 또 꼬옥 껴안았다. 일정한 온기, 비슷한 온기. 난 당신이 말하는 것을 믿을 수 밖에 없다. 날 위해서 거짓을 그려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깊게 캐고 들어가면 누구라도 당황하지 않겠는가. 그저 그렇게 안고 있다가 당신을 놔주고 눈을 가만 빤히 바라보았다. 사람의 눈엔 감정이 드러나기 마련이었으니까. 확인은 이것으로 되었다. 애써 지은 미소가 아닌,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내보았다.) 방학의 첫 시작부터 가면... 조금 힘들겠지. 체력적으로나, 뭐로나. 서로 할 일들을 하다가 조금 질릴 때 쯤, 훌쩍 떠나보지 않을래? 잠깐 갔다오는 것도 좋지만 하룻밤 자고 오거나 좀 오래 갔다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어때?
알피 케니스:(가만히 안겨있는다. 고개 번쩍 들어서 신뢰의 눈빛 마구마구 보내다가, 네가 옅은 미소를 지으니 그제야 안심한 듯 웃었다. 이 모든 것을 전부, 네게 이야기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가만히 안겨있다 보면, 정말 전부 괜찮아지는 것 같아서.) … 응, 좋아. 좋은 생각이야. 꼭 그러자. 정말 즐거울 것 같아.
아론 테일러:내가 심심하지 않게 수영도 알려주고, 튜브랑 뭐랑 다 준비해서 갈게. 저녁에 맛있는 요리를 해먹어도 재밌겠다. (작지만 커다란 온기를 안은 채, 이대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조금 선을 넘어버린 것 같아 어색하게 당신을 안았던 것을 물린다. 조금은 얼굴이 붉어져선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을까.) 가자. (슬그머니 손도 내밀었다.)
-
심해 전시관은 긴 터널처럼 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수조의 아래를 터널을 통과해 지나가는 구조네요.
열대어 전시관보다 확연히 어둡습니다만, 걸어가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리 넓지 않은 길을 따라 걸어가면 아론의 얼굴도, 당신의 손도 모두 아스라한 푸른빛으로 물듭니다.
이따금 이름 모를 거대한 물고기들이 두 사람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느릿하게 헤엄쳐 갑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물고기가 점점이 빛을 뿌리는 모습은 밤하늘 같기도 합니다.
정말로 깊은 바닷속에 단둘이 가라앉아 버린 것처럼 사방이 고요합니다.
잠깐만요,
그렇게 북적거리던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갔죠?
꼭 이 세상에 당신과 아론, 단둘이 남겨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 그림자는커녕 목소리도 하나 들을 수 없습니다.
아,
저기 한 명이…
막 특별 전시관 쪽으로 들어서는 듯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나 안심하는 것도 잠시, 눈 앞에서 낯선 이의 뒷모습이
파삭,
희미한 소리를 내며 산산이 조각나 흩어집니다.
빈자리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깨끗합니다.
이성 판정
알피 케니스:
이성 감소 없음.
어떻게 할까요,
이 모든 이상을 혼자 끌어안고 앓을 건가요.
알피 케니스:… …
아론 테일러:그러게? 이상하게 여기만 조용하다... 심해어 쪽이라 무서울 까봐 사람들이 많이 안 올걸까? 그 왜... 그런 거 있잖아. 너무 어두운 물 속은 보기도 힘들어하는 사람들. (제 나름대로의 추측을 해봤는지 고개를 기울여본다. 딱히 이상하게 여기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 무엇도 모른다는 듯 맑은 얼굴.) 알피는 괜찮아? 좀 무서우면 빨리 가버려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알피 케니스:… (하지만 그렇다기엔, 사람이 너무 없는 것 같은데. 의아해 하면서도 별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맑은 올려 바라보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살짝 웃었다.) 으응. 그런가 봐. 나도… 조금 무서운 것 같기도 하네. 다른 곳으로, 가도 괜찮아?
심리학 판정이 있습니다.
알피 케니스:
아론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걸까요?
저 웃음이 어쩌면 가짜로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론 테일러:(이상함을 하나도 못 느낀 눈치이다. 그저 맞잡은 손을, 다시금 단단히 붙잡고 고개를 끄덕이며 당신을 이끌었을 뿐이지.) 그러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 알피는, 너무 혼자 많이 감당하려 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기도 해. (어쩐지 속상한 건지 당신을 슬 바라보다가 시선을 물렸다.)
알피 케니스:(아앗… 시선 물리는 것까지 눈에 담고나면 눈을 크게 떴다.) 미, 미안해. (땀 삐질.) 굳이, 좋지 않은 것들을 나누어주고 싶지는 않아서… …
아론 테일러:(당신이 쩔쩔매는 것 같아서 오히려 당황하고 만다. 눈이 커진 채로 당신을 바라보며 흔들리는 눈빛을 숨기지도 못하는 듯.) ... 그, 그건 이해하지만... 그.... 미안해. 무서워 하고 있다는 걸 빨리 알아차렸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 같아서. 그냥... 그, (눈을 도르륵 굴린다.) 괜히 미안해져서 그랬어. 미안해 하지 말아줘.
알피 케니스:(서로의 미안해가 맞물리기 시작하니 입을 꾹 다물었다. 미안해 하지 말라, 그 얘기에 "미안해"를 얘기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 조금 무섭긴 하지만, 괜찮아. 눈에 담는 게 지나치게 힘들 정도로 무서운 거 아니야. 아론이야말로 미안해 하지 않아도 괜찮아. (잡은 손 흔들흔들.)
아론 테일러:(기묘한, 어색한 분위기가 된 것 같아서 일부러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당신의 미소를 보고 웃어보였다. 그거라면 다행이고. 하고 말을 덧붙였다.) 가자. 이 뒤는 특별 전시관이었지. 어떤 물고기가 있을까? (기대가 되는 듯 눈을 잠시 빛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조금은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은 다음 전시관으로 향합니다.
기껏 수족관까지 놀러 왔는데 이런 분위기라니,
아론은 일부러라도 분위기를 띄워보려는 눈치입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알피?
-
여기인가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고기가 있다던 전시관이.
호화스러운 수식어와는 달리,
벽 한 면이 온통 푸르스름한 빛을 뿌리는 [수조]로 이루어졌을 뿐인 단순한 공간입니다.
사람은 여전히 아론과 알피 단 둘뿐입니다.
조용한 공간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울리고, 이따금 물이 일렁이는 소리만이 어렴풋이 들려옵니다.
온통 푸른 시야 속.
물빛에 물들어 마찬가지로 푸르스름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아론의 옆모습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그 물고기가 바로 여기에 있는 걸까요.
아론을 따라 거대한 수조에 다가서면,
시야 가득 들어오는 것은…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는 아론입니다.
알피, 이성 판정
알피 케니스:
이성 3 감소
이어서 관찰 판정
알피 케니스:
분명 수조에 비친 상인데, 아론은 머리칼 한 올 젖지 않은 모습입니다.
당신이 아는 것보다 조금 길게 자란 머리칼은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장치들이 아론의 몸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꼭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의 광경 같아요.
하지만, 아론은 바로 여기에 있는데.
그럼 이 수조는 대체 어디의 상을 비춰내고 있는 거죠?
곁에 있는 아론이 정말 진짜라고 장담할 수 있나요?
알피, 당신은요?
당신에게 자꾸만 일어나던 이상한 일.
눈앞에 아른거리는 생경한 세계의 장면. 어느 쪽이 진실인지 확신할 수 있겠어요?
??? +10
머릿속을 쉴 새 없이 달아오르게 만드는 의문들에 미처 답을 내리기도 전에,
발밑이 무너집니다.
수족관이 붕괴하기라도 하는 걸까요?
아뇨,
무너지는 건 이 세상 그 자체입니다.
세상이 조각나 흩어지고,
당신은 발밑의 갈라진 틈새로 떨어집니다.
이렇게 보니 꼭 초라한 무대 장치가 무너지는 꼴을 보는 것 같아요.
관찰력 판정
알피 케니스:
시야의 끝에서 무언가 보인 것 같은데.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다시 관찰력 판정
알피 케니스:
아론 역시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입니다.
혼란 속에 어떤 단서도 없이 버려진 것은 같은 처지인 모양입니다.
당신을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손을 마주 잡기엔 당신을 삼키는 끝 모를 어둠이 너무나 큽니다.
??? + 5
붙잡을 틈도 없이
아론이,
물빛이,
이 세계가
까마득하게 멀어집니다.
-
온몸을 휘감던 부유와도 비슷한 추락의 감각이 서서히 흐릿해져 갑니다.
깜빡, 깜빡.
이제는 익숙해진 눈 깜빡임으로 시야를 닦아내면,
주변은 당신과 아론이 한 학기 동안 시간을 보낸 교실입니다.
창문 밖으로는 새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는 걸 보니, 평소라면 분명 수업이 한창인 시간일 텐데.
교실 안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반쯤 열린 창문에서 바람이 흘러들어,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커튼이 나부낍니다.
교실은 텅 비어서…
아,
아닙니다.
아론이 있네요.
자기 자리에서 책상에 엎드려 잠든 아론의 모습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온합니다.
꼭 [아론]을 위해 마련된 무대에 끼어든 불청객이 된 것 같아요.
[당신의 자리], [창문], [문]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알피 케니스:… (깜빡.)
하얀 교복 셔츠로 감싸인 어깨가 느린 호흡의 리듬에 맞추어 미세하게 오르내립니다.
눈동자를 가리며 내리깐 속눈썹이 햇살을 받아 미세하게 반짝입니다.
겉보기엔 평온히 잠든 것 같지만,
도통 일어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실 끊어진 인형처럼, 옛 추억 속 멈추어 버린 사진처럼.
아론을 깨우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다른 곳부터 살펴보는 게 좋겠어요.
알피 케니스:(의아….)
익숙한 당신의 깔끔한 책상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서 두근거리는 새 학기의 봄 공기를 들이마시고,
창 너머에서 들려오는 여름의 매미 소리에 밖을 내다보았던 순간들이 기억나나요?
관찰력 판정
알피 케니스:
핸드아웃이 공개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죽기 전 필사적으로 쥐어짠 마지막 유언 같은 처절한 내용입니다.
일부 글자는 번졌는지 잘 보이지 않네요.
그런데, 쪽지를 보고 있으면 무언가 이상합니다.
이건 분명…
알피,
당신의 글씨체입니다.
이성 판정
알피 케니스:
이성 감소 없음.
그리고 책상의 한구석에는 자질구레한 낙서가 있습니다.
알피
아론의 글씨체로 당신의 이름을 끼적인 낙서는 긁히고 빛이 바래 있습니다.
알피 케니스:… 왜 내 글씨가, 이거… 내가 쓴 건가? (쪽지를 한참 바라보고, 아론의 낙서도 잠시 바라보았다. 아직 무엇인가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쪽지를 제 손에 꽉 쥐고 문을 향했다.)
싸구려 물빛 페인트가 칠해진 나무 문입니다.
관찰력 판정
알피 케니스:
문을 살펴보다 시선을 들면, 문 위에서 초록빛으로 깜빡이는 비상구 표시가 눈에 띕니다.
본래 저런 건 없었는데 말예요.
알피 케니스:…?
미닫이문은 부드럽게 열립니다.
하지만, 문 너머로 펼쳐지는 것은…
익숙하게 쭉 뻗은 풍경 대신, 온통 새까만 암흑만이 들어차 있습니다.
어디로 통하는 걸까요?
저 끝에서 희미한 빛이 비쳐오는 것도 같습니다.
망망대해에서 동그마니 떠오른 등대의 불빛 같습니다.
알피 케니스:(창문 쪽 흘끔.) …
당신은 어디로 향하나요?
하나의 등대를 보고 나아가나요?
아니면, 그저 암흑 속을 개척해 나가나요.
알피 케니스:(뭔가 목표하는 거라도 있어야지… 싶어서. 등대 향해 걸어가요.)
희미한 빛은 저 멀리서 유아등처럼 아물거립니다.
그 약한 빛을 길잡이 삼아 발밑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을 얼마나 걸었을까,
보일 듯 말 듯 흐리던 빛이 마침내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집니다.
그때,
또다시 갑작스러운 부유감이 온 감각을 잠식합니다.
-
눈을 떠 보면, 당신은 어딘지 모를 어둑한 곳에 누워 있습니다.
작지만 낮게 윙윙대는 기계음이 끊임없이 귀를 자극합니다.
몸을 둘러싼 기묘한 기계에서 뻗어나온 선이 온 몸에, 특히 머리에 집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팔을 들어 올리거나 상체를 일으키면 몸을 얽매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던 선들은 쉽게 떨어집니다.
... 이 기묘한 기계가 어쩐지 익숙한 형태입니다.
어쩐지 몸이 무겁습니다.
열병을 앓고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아뇨,
그것만으로는 이 감각을 설명하기 부족합니다.
이것은 꼭 다른 사람의 거죽을 뒤집어쓴 듯한, 몸과 정신이 맞물리지 않는 감각.
손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이상할 정도로 낯설기만 합니다.
여전히 정체 모를 기계의 금속질 표면에 당신의 얼굴이 비쳐 보입니다.
당신이 움직이는 대로 고개를 돌리고,
당신과 꼭 같은 표정을 짓는 그 얼굴은
아론의 얼굴입니다.
알피, 이성 판정
알피 케니스:
이성 4 감소
아론의 몸이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어쩐지 몸이 무겁습니다.
열병을 앓고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당신은 아론의 몸을 빌려 깨어났습니다.
맞잡았던 손, 함께 내디뎠던 발.
그 모든 것이 이제 오로지 당신의 의사에 따라 움직입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놀란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르고 주변을 둘러보면,
어둑하고 삭막한, 얼핏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실내입니다.
당신이 깨어난 자리에는 실험대 같은 모양의 정체불명의 기계가 여전히 흐릿한 기계음을 뿌리고,
그로부터 몇 발짝 거리의 책상 위에는 내용을 알 수 없는 서류 더미와 더불어
온갖 [사진]이 한가득 쌓여 있습니다.
그 외에도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출처 불명의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네요.
어수선한 방 한 켠, 구석진 곳에는 어디로 통하는지 모를 커다란 [철문]이 있습니다.
알피 케니스:(진짜… 진심으로 너무 당황스러워서 잠시 굳었다.)
다양한 시간대, 다양한 장소를 찍은 사진들입니다.
그런데도 사진들은 한결같이 똑같은 빛깔을 띠고 있습니다.
멸망의 빛깔이요.
건물은 무너지고,
땅은 형체를 잃고,
분명 평화로운 일상을 누렸을 사람들은 공포와 절망을 얼굴에 새긴 채
폐허에 짓눌리고 널브러져 있습니다.
제대로 형상조차 갖추지 못한 붉은 살덩이가 본래 무엇이었는지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조작한 사진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모든 장면이 지나치게 생생합니다.
부정할 수 없이 선명한 멸망의 증거에 공포감이 밀려옵니다.
대체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 버린 걸까요?
관찰력 판정
알피 케니스:
본 적 없는 얼굴에서 익숙함이 느껴집니다.
분명 기억에 없는 얼굴인데, 어째서일까요.
사진을 전부 살펴보고 나면, 사진 더미 사이에서 쪽지가 하나 떨어집니다.
쪽지를 읽어보나요?
알피 케니스:……? (이해 가지 않는 낯으로 한참을 그 사진을 들여다… 보다가,)
읽기 힘든 글씨로
[ 여름의 끝 ]
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알피 케니스:(… 대체? 쪽지는 다시 사진 더미 위에 올려둔다. 계속 바라보아도 떠오르는 것도 없고 그닥 유쾌하진 않은 탓에, 잡동사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린아이에게 어울릴 법한 곰인형부터 아주 비쌀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고성능 컴퓨터의 잔해까지.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잡다한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습니다.
달리 특별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알피 케니스:(땀땀. 그렇다면… 철문을 향했다.)
문을 살피면 읽을 수 없는 글자 아래 작은 글씨로 '잔해 보존실'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문자를 입력하는 키패드로 잠겨 있습니다.
알피 케니스:… (음.)
철컥.
하고 문이 열립니다.
알피 케니스:(허억…………… 맞았다.)
문을 밀어보면, 묵직한 저항감과 함께 문이 열립니다.
문틈 사이로 파르스름한 불빛이 이따금 지직거리며 불규칙하게 깜빡이고,
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냉기가 새어 나옵니다.
싸늘한 공기가 고여 있는 안쪽은 꼭 냉동고 안 같아요.
순식간에 계절을 뛰어넘은 것처럼 내쉰 숨이 새하얗게 얼어붙습니다.
넓지 않은 공간에는 설명이 쓰인 플레이트가 붙어 있는 [유리관]이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알피 케니스:(불안한 마음으로… 유리관 들여다 본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당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꽁꽁 얼어붙어 있는 알피,
당신의 시체입니다.
이성 판정
알피 케니스:
이성 1 감소.
생명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차게 식은 얼굴.
채 아물지 못하고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끔찍한 상처를 보아하니
이 자는 두 번 다시 여름을 맞지 못할 것임이 명확합니다.
이미 보았잖아요.
사진 속에 적나라하게 담겨 있던 끔찍한 멸망에서 딩신이라는,
한 개인에 불과한 존재 역시 자유롭지 못했음은 어렵잖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 이 광경을 눈에 담고 있는 당신,
당신은 대체 누구죠?
??? + 20
요 며칠간 꾸준히 머릿속을 맴돌던,
말로 설명할 수 없어 그저 물음표로만 대체되던 기묘한 감각이 드디어 눈을 뜹니다.
기억과 시야가 끊임없이 어긋나는 감각.
이 세계는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님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뚜렷한 위화감.
???이 위화감임이 밝혀졌습니다.
알피, 위화감 판정.
알피 케니스:
당신은 이 세상의 진실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이미 한참 전에 멸망했습니다.
이 세상을 침범한 거대한 재난은 당신의 일상마저 부수어 버렸습니다.
그 멸망에 휩쓸려 버린 자신의 죽음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멸망 앞에 체념하고 고개를 떨구었던가요.
아니면 공포와 고통에 마지막까지 울부짖다 숨을 거두었던가요.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던 그 평온한 여름의 세계는 단지 허상에 불과했습니다.
현실은 여기, 멸망한 세상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가요,
무엇이 되었든 세계가 멸망 했다는 것은 바뀌지 않습니다.
문득 시선이 닿은 당신의 시체 옆에 있는 플레이트가 눈에 띕니다.
유리관에 붙은 재질을 알 수 없는 판에는 무어라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그것들을 읽어보나요?
알피 케니스:(새삼스럽게 깨달은 것들이 있다. 그동안 외면하고자 했던 것들이 모두 진실이었으며, 바라보고자 했던 것들이 전부 가짜였음을. 그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이 진실에 잠시 멍을 때리고 있었나. 눈을 한 번 깜빡. 시선이 닿은 플레이트의 내용을 눈으로 읽었다.)
핸드아웃이 공개 되었습니다.
여름의 한때를 보내면서도 끊임없이 느껴졌던 위화감의 정체를 드디어 깨달은 기분은 어떤가요?
충격적인가요?
아니면, 마지막 퍼즐이 드디어 맞춰진 기분이 드나요?
당신이 어떤 기분이든, 플레이트를 다 읽으면 갑자기 지직거리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목소리의 정체를 확인할 틈도 없이, 뒷목의 솜털이 주뼛 솟아오르며 소름이 끼칩니다.
어딘가로 숨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은밀행동 판정
알피 케니스:
당신은 소리 죽여 철문 밖으로 빠져나와,
정체불명의 소리를 내는 존재에게 들키지 않고 책상 밑에 몸을 웅크립니다.
그러나,
"어디로 갔지?"
날카롭게 지직거리는 목소리가 고막을 찢습니다.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자신의 것처럼 움직여 주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 이상한 무언가가 당신에게 침투하려 합니다.
정신이 아파옵니다.
정신력 대항 판정을 합니다.
???:
알피 케니스:
당신은 무력하게 정신을 잃어감을 느낌입니다.
그 아득함 사이로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옵니다.
???:어차피 곧 종료될 실험이다.
저항하려 해도 부질없이, 익숙한 부유감이 또다시 몸을 감쌉니다.
다시 그 허망한 세계로 돌아가는 걸까요.
꿈과도 같은, 신기루에 불과한 여름으로.
-
눈을 뜨면 다시 우리의 여름입니다.
하얀 바닥 위로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입니다.
귓가에는 빗소리가 들리고 있는데도,
옷자락은 조금도 젖어들지 않습니다.
난간 너머로 끝도 없이 펼쳐진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눈동자에 물이 배일 듯한 한결같은 푸른빛입니다.
햇빛이 빗방울에 산란되어 푸른 캔버스 위로 작은 무지개를 그려냅니다.
흙 하나 없었을 옥상 위에 해바라기와 수국과 동백이 한데 섞여 흐드러지도록 피어 있습니다.
정말로 황홀한 꿈 속 풍경 같은 옥상의 한가운데에 아론이 홀로 서 있습니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더라면, 참 멋진 모습이라고 이야기할 수라도 있었을 텐데요.
아론 테일러:알피.
적막을 깨고, 아론은 명료한 발음으로 당신의 이름을 입에 담습니다.
아직 농익지 않은 앳된 학생의 목소리가 당신을 부릅니다.
목소리와는 달리, 그 눈에는 혼란이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얼마 전의 당신과 똑같이,
평범한 일상의 광경과 밀려들어오는 기억 사이에서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모습입니다.
꿈이 끝나면 꿈속의 등장인물은 비 온 뒤의 무지개처럼 헛되이 사라질 뿐이죠.
누군가는 어차피 멸망한 세계라면 차라리 눈을 감고 꿈에 빠져 있는 게 더 행복할 거라고 말할지도 모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럼에도 진실이 갖는 가치를 주장할 겁니다.
확실한 것은, 입을 여는 순간 돌이킬 수 없어질 거라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어떤 결말을 원하나요.
자신이 사라지더라도 아론에게 진실을 알려 줄 건가요?
아니면, 이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평온할 수 있도록 도울 건가요.
그조차 아니라면…
결정은 당신의 몫입니다, 알피.
알피 케니스:(그런 날을 꿈 꿔온 적이 있다. 어느 따뜻한 봄 날에는 너와 함께 꽃 구경을 가고, 어느 더운 여름 날에는 너와 함께 바다에 가고, 어느 선선한 가을 날에는 너와 함께 낙엽을 바라보고, 어느 추운 겨울에는 너와 함께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그 흔하고 평범한 일상의 날들을.)
알피 케니스:아론은 강하니까. (그제야 눈을 접어 환히 웃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론은, 강하니가. 혼자서도…
알피 케니스:…… 그리고. 같이 바다에 가는 거야. 정말 즐겁겠다. 그치.
아론 테일러:(평범한 일상을 바랐다. 태양빛이 밝게 뜨겁게 내리 쬐는 볕 아래서 당신과 손을 잡고 한여름의 종일을 보내는 일상을, 파아란 바다에서 함께 잠겨 푸름을 즐기고 행복하게 웃는 그런 일상을. 여름을 넘어 가을, 겨울 봄. 나의 사계절엔 언제나 당신이 존재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통 속의 쥐가 된 것처럼 나는 행복만을 바랐을 뿐이다. 당신이 무언가 이상하게 아파보이던 지난 날을 넘어, 꿈 속에서 의식이 흐릿해져 갔을 때 나는 위화감과 가까워졌다. 훌쩍 다가온 절망을 애써 가리고 가려보았지만, 나는 은연 중에 알 수 있었다. 이 곳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그 잘못 속에는 내가 끼어있을 터라고. 무력함은 곧 실제가 되어 나를 덮쳤다.)
아론 테일러:정말, 너무하다. 알피.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해버리면... 난, 난 아무 말도 못하게 될 거라는 걸 모르진 않았잖아.
알피 케니스:… (너와 내가 공존하는 이 여름이 언제 다시 올까.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고. 좋은 아침, 이라며 함께 등교를 하고. 지루하다,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건네기도 하고. 날이 덥다며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날이. 집에 들어갈 때면 잘가, 하며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 내일 보자, 그 다음 날을 기약할 수 있는 말을 건네는 말을 입에 담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아론 테일러:(당신을 떠나보낼 준비를 할 시간조차도 없었다. 훌쩍 다가와버린 모든 것들이 전부 엉망이었다. 여름의 뜨거운 온도 아래 머리가 어지러워져 쓰러지기 직전이 되는 것처럼, 모든 게 혼란스러워 받아들이질 못해 거부감이 마구 든다. 바로 어제, 엊그제만 해도 행복했는데. ... 아, 아니. 이것도 나의 생각이었을 뿐일테다. 당신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이 어긋난 세상 속에서의 일상은 이제 더이상 이어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만남을 바라며 눈을 감을 수 밖에 없는가. 어느 쪽이든, 전부 잔인하다. 현실은 얼마나 더 잔인할까. 꿈에서 깨고 난 세계는 얼마나 더 잔인할까. 하지만 나는 웃을 수밖에 없다. 약속이 있으니까다.)
-
아론은 이 세계의 진실을 알아버렸습니다.
아무리 허상에 머물러 있고 싶어도,
한 번 깨달아 버린 진실은 돌이킬 수 없이 세상을 바꾸는 법이죠.
우리의 여름은 이곳에서 종막을 맞이합니다.
여름방학은 영영 오지 않겠네요.
아론과 이야기 했던 방학에 대한 기대도,
여름이 되면 함께 바다에 가자는 약속 모두 이루어질 수 없겠어요.
아니, 혹시 모르나요. 다음이 있을지.
아무도 모를 이야기 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끝인 줄도 모르고 눈을 감는 꿈보단
예리한 진실을 선택했습니다.
그 진실의 결과, 다다르게 되는 것이 이미 멸망한 세상과 당신이라는 존재의 끝이라 할지라도요.
때로 진실은 그만한 가치를 하는 법이니까요.
어디까지고 펼쳐져 있을 것만 같던 짙푸른 하늘이 조각납니다.
한가득 피어 있던 색색의 꽃잎이 흩어져 하늘이 갈라진 틈새로 빠져듭니다.
배경음처럼 잔잔히 깔리던 빗소리는 이제 무너진 세상이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에 가깝습니다.
우리의 추억이,
청춘이,
여름이 부서집니다.
반복되는 일상에도 끝은 존재하듯,
아이도 언젠가는 어른이 되어야 하듯.
이제는 꿈에서 깨어날 시간입니다, 아론.
여름의 신기루에서 깨어나,
멸망한 세상을 바라보게 될 아론은 과연 당신을 원망할까요?
아니면 꿈과 함께 끝났을 의식을 이어 주었다는 데 감사할까요?
그가 어떤 표정을 짓든, 당신은 영영 알 수 없을 겁니다.
꿈이 끝나면 꿈속의 등장인물도 함께 사라져야 할 테니까요.
스러지는 세상 속에서,
당신은 짙푸른 하늘로 떨어져
끝없이,
끝없이 잠겨 들어갑니다.
부디 멸망한 현실 속 아론에게도 다음 여름이 오길.
.
.
.
아론 생존? 알피 로스트.
의식 속의 당신은 완전히 소실 됩니다.
END 1. 가장 완벽한 멸망의 여름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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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치: | 70/35/14 |
굴림: | 5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뭐지? 종이 펼쳐봅니다.)

(눈 작게… 빤짝거림.)
기준치: | 70/35/14 |
굴림: | 4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70/35/14 |
굴림: | 4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70/35/14 |
굴림: | 1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잠시 상상함.)
(티켓 봄.)
(아론 봄.)
(두근두근.) 같이 가도 돼…?


(핫. 너무 큰 소리를 냈나. 입을 슬적 가리더니. 헤헤… 멋쩍게 웃었다.) 분명 아름다울 거야. 아론.


더, 더운데… 그래도 괜찮아? 나, 혼자 걸어가도 무리는 없구… (태워줬으면 좋겠다. < 얼굴에 그려져 있음.)

같이 갈래?

(얌전히 뒷자리에 착석했다!)

기준치: | 45/22/9 |
굴림: | 60 |
판정결과: | 실패 |

기준치: | 45/22/9 |
굴림: | 2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기준치: | 70/35/14 |
굴림: | 86 |
판정결과: | 실패 |

(의아…)
(가만히 생각하는 듯 싶다가.) 아론, 아론.


여름에도 피는 꽃이였나…?


녹색이었으면 더 좋았을걸. 아쉽다. (실없이 웃었다.) 그래도… 응, 예뻐. 마음에 들어. 꽃이니까. 꽃은 팔방미인이라서 무슨 색이든 잘 어울리잖아.


… 저, 아론. 녹색 꽃은 내가 꼭 찾아볼게…! (의지가 가득한 두 눈이에요. 그리 말하며 올려다 보았다.)


구멍가게? (손가락 끝을 타고 시선이 구멍가게로 향한다. 깜빡. 그제야 네 옷깃 쥔 손을 천천히 놓았다. 쥐고 놀은 자리에 구김이 눈에 띄지만, 시선이 가게로 향해 있어 알지 못하는 눈치다.) 구멍 가게…
아이스크림…! (눈 반짝.) 응, 가자.
… (핫. 뒤늦게 아차. 고개 돌려 바라보며 말했다.) 저, 혹시… 아론, 바쁜 거면 그냥 가도 괜찮구.


응, 가자. (총총 걸음으로 구멍가게 향해요.)


(손에 껌을 쥔 이후 시선은 자연스럽게 가판대를 향했다.)

기준치: | 65/32/13 |
굴림: | 81 |
판정결과: | 실패 |

(본 목적인 아이스크림을 고르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고개 빼꼼…)




기준치: | 70/35/14 |
굴림: | 1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더위 먹어서 그런 거겠지?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 쥐고 있는 막대기 위 얹어진 메론 아이스크림을 바라보았다. 싫어하는 맛이지만, 그래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니까. 고개를 저었다. 웃었다.) 아이스크림은 괜찮아…! 내가 더위를 먹어서, … 잠깐 멍을 때리느라.… 헤헤.


(간접……… 까지 생각하고 얼굴이 빨개졌다. 더위, 더위 때문이면 좋겠는데. 동공지진 일으키다가 시선을 비스듬히 사선으로 내리 깐다.) 아, … 아이스크림, 먹은 것 때문이라면…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래도 괜찮아…? (일단 내밀었다.)

당연하지. 난 뭐든 좋아해!

그, 그럼 다행이야… (딸기 아이스크림 서둘러 베어 물었다. 좋아하는 맛이 났다.)





수업 시작……
… … 응?
나, 학교에 언제 왔지?

기준치: | 70/35/14 |
굴림: | 95 |
판정결과: | 실패 |

기준치: | 70/35/14 |
굴림: | 7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의아함을 갖고 주위를 둘러본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7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기준치: | 70/35/14 |
굴림: | 72 |
판정결과: | 실패 |
(* 행운 2 깎을게요!)


응, 나도… (그러니 이상한 현상은 잠시 잊어두기로 했다. 같이 눈을 반짝였다.) 기대 돼, 엄청…! (소근)


… (뭔가 생각이 난듯 노트를 하나 꺼냈다. 스프링 노트는 뜯기 쉬우니까. 조심조심 한 페이지를 뜯어내어 그 위에 펜으로 무언가 슥슥…)
저… 혹시 귀여운 동물 좋아해?


(어느새 다 그린 작은 강아지를 건넸다. 헤헤, 멋쩍게 웃었다.)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없어서 조금 이상하지만…, 보고 힘, 내라구.


(집어넣는 행동에는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런 말도 안 하는 듯 싶다가.) … …
저… 나중에, 아론이 그린 귀여운 동물도 보고 싶어. (소근.)


자수는 괜찮은 거야…?


하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아…? 어, 어려우면… (들떠있다가 또 뒤늦게, 살짝 시무룩해졌다.) 안 해도 괜찮아. 그냥, 내 욕심일 뿐이니까…


… … (음.…)
나… 보면 생각나는 동물?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없어진 널 바라보다가, 수업에 집중하고자 고개를 돌렸다. 찝찝함은 어디가고 좋은 기분이다.)

기준치: | 65/32/13 |
굴림: | 5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43/21/8 |
굴림: | 57 |
판정결과: | 실패 |




(눈 크게 뜨고 깜빡. 깜빡.)
나, 나, 무… 무거울… 무거우면 어떡하지? (거절은 안 한다.)





(머리 가볍게 톡톡 턴다. 얼굴에 묻은 물기도 손등으로 훑어보지만, 손도 푹 젖어버린 탓에 도긴개긴이라 헛손질이 된다. 그것을 깨달으면 조용히 손을 내린다.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애써… 강인한 표정을 지어본다. 눈썹에 힘 준다는 뜻.) 나, 괜찮아. 아론. 아론이야말로 나 안고 뛰느라 힘들지 않아…?

수건이라도... 챙겨올 걸 그랬나. 사물함에 몇 개 쌓아두는데.

나, 정말 괜찮아. 비는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어서, 조금 낯설긴 하지만… 재미있는 것 같아. 하나의 놀이… 같은 느낌이야. (옷 툭툭 털어본다. 고개 쭉 위로 올려서 네 머리카락도 털어보려고 손을 뻗었다.)


앞머리가 비에 젖어서, 살딱 흐트러졌어. 자… 여기를 이렇게. (살살.) 됐다.




기준치: | 55/27/11 |
굴림: | 86 |
판정결과: | 실패 |
(무지개… 원래 해를 등진 방향으로 떠오르지 않아? 눈 비빔.)






…… 독서도 그렇구… (음.) 좀 더, 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 중이야. 왜, 자격증 같은… (재미없는 계획.) 해두면, 좋을 것 같아서.
그리고… 푹 쉬어야지. (아자!) 아론은?


아론이야말로… 엄청 아론다운 계획인걸. 휴식도 물론 중요하니까. … (까지 얘기하다가, 물고기에 시선을 둔 채 잠시 말을 멈추더니.) 저…
그럼, 나중에 같이 놀러가지 않을래…? 서로, 공부나 운동… 말고는 딱히 계획이 없으니까. (쑥쓰러워서 일부러 물고기에 시선 고정한 거 맞음.) 가, 강요는 아니고……



… 바다… 아까, 바다 이야기 한 거 맞지, 아론.


난, 좋아. 아론 말대로 바다는 오랜만이기도 하고… 아론과 같이 가면, 정말 즐거울 테니까.


(어떻게… 벗어나지도 못하고, 차마 먼저 떨어지기는 조금 그래서. 뜸 들이다가 묻는다.) 다음 전시관. 보러 갈까…? 그러니까, 심해 전시관 말이야.

(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그것을 내뱉진 않는다. 기대하는 눈치로 네가 내민 손을 조심스럽게 쥐고선 먼저 걸음을 옮겼다.) 기대하고 많이 있을게, 아론.

기준치: | 69/34/13 |
굴림: | 3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대체 뭐지? 아까부터 이상하다. 눈을 살풋 찡그렸다.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은 탓이었다. 그곳을 가만 바라보며 눈가를 문질러 일그러짐을 애써 펴보았지만. 기분까지 활짝 펴지진 않음이 유감이었다. 얘기해볼까, 하지만 아론은 괜찮은 것 같아. 나만 이상한 건가? 나만 이곳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 사람이, 아무도 없네. 조용해.



기준치: | 65/32/13 |
굴림: | 86 |
판정결과: | 실패 |




… (헤헤. 뒤늦게 웃어보기도 한다.) 다른 곳, 가볼까…?


기준치: | 69/34/13 |
굴림: | 72 |
판정결과: | 실패 |

기준치: | 70/35/14 |
굴림: | 2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기준치: | 70/35/14 |
굴림: | 86 |
판정결과: | 실패 |

기준치: | 70/35/14 |
굴림: | 5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 잘자네. (아론 빼꼼~ 고개 숙여 본다.)

(잘 자는 아론 머리 쓰담… 한 번 하고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4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66/33/13 |
굴림: | 5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70/35/14 |
굴림: | 9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문 살짝 열어보면… 열리나?)

(창문… 안녕. 타박타박 걸어서 문 너머로 걸음 옮겼다.)


기준치: | 66/33/13 |
굴림: | 87 |
판정결과: | 실패 |
기준치: | 66/33/13 |
굴림: | 80 |
판정결과: | 실패 |

(내가 왜 아론의 몸으로? 익숙하지 않은 몸. 손을 쥐락펴락 해보지만… 그렇다 해도 별 달라지는 건 없어서, 그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황파악을 위해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사진으로 시선이 향했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3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웬 쪽지가…. (쪽지 떨어지면 주워서 읽는다.)



(음………………………)
…… 음?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키패드… 타닥. 타닥… 친다.)
(
여름의 끝
타닥… 타닥…)

(안심. 하고… 아니 안심을 하면 안 되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선다.)


기준치: | 62/31/12 |
굴림: | 7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기준치: | 99/49/19 |
굴림: | 9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55/27/11 |
굴림: | 3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65/32/13 |
굴림: | 2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기준치: | 70/35/14 |
굴림: | 92 |
판정결과: | 실패 |
실험 종료 후에는 실험체가 무엇을 하든 개입하지 않을 테니, 종료 전에 헛된 반항은 하지 마라.


(하지만 이제는 그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 아무런 일 없던 하루였다면 네 손을 잡으며 집으로 돌아가자 일렀을 텐데. 그런 평범한 하루가, 평범하지 않게 된 것은 언제였나. 비스듬히 고개를 숙인다. 앳된 목소리, 앳된 모습. 나는 그것을 넘어 다른 네 모습이 궁금했으나…, 그것은 이제 한낱 꿈에 불과하다고. 고개 숙인채로 네 이름을 불렀다.) 아론.
(제 앞으로 모은 두 손을 한참 꼼질거렸다. 얽어보기도 하고, 꼭 모아 쥐기도 하고.) 아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쉰다.)
… 아니야. (나지막히 읊조리며 웃었다. 슬프다거나, 홀가분하다거나, 아쉽다거나… 하나의 감정으로 정의 내리기에는 퍽 복잡한 웃음이었다.) 여기는 현실이 아니야.
일어나자, 꿈에서 깰 시간이잖아.
나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지?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 나는, 네 여름을 믿어.
좋아해, 아론.
다음 여름에서 만나자. 그때는, …
좋아한다는 말,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당신이 나를 부른다. 그 목소리만큼은 내가 사랑해 마지 않았던 여름을 찬란히 울리는 목소리. 당신을 마주 보지 못할 것 같아서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던 나는, 당신의 목소리 하나로 불가항력이 된다. 당신을 바라본다. 바보같이 눈물이 고인다. 당신의 그 입에서 읊조려지는 말들이 예상이 되어서, 기어코 나의 꿈을 깨버리고 마는 구나. 선연한 절망이 다가왔다. 당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구나. 나는, 단편적인 것밖에 알지 못하는데. 처음으로 당신을 아주 조금은, 조금은 원망했을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당신을 마주보며 울음을 삼켰을 뿐이다. 그러나, "좋아해." 라는 말에 무너져 눈물이 흐르고 만다. 입술을 달싹인다. 할 수 있는 말은 없지만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을까. 숨이 트인다. 입술이 움직인다.)
... ... 알피, 알피는... ... 어떻게 되는 거야?
(겨우 내뱉은 말이라고는 멍청하기 그지 없는 말이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잖아, 아론 테일러. 한참을 다시 침묵하다. 말을 골라낼 수가 없다.)
가지...마...
(여름날의 뜨거운 온기에 바로 사라져 버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곧 제 손으로 두 눈을 가려버렸다. 나는 아직도 여름에 머물러 있다. 꿈에 머물러있다. 이기심이라도 부려보아 당신을 붙잡는다면, 더 잔인한 일들이 일어날까. 망설인다. 다시 망설인다.)

(당신은 그것을 알고 있을까. 나는 당신이 그 어떤 무리한 부탁을 한다 한 들, 할 수 있을만큼 당신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걸. 난, 지고 만다. 당신에게 져버렸고, 또 나 스스로 무너져 지고 만다. 너무 뜨거운 태양볕 아래에서는 초록 꽃이 살 수 없으니까. 당연한 이야기가 아닐까.)
... ... 그럼, 이거 하나만 약속해 줄래? 다음의 여름에... 날 기억해주기로. 내가 알피를 기억하지 못해도.

… 기억할게.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 내가 너를 기억할게. 아론.
이건, 너와 나만의 약속이야. (네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윽고 건넨 것은, 네 손가락보다 한참 작을 제 새끼손가락이었다.)

응. ... 무르기 없기야.
(당신의 자그마한 새끼손가락, 마주 걸어본다. 그 온기가 아직도, 아직도 따스한데. 쓰게 웃었다. 슬그머니 손을 물렸다. 애써서, 아니 이젠 약속이 있으니까 환하게 웃어본다.)
안녕, 알피. 다음 여름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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